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론’ 안에서부터 흔들흔들
▲ 친박 내부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가 타고 있던 엘리베이터를 동료 의원이 타려다 저지당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진은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해 10월 7일 국세청 오전 국정감사를 마치고 경호를 받으며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상당수 친박 의원들은 아직 당내 경선조차 치르지 않은 상황에서 불거지고 있는 내부 갈등이 ‘박근혜 대세론’에 흠집을 내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박 전 대표 측근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친박계의 ‘궁중암투’, 그 막후를 들춰봤다.
얼마 전 한 친박 의원은 자신의 ‘보스’인 박근혜 전 대표 앞에서 불쾌한 일을 당했다고 한다. 박 전 대표와 정치 현안에 대해 얘기하던 중 함께 있던 박 전 대표 보좌진 중 한 명이 “그 의견엔 문제가 있다. 실현 불가능한 것 아니냐”며 ‘대놓고’ 면박을 줬다는 것이다. 그 의원은 “같은 의원도 아니고 보좌관이 그렇게 내 생각을 무시하자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다른 의원 보좌관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그런데 박 전 대표가 제지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 보좌관 생각에 동조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것을 보고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 친박 중진급 의원도 비슷한 사례를 털어놨다. 해당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님이) 박 전 대표의 총선 지역구 출마 뜻을 재검토해 주기를 바란다는 당내 여론이 적지 않다고 하자 갑자기 옆에 있던 보좌관이 ‘이미 대표님이 정리한 사안을 왜 다시 꺼내느냐’며 말을 잘랐다. 분위기가 냉랭해졌고,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이후 박 전 대표를 볼 수 없었다”며 씁쓸해 했다.
이런 ‘의견 충돌’이 잦아지면서 일부 친박 의원들이 박 전 대표에 대한 보좌진들의 ‘과잉’ 충성을 지적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한 현역 의원이 박 전 대표에게 인사하기 위해 다가가자 뒤에 있던 보좌진 중 한 명이 막아섰다는 일화는 익히 알려진 얘기다.
그 의원 측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인파가 붐볐던 상황이었긴 하지만 낯이 뜨거울 정도로 부끄러웠다. 동료 의원 중 한 명은 박 전 대표가 있던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조차 저지를 당했다는 소문도 들었다”면서 “박 전 대표 보좌진 중 특정인은 초·재선 의원들은 상대도 안한다는 말이 있다”라고 귀띔했다.
박 전 대표 ‘휴대폰’을 관리하는 보좌진을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친박 인사들도 적지 않다. 최근엔 그 수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어떤 친박 의원은 그 참모와 직접 통화하기가 불편해 자신의 보좌관에게 시켰는데, 그 보좌관 역시 “다른 건 다 하겠는데 그것만은 못 하겠다”며 주저해 곤혹스러워했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 보좌관은 익명을 요구하며 “자칫 친박 분열로 비춰질까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말을 꺼낸 뒤 “그 (박 전 대표) 비서진은 자기가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인사들 전화는 잘 바꿔주지도 않는다. 적어도 박 전 대표 의사는 물어보고 결정해야 되는데 중간에서 걸러버리는 것이다. 분수를 모르는 짓”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친박 의원들 불만에 대해 박 전 대표 보좌진 측은 “(박 전 대표로부터) 신임을 얻지 못한 몇몇 인사들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항변한다. 현재 박 전 대표 비서진엔 이춘상·이재만·정호성 보좌관, 안봉근 수행비서 등이 포진하고 있다. 이들은 10년 이상 박 전 대표를 따라 다닌, 그야말로 최측근 그룹이다. 이밖에 박 전 대표 주변 관리 및 공보 업무 등을 맡고 있는 정치권 관계자들이 박 전 대표 참모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들이 향후 박 전 대표 선거 캠프에서도 핵심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박 전 대표 보좌진과 밀접한 교류를 하고 있는 한 친박 의원 보좌관 K 씨는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유력 대권 후보다. ‘커터 칼 테러’를 당한 이후 경호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일부 불평이 나오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박 전 대표가 정치를 하는 과정에서 ‘사람’한테 많은 실망을 했다. 14년 동안 묵묵히 뒤를 받쳐준 보좌진들에게 애착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면서 “우리는 박 전 대표에게 듣기 싫은 소리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친박 핵심이라고 하는 의원들은 박 전 대표 앞에서 쩔쩔 맨다. 민의를 왜곡해 전달하는 것은 그들”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친박 의원들은 박 전 대표 보좌진들이 소통을 막고 있다고 꼬집는다. 그들은 “박 전 대표가 ‘인의 장막’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대세론도 무너지고 말 것”이란 어두운 전망도 제기하고 있다.
당초 친이계였다가 ‘월박’한 것으로 알려진 한 수도권 의원은 사석에서 “솔직히 괜히 왔다는 후회가 든다. 예전 MB 캠프에 있을 때는 이명박 후보와 가끔 접촉할 기회가 있었는데 여기는 도대체가 얼굴 보기도 힘들다. 박 전 대표 보좌진들에게 ‘눈도장’을 잘 찍어야 박 전 대표와 독대할 수 있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들었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영남권의 한 친박 의원 보좌관도 “박 전 대표에게 할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이라고 하더라. 쓴소리를 하려고 하면 표정부터가 벌써 달라진다는데 어떻게 하겠느냐. 그리고 핵심 측근 의원들조차 박 전 대표 의중을 잘 모른다. 대변인으로 불리는 이정현 의원도 박 전 대표 말을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박 전 대표 속내를 그나마 잘 알고 있는 보좌진들이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엔 박 전 대표의 선거 캠프 구성을 놓고 보좌진과 의원들 간의 미묘한 의견 차이도 감지된다.
우선 보좌진들은 내년 한나라당 경선에 대비해 올해 말 캠프를 꾸리기를 원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앞서의 K 보좌관은 “지난 2007년 경선 패배를 잊었느냐. 캠프를 일찍 출범시켜 대세론을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친박 의원들은 4월 총선이 끝난 후를 더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총선에 총력을 기울인 뒤 그 결과가 나온 후 캠프를 꾸려도 늦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K 보좌관은 “너무 늦다. 또 총선이 끝나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면서 “박 전 대표 지지율이 그때까지 유지되는지 두고 본 후 캠프 합류를 결정하겠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친박 일각에선 보좌진들이 먼저 캠프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하고 총선을 마친 후 의원들이 합류하는 ‘중재안’이 거론되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러한 내부 마찰이 박 전 대표의 대권 행보에 또 다른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보좌관 출신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에 벌어졌던 ‘정두언-박영준’ 파워게임을 보는 것 같다. 결국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전 차관이 ‘형님’을 등에 업고 소장파를 밀어내지 않았느냐”면서 “그런데 양측 갈등이 표면화된 것은 이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후다. 지금 박 전 대표는 아직 출발도 안 한 상태다. 보좌진들과 의원들 사이의 간극을 좁힐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 역시 “벌써부터 누구는 청와대 민정, 누구는 정무 하는 식으로 자리다툼을 하고 있는 기미가 보인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이회창 대세론이 결국 내부로부터 깨진 것임을 상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