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 등산로 환원” 이미 전면개방 마무리 단계…“청와대 건물 기록관 활용” 세종시·청남대에 기록관·기념관 운영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추진하며 내세우고 있는 논리다. 윤 당선인은 청와대를 개방함으로써 국민들이 온전히 북악산 등산로와 성곽 산책로, 광화문광장 일대 등을 이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 청와대 건물은 박물관과 기념관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집무실을 이전하지 않아도 이미 청와대 상당 부분이 개방됐다는 비판이 고개를 든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3월 20일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을 공식화했다. 그러면서 기존 청와대에 대해서는 “최고의 정원으로 불리는 상춘재, 녹지원, 청와대 본관 등 청와대 부지뿐만 아니라 북악산 등산로, 서울 성곽 산책로, 광화문 광장 일대 전체가 국민에게 온전히 환원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서동과 경호동 등은 박물관, 기념관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윤 당선인은 “외국 귀빈 모실 일이 있으면 공원을 개방하더라도 건물은 저녁에 국민 만찬 행사 때 쓸 수도 있다”며 청와대 본관·영빈관은 필요에 따라 활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윤 당선인의 용산 이전 결정에 안보공백과 이전비용 등 여러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더 나아가 윤 당선인이 내세운 청와대 활용 계획도 이미 상당부분 이뤄진 것이라 명분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당선인 측은 청와대 뒤편 북악산 등산로 전면 개방을 강조했다. 하지만 북악산은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 개방되고 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19대 대선 과정에서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어 청와대와 북악산, 인왕산을 전면 개방해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경호와 예산 등의 문제로 집무실 이전 뜻을 접었다.
그럼에도 북악산 인왕산 전면 개방은 단계에 걸쳐 계획대로 진행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인 2018년 5월 인왕산을 완전 개방했다. 1968년 1·21 사태(김신조 사건) 이후 청와대 방호 목적상 일반인에 부분 통제된 지 50년 만이다. 이 조치로 인왕산 탐방로 중 경비시설물로 인해 접근할 수 없었던 330m 구간의 통행이 허용돼 인왕산 옛길(한양도성 순성길)이 원형에 가깝게 복원됐다. 이로써 일반시민들이 인왕산 옛길이나 개방되는 샛길을 통해 산 정상이나 약수터 등지로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순차적인 북악산 전면 개방을 발표했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도 북악산을 개방했지만, 전체가 아니라 성곽길과 산책로까지로 제한했다. ‘김신조 사건’ 이후 시민과 차단됐던 북악산 개방이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돼 문재인 정부에 이르러 ‘마침표’를 찍는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2020년 10월 1단계로 한양도성 북악산 성곽으로부터 북악스카이웨이 사이의 2.2km 길이의 등산로를 포함한 성곽 북측면 50만㎡가 열렸다.
2022년 상반기에는 2단계 조치로 마지막으로 남은 성곽 남측면 60만㎡까지 개방할 예정이다. 이 계획이 마무리되면 여의도공원 면적의 4.8배에 달하는 110만㎡가 시민의 품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특히 북악산이 완전 개방되면 안산에서 인왕산, 북악산을 지나 북한산까지 연속 산행을 할 수 있다.
윤 당선인 측은 청와대 본관 및 부속건물의 경우 박물관이나 기록관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기존에 정부와 지자체 등에서 대통령 박물관·기록관을 운영하고 있다.
충북 청주에 위치한 청남대에도 대통령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청남대는 1983년부터 2003년까지 사용된 대통령 전용별장으로 ‘남쪽의 청와대’를 뜻했다. 청남대는 2007년과 2011년 두 차례 확장을 통해 ‘대통령기념관(별관)’(과거 대통령역사문화관)을 준공했다. 대통령기념관(별관)에는 초대 대통령부터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식 장면을 담은 사진물과 영상물,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사용한 생활용품과 외국순방 때나 외교사절로부터 받은 선물 등 총 40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청남대관리사업소에 따르면 대통령기념관(별관)에 연평균 8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는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이용인원이 제한된 이후에도 연평균 20만~30만 명이 찾았다는 설명이다.
또한 세종시에는 행정안전부 소속의 대통령기록관이 운영 중이다. 지난 2015년 총 사업비 1100억 원을 투입해 준공됐다. 대통령기록관은 지상 4층에 지하 2층의 연면적 3만㎡ 규모의 국내 최초 대통령기록물 전용시설이다. 나라기록관 등 각지에 분산 관리하고 있는 국정운영의 핵심기록인 대통령기록물을 한데 모아 체계적으로 관리할 목적으로 건립됐다.
대통령기록관에는 역대 대통령들의 사진·영상 기록물, 대통령의 문서기록물, 대통령이 시용한 의전차량·가구류 등 행정박물, 대통령의 정상외교에서 받은 선물 등 총 1100여 점이 전시돼있다. 대통령기록관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연평균 15만 명의 관람객이 찾았다”며 “코로나19로 이용인원 제한이 되면서 지난해에는 연간 3만 3000여 명이 방문했다”고 전했다.
윤 당선인 측은 청와대를 전면 개방해 국민들이 40만㎡ 면적의 청와대를 공원으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문재인 청와대가 ‘용산 대통령 집무실’ 구상에 공개 우려를 표하자,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3월 21일 “5월 10일 0시 부로 윤 당선인은 청와대 완전개방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강수를 뒀다. 실제 청와대는 현재 대통령의 업무공간인 만큼 일반국민들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그럼에도 관람의 형태로 일부 공개가 돼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3월 22일 MBC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 인터뷰에서 “(윤 당선인이) 말씀드린 곳은 지금도 다 개방돼 있다”며 “(관람 신청) 시스템에 의해 신청하시면 관람을 다 하실 수 있다. 문재인 정부 기간만 해도 코로나19임에도 불구하고 (한 해 평균) 70만 명의 국민이 다녀가셨다”고 설명했다.
현재 청와대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경내 관람 신청을 받고 있다. 주중에는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나흘간 관람할 수 있고, 직장인들을 위해 매월 둘째·넷째 토요일 관람도 열어뒀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단체관람은 금지되고 개별관람 신청만 접수하고 있다. 일반 관람객들은 청와대 춘추관 옆문을 통해 입장한 뒤 대통령 전용헬기장, 녹지원, 상춘재, 여민관, 본관, 구 본관 터, 영빈관, 사랑채로 이어지는 약 2시간 코스로 관람을 하게 된다.
또한 청와대 앞 일대 전체가 국민에게 온전히 환원된다는 윤 당선인의 설명 역시 문재인 정부에서 ‘열린 청와대’ 방침에 따라 청와대 앞길 24시간 개방이 진행 중에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지 않아도 윤석열 당선인이 말한 (이전의) 이점은 문재인 정부에서 이미 추진해 국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공약 이행도 전에 달성 100%’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들을 호도해 문재인 정부의 성과를 자신의 성과로 낚아채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집무실 이전 없이도 국민들에 혜택을 줄 수 있는데 이전 비용 최소 1700억 원을 들여 왜 무리수를 두는지 알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일요신문은 청와대 이전 TF 팀장인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에게 ‘이미 추진된 인왕산·북악산 전면개방’ ‘기존에 운영 중인 대통령기록관과의 차별성’ 등에 대한 인수위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