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찬 사자 춤사위로 평안한 새해를 기원하다
북청사자놀음은 원래 함경남도 북청군 전 지역에서 정월 보름밤에 연행되던 민속놀이다. ‘사자놀음’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바로 사자, 정확히는 사자탈을 쓴 연희자가 주인공이 되어 춤을 추며 놀이를 이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자’가 어떻게 민속놀이의 주인공이 된 것일까. 불교에서는 사자를 불법과 진리를 수호하는 신비스런 동물로 인식하는데, 한반도에 불교가 전해지면서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민간에서 사자는 잡귀를 쫓는 상징적 동물로 여겨졌고, 새해를 맞아 벽사진경 의식과 나례(묵은해의 마귀를 쫓아내려고 베풀던 의식)의 하나로 사자춤이 놀이처럼 행해지게 됐다는 해석이다.
문헌상으로 사자에 대한 첫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발견된다. 신라 지증왕 시절에 장군 이사부가 많은 목우사자(나무로 만든 사자상)를 만들어 전선에 싣고 가 우산국(지금의 울릉도) 사람들을 굴복시켰다는 내용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최치원이 연희를 보고 지은 한시 ‘향악잡영’ 5수 중 ‘산예’에 사자춤이 묘사돼 있기도 하다. 고려 말 문인 이색의 한시 ‘구나행’에서도 사자춤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시는 나례 때 공연된 오방귀무, 사자춤, 가면놀이 등을 담고 있다.
조선 후기의 문인 유득공의 ‘경도잡지’를 보면 나례도감(나례를 맡아보던 임시 관아)에서 행하던 연극 중 하나로 사자춤이 등장한다. 화가 김홍도가 그린 ‘낙성연도’에도 사자춤이 묘사돼 있다. ‘낙성연도’는 화성 성역의 완성을 축하하는 잔치인 낙성연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으로 ‘화성성역의궤’에 담겨 있다.
이렇듯 사자춤은 오래전부터 꾸준히 전승돼 왔는데, 평안도에서는 사자춤이 특별한 연희자들에 의해서 펼쳐진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함께 참여해 즐기는 대동놀이의 하나로 뿌리를 내렸다. 정월보름이면 각 마을은 저마다 사자를 꾸미어 놀며 자연스레 경연을 펼쳤으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북청의 사자춤이었다. 북청사자놀음은 정월보름을 앞둔 밤에 청년들이 마을 단위로 횃불싸움을 벌이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 뒤 각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음식과 술을 나누면서 사자춤을 즐겼다.
북청사자놀음에는 사자를 비롯해 양반, 꺽쇠(하인), 곱추, 무동, 사당, 중, 의원 등이 등장하며, 이 중 무동, 사당, 중, 의원은 탈을 쓰지 않고 복장만 갖추고 나온다. 사자의 경우, 두 사람이 각각 앞(앞채)과 뒤(뒤채)를 맡아 움직인다. 악기로는 퉁소, 북, 징, 장구 등이 쓰이는데, 다른 지역의 탈춤과 달리 퉁소가 많이 사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 사자놀이패는 집집을 돌며 사자춤을 통해 한 해의 평안을 기원한다. 먼저 놀이패가 마당을 돌며 사당춤, 무동춤 등을 펼치며 분위기를 돋우면 사자가 입장해 한바탕 사자춤을 춘다. 사자는 머리 부분에 큰 방울을 많이 달고 있는데, 이는 방울소리를 통해 잡귀를 쫓으려는 것이다. 이어 사자는 안뜰을 거쳐 안방과 부엌에 들어가 입을 벌려 귀신을 잡아먹는 시늉을 하고, 집주인의 요청에 따라 부엌의 조왕(부엌을 맡는다는 신)과 집 안에 모셔 놓은 조령(조상의 영혼)에게 절을 한다.
집 안 곳곳을 돌며 놀던 사자가 기진하여 쓰러지면 놀이패는 대사를 불러 반야심경을 외우도록 하고, 이마저 효험이 없으면 의원을 불러 침을 놓는다. 사자가 다시 일어나면 모두가 등장해 함께 춤을 추며, 두 마리 사자가 나와 놀기도 한다. 주민들은 장수를 빌며 아이를 사자 등에 태우거나 오색포편(다섯 색의 천 조각)을 사자 몸에 달기도 한다.
놀이패가 사자놀음을 하면, 각 가정에서는 답례로 곡식을 내놓았다. 다음날에는 그간 들어온 곡식과 경비 등을 결산하고 남은 곡식은 극빈자를 돕거나 학비 없는 학생에게 장학금으로 주고, 경로잔치에 쓰는 등 마을 공공사업에 사용했다. 북청사자놀음이 벽사진경의 놀이이자 온 마을의 축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북청사자놀음은 6·25 당시 월남한 놀이꾼들에 의해 명맥이 이어져 왔다. 이들은 1960년 ‘북청사자놀이 보존회’를 발족해 사자놀음을 전수 및 공연 활동을 펼쳤고, 1967년 북청사자놀음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당시 예능 보유자로 인정되었던 이들은 모두 타계한 상태로 현재는 북청사자놀음보존회를 중심으로 그 후예들이 전승과 교육에 힘쓰고 있다.
자료 협조=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