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측 “안 후보 정치적 미래 달린 최대한의 조건 전달, 이제 공은 안에게”…안 측 “곧 만나지만 자진사퇴는 없다”
지난 1월 초 안철수 후보 지지율이 두 자릿수를 넘자 민주당과 국민의힘 셈법은 복잡해졌다. ‘캐스팅보트’를 쥔 안 후보 행보에 따라 대권 판세가 좌지우지될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안 후보와의 물밑 접촉이 급물살을 탄 것도 이 무렵부터다. 한 대선 후보 측 인사가 지지율 상승으로 몸값이 뛴 안 후보에게 ‘공동정부’를 제안했다는 말까지 흘러 나왔다. 안 후보는 ‘완주’를 천명했지만 여의도에선 결국 단일화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주를 이뤘다.
당초 안 후보는 ‘반문재인’을 기치로 대선 출사표를 던졌다. 이 때문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손을 잡을 것이란 시나리오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 측에서 뜨거운 구애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단일화는 안갯속으로 빠졌다. 지난해 4월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 출마했던 안 후보가 제1야당 국민의힘과의 단일화에서 아픈 기억이 있다는 점도 거론됐다.
민주당은 2021년 12월경부터 이재명 후보, 송영길 대표를 비롯한 당 주요 인사가 안 후보 설득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안 후보가 당시 윤석열 캠프를 이끌던 김종인 전 위원장을 상당히 껄끄러워한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가 강하게 러브콜을 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이재명 후보도 지지율 40%대를 뚫기 위해선 안 후보를 데려와야 한다는 데 고개를 끄덕였다”고 귀띔했다.
안 후보를 둘러싼 단일화 움직임이 분수령을 맞은 것은 2월 13일이다. 이날 안 후보는 유튜브 기자회견에서 윤 후보 측을 향해 100%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를 제안했다. 완주가 아닌 단일화를, 그 파트너로는 윤 후보를 ‘콕’ 집어 밝힌 셈이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안 후보가 당 관계자들에게 ‘그동안 문재인 정권 비판에 앞장서 왔는데 민주당과 연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단일화가 정권교체의 대전제라면 1야당인 국민의힘과 하는 게 옳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전했다.
국민의힘은 ‘급할 게 없다’는 기류가 역력하다. 단일화 ‘1차 디데이’가 2월 28일(투표용지 인쇄일)까지라는 것을 감안하면 시간이 많이 남은 것은 아니지만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초조해지는 것은 안 후보 측이기 때문이다. 여기엔 국민의힘 일각에서 제기되는 ‘자강론’도 영향을 미쳤다. 안 후보가 완주해 다자구도로 치러지더라도 윤 후보가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이준석 대표가 자강론파로 꼽힌다.
하지만 윤 후보는 2021년 11월 5일 경선에서 승리한 이후부터 줄곧 단일화가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윤 후보가 김한길 전 민주당 대표를 삼고초려해 선대위로 데려온 것도 단일화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윤 후보 측근 인사는 “김한길 전 대표는 국민의힘 선대위 쇄신 과정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단일화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지는 설명이다.
“윤 후보는 2~3개의 단일화 전담 채널을 가동, 수시로 관련 내용을 보고받아 왔다. 캠프 소속도 있지만 윤 후보에게 ‘직보’하는 외부 인사도 있다. 윤 후보가 공개적으로 단일화 언급을 하지 않았던 것은 일종의 수 싸움이었다. 국민의당과도 ‘핫라인’이 열려 있는 상태다. 실무진은 수시로 안 후보 측과 조율해왔다. 그동안 당 안팎에서 안 후보에 대한 비판이 나왔지만, 윤 후보는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윤 후보는 ‘크게 무리가 없는 한 안 후보 요구를 수용하자’는 입장이다.”
윤 후보가 2월 9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서로 신뢰하고 정권 교체라는 방향이 맞으면 단 10분 안에도, 커피 한잔 마시면서도 끝낼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단일화 핫라인’에서 어느 정도 합의안을 도출한 뒤, 후보가 만나 최종 사인을 하는 그림을 의미했다는 것이다.
다만 단일화 방식을 놓고는 좀처럼 양측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국민의당에선 여론조사를, 국민의힘은 제1야당 후보이자 지지율이 앞서 있는 윤 후보로의 단일화를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 내부에서 ‘안 후보 양보를 전제로 한 협상에 응할 수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안철수 후보가 직접 ‘여론조사 단일화’를 제안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안 후보 ‘선공’을 받은 윤 후보 측은 말을 아끼면서도 여론조사는 ‘절대 불가’ 방침을 내비쳤다. 이런 가운데, 단일화 협상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국민의힘 전직 의원이 최근 안 후보를 만나 윤 후보 뜻을 전하며 ‘받아들이지 못하면 (단일화는) 힘들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져 관심을 모은다. 사실상의 최후통첩인 셈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6월 지방선거와 관련한 카드를 제시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돈다.
이 전직 의원은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순 없다. 윤 후보가 꺼낼 수 있는 최대한의 조건을 제시했다고 보면 된다. 안 후보의 정치적 미래와 관련이 있다는 게 힌트”라면서 “이제 공은 안 후보에게 넘어갔다”고 했다. 안 후보 최측근 인사는 2월 15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지금 배우자의 코로나 확진, 선거 유세원들 사망으로 경황이 없다”면서 “추스르는 대로 윤 후보를 만날 것으로 안다. 국민의힘과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자진사퇴)은 절대 없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