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불로 빚어낸 ‘숨 쉬는 기와’로 천년 지붕을 잇다
우리 선조들은 오래전부터 건축물의 지붕에 기와를 덮어씌워 빗물이나 습기가 새어들지 못하게 하고, 지붕 밑에 있는 목재의 부식을 방지했다. 그뿐만 아니라 아름답고 다양한 기와를 제작해 건물의 경관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한때 멋진 기와집은 권위와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한반도에 처음 기와가 들어온 시기는 기원전 2~1세기경으로 추정된다. 당시 한사군이 설치된 뒤 한나라에서 성행하던 기와가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후 기와는 우리 주거 문화와 인문 환경에 맞게 변형되어 3세기 말경에는 ‘한국적인 양식’의 기와로 발전했다. 이는 고구려의 장군총, 신라의 황룡사지, 백제의 미륵사지 등에서 각국의 특징이 있는 와당(기와가 이어진 끝에 둥글게 모양을 낸 부분)이 발견된 데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삼국에는 궁궐 및 사찰의 건축을 담당하는 관서가 따로 있었다. 백제에는 나라에서 쓰는 기와를 전담하는 ‘와박사’가 있었고, 신라는 특별히 와당만을 제조하는 ‘와기전’이라는 관청을 두었다. 또한 나라마다 기와의 특징도 뚜렷해 고구려의 기와는 힘차고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고, 백제의 것은 간소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주었다. 신라의 기와는 처음에는 소박했으나 차츰 화려해지고 다양한 무늬가 나타났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얼굴 무늬 수막새’는 자연스러운 미소를 간직한, 신라의 대표적인 기와 유물로 꼽힌다. 막새란 지붕의 기왓골 끝, 처마 끝에 놓는 기와를 말한다.
우리 기와는 불교문화가 꽃피었던 통일신라시대에 이어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다양한 구조와 형태로 발전했다. 반면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점차 소박하고 단순해지는 경향을 띠기도 했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와서’라는 기관에 기와를 만드는 ‘와장’ 40명을 소속시켜 일하도록 했다. 세종 때에는 민간에 기와를 보급하기 위해 ‘별요’를 설치해 1년에 수십만 장의 기와를 구워냈다고 한다.
기와는 암키와와 수키와로 구분되는데, 아래에서 받쳐주는 넓적한 기와가 암키와이고, 위에서 덮어 지붕의 골을 만드는 둥근 기와가 수키와다. 또한 암막새와 수막새, 귀면기와(도깨비 얼굴을 새긴 기와), 치미(전통 건물의 용마루 양쪽 끝머리에 얹는 기와), 용두(용머리를 표현한 기와), 망와(지붕의 마루 끝에 세우는 기와) 등 부속장식 기와도 다채롭게 개발돼 사용되었다.
전통 기와는 흙과 물로 만들기 때문에 습기가 많은 우기와 한랭한 계절을 피해 봄과 가을에 제작된다. 첫 작업은 질 좋은 원토를 채취하는 것이다. 검은 흙, 누런 흙, 붉은 흙 등 세 종류의 흙이 고루 배합돼야 좋은 기와를 만들 수 있다. 그 다음으로 흙을 반죽하여 흙 사이에 기포가 생기지 않도록 밟고 짓이기는 작업을 반복하며 마치 나락(벼)을 재듯 여러 층으로 쌓아 올린다. 그 후 장방형으로 재단한 진흙을 한 조각씩 떼어 와통 둘레에 붙인다. 와통은 진흙을 기와 모양으로 성형하는 데 쓰이는 원통형의 나무통이다. 성형 작업 중에도 진흙 판을 계속 두드리는데, 이는 흙 사이에 기공이 생기면 나중에 굽는 과정에서 기와가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양이 잡힌 뒤에는 대나무칼 등으로 선을 긋고 건조 과정을 거친 뒤 각각의 날기와로 분리해 다시 말린다.
최종 단계는 가마 작업이다. 말린 기와를 화기가 고루 통하도록 가마에 차곡차곡 쌓은 뒤 사흘간 불길을 조절하며 섭씨 1000도가 넘는 고온에서 구워낸다. 은은한 검은색이나 은회색이 되면 제대로 구워진 것이다. 이렇게 한 장의 기와가 탄생하기까지 40일 가까이 흙과 물, 그리고 불 속에서 서른 가지가 넘는 까다로운 공정을 거쳐야 한다. 전통 기와는 기계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자연스러운 곡선미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수분 흡수율과 통기성도 이른바 ‘공장 기와’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옛 기와를 두고 흔히 “살아 숨쉰다”고 표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 우리나라 각 지방에선 기후와 환경에 맞게 특색 있는 기와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기와지붕이 슬레이트 지붕, 슬래브 지붕으로 바뀌는 등 주거생활의 변화로 그 수요가 크게 줄어들었다. 현재 경상도 울산과 전라도 장흥 등 일부 지방에서만 기와가 제작되고 있다. 전통 기와의 명맥을 잇기가 점점 어려워지자 정부는 1988년 ‘제와장’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해 전승의 길을 열었다. 당시 초대 제와장으로 지정됐던 고 한형준 선생, 그리고 그의 제자이자 현재의 기능보유자인 김창대 장인은 2008년 방화로 소실됐던 숭례문 복구 때 지붕에 쓴 기와를 만든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자료협조=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