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김종인 러브콜에 국민의힘 불편한 기색…일각 ‘중도층 소구력’ 과대평가 시선도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후보와의 갈등 끝에 중도하차한 김종인 전 위원장을 향한 구애에 나섰다. 박용진 의원은 1월 12일 김 전 위원장을 만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송영길 대표는 2월 3일 “지금 우리나라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을 김 전 위원장이 만들었는데 그런 개념을 수용할 수 있는 후보는 이재명 후보라고 본다”고 했다. 송 대표는 1월 중순 김 전 위원장의 서울 종로 사무실을 직접 찾아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재명 후보 역시 김 전 위원장 영입에 적극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후보는 김 전 위원장이 국민의힘에서 나온 이후 직접 안부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는 “이 후보가 김 전 위원장에게 꾸준하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이 후보가 김 전 위원장과 호흡이 잘 맞을 것이란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 이 후보는 1월 29일 김 전 위원장을 두고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정치계 어른”이라며 “기회가 될 때 찾아뵙는 게 도리일 것 같다”고 전한 바 있다.
정가에서도 이 후보와 김 전 위원장 ‘궁합’이 그리 나쁘진 않을 것으로 분석한다. 김 전 위원장 경제민주화와 이 후보 무상급식은 보편적 복지 측면에서 맞닿아 있다. 2016년 이 후보가 지방재정 개편안에 반대해 광화문광장에서 단식 투쟁을 이어갈 당시 김 전 위원장이 농성장을 직접 찾아 이 후보를 설득해 단식이 중단됐던 일화도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이 후보를 두고 “개인적으로 잘 아는 처지”라며 “인간적으로 잘 아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김 전 위원장 영입 행보에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성일종 의원은 2월 2일 민주당을 향해 “헛물켜지 마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성 의원은 김 전 위원장 측근 인사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역시 2월 3일 “김 전 위원장은 정권교체라는 것에 뜻을 함께하고 계신다”며 “이 후보 같은 경우 김 전 위원장이 생각하는 철학과 많이 어긋나 있는 후보라 어떤 지원 행동을 할 것 같지는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상황은 여야의 중도층 공략과 무관하지 않다. 초박빙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는 이번 대선의 키는 중도·무당층이 쥐고 있다는 평가다. 그동안 김 전 위원장은 선거 때마다 집토끼를 넘어, 중도층으로의 외연 확장에 역량을 보여왔다. 김 전 위원장이 ‘킹메이커’로 불렸던 이유이기도 하다. 김 전 위원장은 2012년 대선에선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2016년 총선에서는 민주당 선거를 도와 승리를 견인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1월 28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35% 동률을 보였다. 중도 성향 응답자 35%가 이 후보를, 32%가 윤 후보를 지지했다(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자세한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는 “중도 표심을 얻는 게 역대 대선에서 가장 큰 과제였지만, 이번이 역대급”이라며 “김 전 위원장이 힘을 실어줬으면 하는 마음은 여야할 것 없이 다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 영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나온다. 김 전 위원장이 중도층에 소구력이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윤 후보 지지율이 김 전 위원장과 결별한 후 오히려 상승했다는 예가 거론되기도 한다.
김 전 위원장은 신중한 모습이다. 김 전 위원장은 1월 26일 오마이뉴스TV 인터뷰에서 “(이 후보) 본인이 만나보겠다고 하면 만날 수 있다. 자연인의 입장에서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답했다. 다만 김 전 위원장은 캠프 합류에 대해 “그런 짓은 할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동시에 김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 재합류 가능성도 없음을 재차 단언했다. 이준석 대표가 김 전 위원장 합류를 주장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그건 이준석 대표의 생각”이라며 “나는 한 번 나온 데를 다시 돌아가거나 그러진 않는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의 국민의힘 재합류 거부에는 윤 후보 아내 김건희 씨 발언이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 김 전 위원장은 김건희 씨에게 상당한 불쾌감을 갖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른바 ‘7시간 녹취록’에서 김 전 위원장을 향해 “먹을 거 있어서 잔칫집에 온 것”이라는 김 씨의 발언이 드러나자, 김 전 위원장은 “제일 기분 나쁜 게 그런 것”이라며 “그런 불쾌감을 주면 더 이상 같이 협력할 수 없다”고 맞받았다.
김 전 위원장 측근으로 꼽히는 국민의힘 관계자는 “김 전 위원장 성격이 공개적으로 그런 수모를 겪고도 다시 국민의힘에 돌아갈 분이 아니다”라고 했다.
정치권 관계자들 역시 김 전 위원장이 한 쪽으로 합류할 가능성을 낮게 봤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통화에서 “김 전 위원장이 어느 쪽으로 갈 것 같진 않다”며 “민주당에 갈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국민의힘이나 윤석열 후보와 관계를 개선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선거 판세가 아무래 윤 후보가 유리한 상황인 데다 민주당에 악연들이 남아 있어 합류하기도 힘들고, 김 전 위원장과 민주당의 시너지가 크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김 전 위원장이 선대위 합류보다는 선거 막판 특정 후보 지지를 택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김 전 위원장은 2017년 대선을 열흘 앞두고 “2012년 안풍이 다시 일어나는 기운을 느낀다”며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을 한 바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안 후보의 개혁공동정부를 위한 준비위원직 제안도 수락했었다.
김수민 정치평론가는 “김 전 위원장은 여야 모두와 틀어진 경험도 있고, 각 후보의 리스크나 지지율 추이도 지켜볼 필요가 있어서 단기간에 선대위 어느 쪽으로든 결합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막판에 김 전 위원장이 공동정부 구성 등 자신의 지향에 맞는 후보에 대해 지지 선언을 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