소비 주력 떠오른 MZ세대들 저도주 선호…백주 업체들 해외 공략으로 눈 돌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백주 생산량이 정점을 찍은 때는 2016년이다. 생산량은 1358만 리터였다. 그 이후 매년 감소하기 시작했다. 2017년 1198만 리터를 시작으로 2018년 871만 리터, 2019년 786만 리터, 2020년 741만 리터였다. 2021년에도 715만 리터 생산하는 데 그쳤다. 2016년에 비해 47%가량 줄어든 양이다.
업계에선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2030 세대들이 백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2020 젊은층 주류 소비 통찰 보고서’에 따르면 다른 세대에 비해 1990년대생의 주류 구입이 폭발적인 증가추세로 나타났다. 이들 사이에서 백주는 가격은 둘째 치고 도수가 너무 높다는 반응이 많다. 보통 백주는 40~60도 사이다. 한 전문가는 “과일주, 칵테일 등 낮은 도수로 술을 즐기는 MZ세대가 소비 주력으로 부상했다. 백주는 그들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20대의 왕하오는 술을 처음 마셨을 때를 떠올렸다. “아버지로부터 술을 배웠다. 아버지는 백주를 따라주셨다. (좋은 술이라고 했지만) 좋지 않은 기억만 남아 있다”면서 “그 후 맥주 또는 낮은 도수의 술만 마셨다”고 전했다. 왕하오는 “부득이하게 선물할 때 외엔 백주를 사는 일이 없다. 백주는 비싸고 맛이 없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에서 ‘민지’라고도 불리는 MZ세대들은 ‘취하기 위해서’가 아닌, ‘깨어 있기 위해’ 술을 마신다. 그들은 알코올 도수가 한자리 또는 10도 초중반에 불과한 술을 선호한다. 여성들의 주류 소비 증가도 백주 생산량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여성들의 음주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1990년대생 샤오커는 “맛있는 과일주를 두고 누가 백주를 선택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자 주류 회사들도 앞다퉈 저도주 생산에 나섰다. 1월 10일 중국 당국이 발표한 ‘현대 경공업 시스템 가속화에 관하여’라는 보고서엔 이런 내용이 포함돼 있다. ‘젊은 소비층을 겨냥해 다양하고 트렌디한, 개성적인, 저도화 된 소주 제품’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업계가 높은 도수의 백주 대신 저도주로 재편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 보고서였다.
업계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이후 저도주 시장은 고속 성장기에 진입할 것으로 점쳐졌다. 매년 30% 이상 증가해 2025년 742억 6000만 위안(14조 원)가량에 달할 전망이다. 노무라증권은 중국 저도주 시장이 2035년 2500억 위안(47조 3700억 원) 규모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아버지로부터 주류 회사를 물려받은 32세 린커는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장 라인을 백주 대신 저도주 생산을 위한 것으로 바꿨다. 린커는 “업계는 이미 저도주 시장에 진입했다. 주류 시장 미래 트렌드는 술의 저도화”라고 설명했다. 이어지는 린커의 말이다.
“아버지 세대는 도수가 높을수록 백주의 호탕함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건강과 맛,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저도주를 더 즐긴다. 도수가 높은 백주 생산을 중단하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다. 이제는 철저히 저도 소주 시장을 공략하겠다. 앞으로 소주 시장의 흐름은 이런 방향으로 기울어질 것이다.”
사실 중국의 소주 시장은 전통 유명 브랜드의 입지가 워낙 공고해 신규 업체 진입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저도화 트렌드를 타고 신생 브랜드가 벽을 허물고 있는 상황이다. 2011년 충칭의 바이저우가 만든 ‘강샤오바이’ 소주가 대표적이다. 창업자 도석천은 기자들에게 “(성공 비결은) 저도화”라고 말했다. 그는 “스타일이나 식감이 전통 백주와 확연히 다른 제품을 내놨고, 이게 시장에 신선한 느낌을 줬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백주를 생산하는 업체도 저도주 공략에 나섰다. 마오타이는 블루베리를 첨가한 ‘유밀’로 여성 소비자를 겨냥하고 있다. 브랜드 관리 전문가인 마파이는 “과실주의 발전 전망이 좋다. 젊은 층과 여성들이 열광하고 있다”고 했다. 마오타이처럼 전통 백주를 생산하는 업체들도 이젠 과실주 생산을 외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딜레마는 있다. 전통 백주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경우 저도주에 대한 반감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 70대 남성은 “도수가 낮은 소주는 ‘물’과 다름이 없다. 마실 땐 편하지만 술맛은 없었다”고 불평했다. 전통 고객과 젊은 층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백주 업체들의 새로운 고민으로 떠올랐다.
업계에선 저도화 경쟁이 술 자체의 품질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월 20일 기준으로 2022년 새롭게 설립된 과실주 생산업체는 무려 559개다. 그만큼 유망한 시장이라는 것이겠지만, 과다 경쟁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린커는 “저도화를 위해선 소주 제조에 대한 높은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백주 생산업체 관계자는 “백주가 출하되기까지 수년간 복잡한 단계를 거친다. 원료 재배, 연구, 양조장 라인 등 모든 과정이 치밀한 연구에 의해 이뤄진다. 그래야 술의 품질이 보장된다”면서 “현재 시장에는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진 업체가 제대로 된 공장 하나 없이 마케팅만으로 술을 팔고 있다”고 꼬집었다. 린커도 “저도주 제조 공정도 허술해선 안 된다. (백주처럼) 완전한 산업 사슬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국은 저도주 트렌드로 인해 위기를 맞은 백주업체들의 해외 수출을 적극 돕는다는 방침이다. 당국의 한 관계자는 “중국 문화에 특화된 전통 백주 브랜드들이 그동안 국내에선 대세였지만 정작 해외 시장 문은 열지 못했다”고 했다. 2020년 생산된 740만 리터 중 수출량은 1만 4000리터에 불과했다. 생산량의 0.19% 수준이다.
그동안 글로벌 시장 진출에 공을 들여왔지만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마오타이, 우량예 등은 유럽과 아프리카 등지에서 술을 주제로 한 강연, 무용 등을 만들어 ‘백주 문화’를 전파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각 나라마다 술 문화가 있고, 식감 차이가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처럼 험난한 길이지만 백주 업체들은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한 연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K팝, K드라마로 인기를 얻은 ‘한국 소주’, 일본 음식 유행의 덕을 본 ‘일본 사케’처럼 중국만의 문화적 기호를 형성해 백주 판매를 늘리겠다는 복안이다. 최근 중국 드라마들이 동남아 시장에서 인기를 끌자 백주 판매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고무된 분위기도 감지된다.
중국=배경화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