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말고 문 있당께” 대권주자 탄력
▲ 호남지역 민심이 손학규 대표에서 문재인 이사장으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문재인 이사장이 자신의 책 <운명>의 출판기념회에서 연설하는 모습. 작은 사진은 손학규 대표.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이처럼 그동안 야권의 차기 대표주자로 인식돼 온 손학규 대표가 호남발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호남은 두말할 것도 없는 민주당의 정치적 고향이다. 호남 주민들은 주요 선거 때마다 전국 어느 지역보다도 전략적인 선택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 지도부 선출은 주요 정책 결정과 대통령선거 후보 선출에 이르기까지 ‘호남의 마음’을 얻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바람’도 드라마틱한 광주 경선을 통해 시작됐었다.
이 때문에 최근 호남 지역 언론들의 ‘문재인 현상’ 집중 조명은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다. <광주일보>는 17일자 외에도 ‘야망 커지는 문재인’(9일자 4면 박스기사), ‘야 대선후보 양강 구도’(10일자 5면 머릿기사), ‘광주·전남 정치권 거물이 없다’(18일자 3면 박스기사) 등 문 이사장의 상승세를 조명하는 기사들을 잇달아 쏟아냈다. <전남일보>도 ‘문재인 야권 대선주자 1위로’(9일자 4면 사이드기사) 등을 내보냈고, <무등일보>도 22일자 4면에 손 대표와 문 이사장의 사진을 나란히 배치해 ‘대통합 보폭 넓힌다’는 제목의 머릿기사를 실었다.
호남 언론들의 이 같은 보도가 근거 없는 ‘문재인 띄우기’는 아닌 것 같다. 여론조사에 나타난 호남 민심의 흐름과 맥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 대표가 꺼지고 문 이사장이 뜨는’ 흐름은 특히 전북보다는 광주와 전남에서 뚜렷하다. 1주일 단위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리얼미터’에 따르면 광주 전남에서 손 대표 지지도는 8월 첫째 주 18.8%, 둘째 주 19.1%, 셋째 주 15.3%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문 이사장의 지지도는 7.1%-11.5%-19.4%를 기록했다. 전국 단위 조사에서 부동의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광주 전남 지지율은 13.2%-15.7%-12.2%의 지지도를 보였다.
손 대표 지지도가 하락세를 보이는 반면 문 이사장 지지도는 급격한 상승세를 기록, 8월 셋째 주 조사에서는 광주 전남 1위 자리가 손 대표에게서 문 이사장으로 넘어간 것이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광주 지역에서 표밭 가꾸기에 열중인 한 예비후보도 “적어도 광주 전남에선 손 대표의 주도권이 허물어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손 대표로선 중차대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민주당 출신으로 대통령에 이르는 길은 ‘DJ의 길’과 ‘노무현의 길’밖에 없었다. 전자는 호남 출신 대권주자가 호남의 확고한 지지를 기반 삼아 타 지역과 연합한 경우였고, 후자는 비호남의 개혁 성향 대권주자가 호남의 선택을 받은 경우였다. 손 대표와 문 이사장 모두 비호남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들에게 가능한 길은 ‘노무현의 길’밖에 없다. 그런데 ‘노무현의 길’을 놓고 벌이는 경쟁에서 손 대표가 문 이사장에게 밀려나는 양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우선 문 이사장이 저서 <문재인의 운명>을 펴내고 정치적 행보에 들어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 이사장은 친노그룹 내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깨끗하며 신의를 지킬 줄 아는 사람으로 인식돼 왔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장례식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믿음직한 모습은 민주당 지지층은 물론 보수층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전남 지역의 한 민주당 인사는 “‘아무리 박근혜에 밀려도 손학규 말고 누가 대안이 있겠나’ 생각하고 있던 호남 사람들이 ‘어, 문재인이 정치를 한다면…’ 하고 새로운 선택지를 발견한 것”이라며 “문 이사장이 본격 정치에 나서면 급격한 ‘문재인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손 대표가 제1 야당 대표로서 만족스럽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손 대표의 호남발 위기를 자초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남 지역의 또 다른 민주당 인사는 이에 대해 “2010년 민주당 전당대회 때 왜 광주 전남이 호남 출신인 정동영 정세균을 버리고 손학규를 밀어줬겠나. 이명박 정부의 폭주를 막고 박근혜에 맞설 만한 대안으로 성장해 달라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손학규가 한 게 뭐냐’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종북주의 발언 논란’도 가뜩이나 ‘한나라당 출신’ 꼬리표를 단 손 대표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확산되는 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호남발 위기를 맞은 손 대표도 변신을 꾀하고 있다. 손 대표의 승부수는 야권 대통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야권 대통합이야말로 2012년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해 가장 절박한 당면과제이고, 그런 만큼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데 가장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희망시국대회’ 연설에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 등 야4당을 향해 “눈을 내놓으라면 눈을 내놓고 팔을 내놓으라면 팔을 내놓겠다”며 대통합을 호소했다. 이해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손 대표가 현재의 위기 국면에서 벗어나려면 야권 대통합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며 “손 대표의 절박함이 드라마를 만들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라고 말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