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믹스 전환 불가피” 전력구입비·탄소배출량 증가 탓 분석…원전+재생 공존 방향 화두 던져 ‘의의’
탈원전이라는 구호가 본격적으로 고개를 든 계기는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 지진해일로 인한 폭발사고가 발생한 일이다. 이후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는 탈핵, 반핵, 탈원전 등이 화두로 대두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제18대 대선에서부터 에너지 공급에 원자력 발전 비율을 축소하는 탈원전 에너지 정책을 제시했다. 제19대 대선에서도 탈원전 공약은 유효했다.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16년 12월 18일 문 대통령은 원전 재난영화 ‘판도라’를 관람했다.
당시 부산 부산진구에서 영화를 본 문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심하게 원전이 밀집된 고리 지역 반경 30km 이내에 340만 명이 살고 있다”면서 “만에 하나 원전 사고가 난다면, 최악의 재난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원전 추가 건설을 막고 앞으로 탈핵·탈원전 국가로 가야 한다”면서 “부산 시민에게는 머리맡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하나를 놔두고 사는 것과 같다. 판도라 뚜껑을 열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라 판도라 상자 자체를 치워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초반부터 강력한 탈원전 시동을 걸었다. 2017년 7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079년 원전제로’를 골자로 한 탈원전 로드맵을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 에너지 정책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평가되는 백 전 장관은 “모든 원전의 설계 수명을 연장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석유나 수입하는 원료 가격에 큰 폭 변동이 없다면 전기요금은 앞으로 오를 수 없는 구조”라면서 탈원전 로드맵 당위성을 강조했다.
이후 신고리 원자로 5·6호기와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중단됐다. 신한울 3·4호기의 경우엔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상태에서 산업부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의견수렴 절차 없이 건설 중단 및 계획 취소를 결정해 논란이 불거졌다. 2018년 6월 15일엔 한수원이 경제성 평가 결과를 근거로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했다.
문재인 정부의 강력한 탈원전 드라이브에 정치·경제·사회 분야에 걸쳐 찬반 논란이 격화했다. 탈원전이라는 키워드가 진영 논리 중 하나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는 게 정치권의 진단이다.
탈원전 이슈에서 핵심이 되는 쟁점은 ‘원전이 전체 에너지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비롯해 시민들 전기요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전력구입비’, 그리고 전 세계적인 트렌드인 탄소 중립과 연관이 있는 ‘탄소 배출량’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원전 주요 수치는 드라마틱한 변동을 보였다.
2021년 3월 한국전력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국내 발전량 중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원전 비중)은 30.8%였다. 문재인 정부 임기 1년차인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원전 비중은 30% 이하로 유지됐다. 2017년 27.2%로 낮아진 원전 비중은 2018년 23.7%로 저점을 찍었다. 그런데 2019년과 2020년엔 원전 비중이 각각 26.2%와 29.5%를 기록하며 문재인 정부 이전으로 원위치하는 양상을 보였다.
임기 초반 강력한 탈원전 드라이브에 시동을 걸었던 문재인 정부가 임기 중반부터 원전 비중을 높인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부분은 전력 구입비와 탄소 배출량이었다. 2016년 41조 700억 원가량이던 전력 구입비는 원전 비중이 저점을 찍었던 2018년 49조 9100억 원가량으로 늘어났다. 원전 비중이 7.1%포인트(p) 줄어든 사이 전력 구입비는 21.52% 증가했다.
2016년 2억 2753만 2000톤(t)이던 탄소배출량은 원전 비중이 저점을 기록한 2018년 2억 6019만 9000t을 기록했다. 탄소배출량은 2년 동안 14.35%가 증가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단순하게 원전 비중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던 급격한 탈원전 정책이 전력 구입비의 폭발적인 증가와 탄소배출량 증가로 이어졌다”면서 “원전 비중을 낮추면서 혹시 모를 사고를 예방하는 대가로 전력 구입비용이라는 실질적인 요소와 탄소 중립이라는 환경적인 요소에서 구멍이 뚫린 셈”이라고 주장했다.
2020년 원전 비중은 29.5%로 2016년 30.8% 수준으로 회귀하는 그래프를 나타내고 있다. 원전 비중이 늘어나자 전력 구입비는 다시 43조 3600억 원, 탄소 배출량은 2억 2010만 2000t으로 안정세를 보였다.
에너지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것과 달리 결과론적인 수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면서 “원전 비중이 1.3% 줄어들었고 탄소배출량은 743만t이 줄었다. 전력구입비는 2조 2900억 원이 늘었다”고 했다. 그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사실상 ‘탈원전 포기’ 발언을 한 배경에도 이런 수치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임기 초반부터 강력한 탈원전을 추진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2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현안 점검 회의에서 “원전이 지속 운영되는 향후 60여 년 동안은 원전을 주력 기저 전원으로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면서 신한울 1·2호기, 신고리 5·6호기 정상 가동을 주문했다. ‘원전 제로’를 외치던 임기 초와 사뭇 달라진 뉘앙스였다.
문 대통령은 “에너지원으로서 원전이 지닌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우 원전 밀집도가 세계 최고이고 특정 지역에 밀집돼 있어 사고가 나면 그 피해를 감당하기 어렵다”면서 “에너지 믹스 전환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탈원전’이라는 단어 대신 ‘에너지 전환’ 혹은 ‘에너지 믹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문재인 정부 탈원전 성과는 물음표를 남긴 가운데, 탈원전 정책이 파생한 각종 논란들은 정국에 메가톤급 영향을 미쳤다. 월성원전 1호기 조기폐쇄 관련 경제성 평가 조작 논란은 청와대와 감사원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원장 직을 사퇴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최 전 원장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2차 컷오프에 탈락한 뒤 서울 종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경제성 평가 조작 논란을 감사하는 과정에선 산업부 공무원이 ‘북한 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북한 전력 인프라 구축을 위한 단계적 협력과제’ ‘북한 전력산업 현황과 독일 통합사례’ 등 문건을 삭제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미디어를 통해서는 정치적인 이슈가 표면적으로 떠오르지만, 업계 내부에선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국내 원전 기술이 5년 동안 멈춰있었다는 점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높다”면서 “원전 관련 산업 입장에선 문재인 정부 5년이 ‘잃어버린 5년’이라고 불릴 정도”라고 지적했다.
재생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원전과 친환경 재생에너지는 어느 하나만 살려야 하는 사이가 아니다. 두 에너지가 함께 공존하는 방안이 미래 탄소중립 사회를 이루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본다”면서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은 원전과 친환경 재생에너지의 공존 방향에 대한 화두를 사회에 던져줬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평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