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위기에 몸 낮춘 윤석열 “졌지만 이긴 싸움”…선대위 운영 놓고 김종인-윤석열 측 갈등 예고된 수순
“윤석열을 위하여, 이준석을 위하여~.”
12월 3일 저녁 울산 울주군에 위치한 음식점에서 울려 퍼진 건배사다. 이날 윤석열 후보는 ‘당무 보이콧’을 선언하고 잠행하고 있던 이준석 대표를 만나기 위해 400km가량을 달려왔다. 윤 후보와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폭탄주를 돌리며 화해했고, 당 대표와 후보가 정권교체를 위해 일체가 되겠다는 내용이 담긴 3개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화기애애한 자리가 끝난 뒤 상기된 표정의 윤 후보는 “발표할 게 있다”면서 깜짝 뉴스를 전했다.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으로 평가받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총괄선대위원장 수락이었다. 모여 있던 지지자들과 선대위 관계자들은 박수치며 환호했다. 윤 후보는 이른바 ‘울산 만찬 회동’으로 이 전 대표와의 갈등을 수습했고, ‘킹메이커’ 김 전 위원장을 영입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12월 2일만 하더라도 윤 후보는 서울, 이 대표는 제주에 머물고 있었다. 지리상 거리보다 마음의 거리는 더욱 멀게만 느껴졌다. 12월 6일 선대위 출범식에 당 대표가 빠지는 초유의 사태가 점쳐졌다. 그러자 김기현 원내대표, 선대위 조직총괄본부장으로 발탁된 주호영 의원 등이 적극적인 중재에 나섰던 것으로 전해진다. 무엇보다 윤 후보가 ‘결단’을 내렸다는 데에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당초 윤 후보 측 기류는 강경했다. 이 대표 잠행 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대표가 후보를 흔들려 한다”면서 불쾌해 하는 목소리가 나왔었다. 김종인 전 위원장이 몇몇 인선을 문제 삼으며 ‘선대위 전권’을 원했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총괄선대위원장 자리를 비워두긴 했지만 윤 후보 측에선 ‘김종인 없이 가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여기엔 경선 컨벤션 효과로 인해 윤 후보가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고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이 대표 잠행을 전후로 윤 후보 지지율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는 결과가 속속 발표됐다. 한국갤럽이 11월 30일부터 12월 2일까지 실시해 12월 3일 발표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선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가 36% 동률이었다. 2주 전 같은 조사에 비해 윤 후보는 6%포인트(p) 하락, 이 후보는 5%p 상승했다.
같은 조사에서 정권교체 응답은 53%로 정권 유지(36%)보다 17%p 높았다. 높은 정권교체 여론에도 불구하고 윤 후보 지지율은 떨어진 셈이다. 윤 후보가 선대위 내홍으로 지지율이 떨어진 사이 이 후보가 반사이익을 거둔 것으로 풀이됐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도 추세는 비슷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윤 후보가 강점을 보인 60대 이상, 이번 대선의 ‘스윙 보터’로 평가받는 20~30대 층에서조차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윤 후보가 이 대표를 끌어안기 위해 울산으로 달려간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읽힌다. 윤 후보 측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지율 때문만은 아니다. 100일도 남지 않았는데, 유세에 전념해야 할 후보가 자꾸 내부 문제로 발목이 잡히다 보니 이를 어떻게든 정리하기 위해서였다”면서 “윤 후보가 ‘명령체계가 일원화돼 있던 검찰에 오래 몸담아 정치권의 복잡한 인적 구조에 서툴렀다. 이번에 많이 배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귀띔했다.
특히 윤 후보는 이 대표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김종인 전 위원장에게 다시 한 번 러브콜을 보냈다고 한다. 앞서 둘은 ‘김종인 선대위 합류’ 여부를 놓고 대립각을 세운 바 있다. 이 대표 잠행 사흘째인 12월 2일엔 윤 후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핵심 인사들이 김 전 위원장을 직접 방문했다. 정가에선 윤 후보가 김 전 위원장에게 전권에 가까운 권한을 약속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김 전 위원장은 ‘울산 회동’ 다음 날 기자들에게 “수락했으니까 발표를 했지”라면서 윤석열 선대위 합류를 공식 인정했다.
표면상으론 윤석열 후보가 김종인·이준석과의 힘겨루기에서 고개를 숙인 모양새다. 하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선 “졌지만 이긴 싸움”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제 정치인이 돼가는 것 같다. 본인 스타일이라면 어디 이 대표나 김 박사(김종인)에게 여러 번 손을 내밀었겠느냐.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면서 “당내에선 ‘정치인 윤석열’에 대한 호평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김종인 전 위원장이 구상하는 선거전략, 선대위 운영, 인재영입 등을 둘러싸고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 전 위원장은 12월 4일 “선대위라는 게 운영해보면 알게 되는 건데, 요란하게 기구만 크다고 해서 잘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윤 후보가 꾸린 ‘매머드급 선대위’가 아닌, 실무형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준석 대표 역시 김 전 위원장과 비슷한 생각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는 선대위에서 일하고 있는 윤 후보 측근들과 김 전 위원장 간 마찰을 예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 전 위원장이나 이 대표는 그동안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O순실(특정인 성과 최순실을 합친 말)’로 불리는 윤 후보 측 관계자들에 대해 강하게 비판해왔다. 이들은 여전히 윤 후보 주변에 포진해 있다. 일각에선 김병준 상임선대위원장과 김 전 위원장 간 충돌도 예정된 수순이란 말이 나온다.
이에 대해 윤 후보 측 관계자는 12월 4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캠프 내에서 김종인·이준석 문제를 놓고 이견과 공방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후보가 최종 결론을 내렸다. 선거 문제는 김 전 위원장에게 다 맡기고, 후보는 유세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여기에 토를 달고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은 우리 사람이 아니다. 무슨 그게 ‘핵관(핵심 관계자)’이냐. 이제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