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쳤다고? 천만에… 페어플레이야!
▲ 지난 2일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3차예선 1차전 레바논과의 경기에서 박주영이 골을 넣은 후 기뻐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하루아침에 뒤바뀐 운명
지난 8월 27일(이하 한국시간) 한국과 영국이 발칵 뒤집어졌다. 프랑스발 소식 하나가 두 국가의 축구팬들을 순식간에 뜨겁게 만들었다. 릴 OSC(이하 릴)에서 입단 메디컬 테스트를 하던 박주영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 그 이유가 다름 아닌 아스널 입단을 위해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기 때문이란다. 벌집 쑤셔 놓은 것처럼 트위터, 미투데이 등 SNS와 뉴스 사이트는 사실 확인을 위한 팬들의 움직임으로 그 어느 때보다 붐볐다.
이 깜짝 놀랄 만한 소식에 앞서 박주영은 지난 8월 24일 프랑스 릴로 이적할 것이라고 알려졌다. 소속팀 AS모나코 역시 릴과 이적료 협상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적 시장 기간 내내 릴은 끊임없이 박주영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AS모나코의 희망 이적료와 릴이 제시한 조건의 격차가 너무 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병역 문제의 악재까지 겹치면서 칼자루는 릴이 쥐고 있었다. 이적료 300만 유로, 계약기간 3년. 모나코와 박주영에게 선택의 기회는 없는 듯했다.
양팀 간 이적료 협상이 합의됐다는 이야기를 듣자 박주영은 곧장 릴로 향했다. 1차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했고 2차 메디컬 테스트를 남겨두고 있었다. 메디컬 테스트가 끝나고 계약서에 서명하면 박주영은 완전히 릴의 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박주영은 올 여름 내심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원하고 있었다. 1년 전부터 리버풀이 박주영에게 관심이 있다는 소식은 끊이지 않고 있었지만 정작 때가 됐을 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릴이 아니라면 지금 그가 선택할 수 있는 팀은 없었다.
그때 박주영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낯선 인사를 건네는 이는 다름 아닌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이었다. 박주영은 벵거 감독의 전화가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벵거 감독은 박주영에 대한 기대를 보여줬고 박주영은 자신의 축구 인생에서 어쩌면 마지막이 될 팀에서 뛰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지고 말았다. 프랑스 릴에서 영국 런던으로 넘어온 박주영은 서둘러 아스널과 메디컬 테스트를 진행했고 결국 계약에 합의했다.
아스널행에 모나코는 환호
박주영의 아스널행에 가장 큰 힘을 준 것은 소속팀 AS모나코였다. 그동안 줄곧 600만 유로 이상의 이적료를 희망해 왔던 AS모나코 입장에서는 박주영이 헐값에 릴로 떠나는 것이 내심 못 마땅했다. 관심을 보이던 샬케04, PSG, 리버풀 등과 진전을 보지 못했다는 것도 모나코를 릴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자꾸 위축되게 만든 이유였다. 마지못해 릴에게 박주영을 내준 모나코. 하지만 릴은 가장 큰 것을 잊고 있었다. 이적 시장 기간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 두둑한 이적료를 제시한 아스널에게 모나코가 순식간에 돌아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모나코는 이전부터 아스널과 긴밀한 관계의 팀이었다. 벵거 감독은 모나코에서 지난 1987년부터 7년간 사령탑을 맡은 바 있으며 공격수 티에리 앙리, 엠마뉴엘 아데바요르 역시 이곳에서 데려왔다. 벵거 감독에게는 친정팀이었고 아스널에게는 능력 있는 선수를 조달해 주는 일종의 팜(FARM) 같은 존재였다.
박주영은 모나코에서 총 103경기에 나서 26골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 시즌에는 리그 33경기에서 12골을 뽑아내며 명실공히 모나코 최고의 공격수임을 입증했다. 아스널은 올 여름 주전 미드필더 파브레가스와 나스리를 이적 시켰고 덩달아 공격수 벤트너가 이적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리그에서 새 시즌이 시작한 상황이라 사실 공격수 영입은 쉽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박주영은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선수를 찾고 있는 아스널에게는 안성맞춤의 선수였다. 이미 모나코를 통해 유럽 리그에서 입지를 굳혔다는 점, 한국 대표선수이며 탄탄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도 아스널이 주저 없이 선택할 수 있는 힘이 됐다. 또한 박지성을 통해 맨유가 확보한 아시아 시장은 아스널에게도 매력적인 새로운 시장이다. 박지성 영입 이후 맨유가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시아에서도 강한 팬 층을 구축할 수 있었던 점 역시 아스널에 한국 선수가 왜 필요한지를 분명하게 해 주는 예였다.
입단 발표 미뤘던 속사정
메디컬 테스트는 런던 외곽 고속도로 근처에 위치한 콜니 훈련장에서 진행됐다. 박주영이 테스트를 받는 동안 벵거 감독과 소속 선수들은 맨유와의 원정 경기를 위해 맨체스터로 이동해 있었다. 박주영에 대한 첫 언급은 벵거 감독의 입이었다. 맨유와의 경기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벵거 감독은 영국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공격수를 영입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가 그 선수가 박주영이냐고 재차 묻자 벵거 감독은 머뭇거림 없이 ‘예스(Yes)’라고 말했다. 사실상 이적 확정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인 29일에도 박주영에 대한 공식 영입 소식은 없었다. 29일이 마침 영국 공휴일인 뱅크홀리데이였다. 마지막으로 풀어야 할 숙제도 있었다. 모나코와의 최종 확인이 필요했다. 팬들을 설레게 했던 박주영의 영입 소식은 마침내 30일 공식화됐다. 그의 등번호 9번. 3년 계약으로 알려진 가운데 아스널과 박주영 측은 이적료, 연봉 그리고 수당 등에 대한 세부사항을 모두 비공개하기로 합의했다.
배신했다고? 헐~
‘배신했다고? 천만의 소리’. 박주영의 런던행 선택에 가장 당혹해 했던 릴은 미셸 세두 회장을 내세워 박주영을 파렴치한 선수로 내몰았다. 하지만 이 같은 일은 이틀 만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박주영의 에이전트 마우리치오 모라나가 인터뷰를 통해 당시 상황을 상세히 전했다. 릴과 메디컬 테스트 중이던 때, 아스널이 모나코에게 박주영 영입 의사를 전했고 직후 모나코가 박주영에게 전달했다는 것. 2013년 병역 수행을 앞두고 귀국해야 하는 박주영에게 있어 벵거 감독의 전화는 거절하기 힘든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모라나는 릴 측에 미안한 마음은 갖고 있지만 축구 이적 시장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비난 받을 일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릴 측 역시 이런 부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오히려 박주영을 놓친 것에 대해 팬들에게 변명할 거리를 찾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조한복 프리미어리그 전문기자
아스널에서의 입지는
스트라이커 공백…‘즉시 전력감’
일단 박주영은 중앙 공격수로 나설 가능성이 가장 높다. 박스 안에서의 움직임이 좋고 패스 플레이를 할 수 있는 만큼 벵거 감독은 월콧, 아르샤빈 등 양측면의 빠른 스피드를 활용, 박주영과의 조합을 찾아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박주영의 경우 섀도스트라이커의 역할을 맡아 투 톱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박주영의 직접적인 경쟁 상대는 네덜란드 태생의 로빈 판 페르시와 지난해 여름 보르도에서 영입한 샤막, 그리고 올 여름 릴에서 데려온 제르비뉴다. 판 페르시는 지난 2004년 아스널에 입단, 현재까지 붙박이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고 있다. 다만 시즌 중 잦은 부상으로 인해 ‘유리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다. 상대 수비를 압도하는 강한 힘과 한 템포 빠른 슈팅 타이밍 등이 큰 장점이다. 판 페르시는 지난 시즌 부주장 자리에 올랐고 파브레가스가 떠나면서 현재 아스널의 새 주장이 됐다. 모로코 태생의 샤막은 벵거 감독이 기대를 잔뜩 걸고 데려온 선수. 그러나 지난 시즌 그는 7골을 넣는 데 그쳤다. 벵거 감독이 다양한 경기를 뛰게 했지만 초반 반짝 활약에 그치고 말았다. 현재도 주로 교체로 나서고 있는데 아직 적응이 덜 됐다는 주변 평가다.
박주영과 선발 자리를 놓고 싸울 진정한 라이벌은 제르비뉴. 그는 2009년부터 2년 동안 프랑스 릴에서 뛰었고 리그 67경기에서 28골을 성공시켰다. 코트디부아르 출신답게 호리호리한 몸과 날렵한 동작, 측면과 중앙을 모두 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골 결정력을 두루 갖춘 선수다. 올 시즌 아스널 공격이 핵심이 될 선수로 주목 받고 있다. 다만 다혈질적인 면이 있어 첫 경기에서 조이 바튼을 가격, 퇴장과 함께 3경기 출장 정지를 당했다.
박주영의 올 시즌은 그리 나쁘지 않다. 시즌 초반 프리미어리그뿐만 아니라 리그컵,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까지 치러야 한다. 여유를 갖고 충분히 적응해 볼 수도 있다. 급할 필요가 없다. 아스널은 이적 시장 마지막 날, 미드필더 미켈 아르테타(에버턴), 요시 베나윤(첼시 임대), 중앙수비수 퍼 메르테자커(브레멘), 왼쪽 측면수비수 안드레 산토스(페네르바체)를 영입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이적 동기생들이 많다는 것도 심리적인 부담을 적게 한다. 또한 내년 1월 치러질 아프리칸 네이션스컵도 박주영에겐 호재다. 제르비뉴(코트디부아르)와 샤막(모로코)이 아스널을 떠날 수밖에 없는 만큼, 벵거 감독은 시즌 초반 박주영을 그들을 대체할 수 있는 선수로 키울 가능성이 높다. [복]
스트라이커 공백…‘즉시 전력감’
▲ 지난 6월 3일 세르비아와 친선 경기에서 선제골을 터뜨린 대표팀 박주영이 골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박주영의 직접적인 경쟁 상대는 네덜란드 태생의 로빈 판 페르시와 지난해 여름 보르도에서 영입한 샤막, 그리고 올 여름 릴에서 데려온 제르비뉴다. 판 페르시는 지난 2004년 아스널에 입단, 현재까지 붙박이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고 있다. 다만 시즌 중 잦은 부상으로 인해 ‘유리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다. 상대 수비를 압도하는 강한 힘과 한 템포 빠른 슈팅 타이밍 등이 큰 장점이다. 판 페르시는 지난 시즌 부주장 자리에 올랐고 파브레가스가 떠나면서 현재 아스널의 새 주장이 됐다. 모로코 태생의 샤막은 벵거 감독이 기대를 잔뜩 걸고 데려온 선수. 그러나 지난 시즌 그는 7골을 넣는 데 그쳤다. 벵거 감독이 다양한 경기를 뛰게 했지만 초반 반짝 활약에 그치고 말았다. 현재도 주로 교체로 나서고 있는데 아직 적응이 덜 됐다는 주변 평가다.
박주영과 선발 자리를 놓고 싸울 진정한 라이벌은 제르비뉴. 그는 2009년부터 2년 동안 프랑스 릴에서 뛰었고 리그 67경기에서 28골을 성공시켰다. 코트디부아르 출신답게 호리호리한 몸과 날렵한 동작, 측면과 중앙을 모두 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골 결정력을 두루 갖춘 선수다. 올 시즌 아스널 공격이 핵심이 될 선수로 주목 받고 있다. 다만 다혈질적인 면이 있어 첫 경기에서 조이 바튼을 가격, 퇴장과 함께 3경기 출장 정지를 당했다.
박주영의 올 시즌은 그리 나쁘지 않다. 시즌 초반 프리미어리그뿐만 아니라 리그컵,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까지 치러야 한다. 여유를 갖고 충분히 적응해 볼 수도 있다. 급할 필요가 없다. 아스널은 이적 시장 마지막 날, 미드필더 미켈 아르테타(에버턴), 요시 베나윤(첼시 임대), 중앙수비수 퍼 메르테자커(브레멘), 왼쪽 측면수비수 안드레 산토스(페네르바체)를 영입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이적 동기생들이 많다는 것도 심리적인 부담을 적게 한다. 또한 내년 1월 치러질 아프리칸 네이션스컵도 박주영에겐 호재다. 제르비뉴(코트디부아르)와 샤막(모로코)이 아스널을 떠날 수밖에 없는 만큼, 벵거 감독은 시즌 초반 박주영을 그들을 대체할 수 있는 선수로 키울 가능성이 높다. [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