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정 차 패배 너무 허무…누우면 경기 생각나 이틀간 잠 못 이뤄”
2022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남자농구 토너먼트 디비전Ⅰ 64강전에서 맞붙은 미시건주립대를 상대로 73-74 1점차 패배를 당한 데이비슨대와 이현중. 이현중은 경기 종료 0.5초를 남기고 성공한 3점슛과 이후 다른 작전을 해볼 틈도 없이 경기가 끝나는 상황이 무척 안타깝기만 했다. 상대의 철벽 수비에도 3점슛 3개를 포함해 11점 4리바운드 1어시스트로 분전한 이현중. 그는 미시건주립대와의 경기를 끝으로 2021-2022시즌을 마무리했고, 지금은 학생 신분으로 공부에 더 집중하며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3월 22일(한국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데이비슨대학 인근의 한 음식점에서 이현중을 만나 ‘3월의 광란’ 그 후 이야기를 들었다.
―미시건주립대와의 NCAA 토너먼트 경기를 마치고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네요.
“이틀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계속 잠과 사투를 벌이다 밤을 꼬박 새우는 시간들이 반복됐습니다. 어제 저녁에 비로소 지난 경기 영상들 보기 시작했고 스스로 ‘정신 차리자’란 생각에 수면 훈련에 돌입했어요. 오늘부터 다시 훈련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서든 잠을 자야만 했거든요.”
―왜 그토록 잠을 이루지 못했던 걸까요?
“잠을 자려고 누우면 머릿속이 온통 경기 장면들로 가득했어요. 그때 내가 슛을 좀 더 빨리 쐈더라면. 그때 내가 빨리 패스했더라면, 수비수들을 완벽히 따돌렸다면 등등의 생각들이 계속 이어지더라고요.”
―NCAA 토너먼트 경기 후 라커룸에서 나와 인터뷰할 때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이란 단어를 사용했어요. 그로 인해 그 ‘마지막’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3월의 광란’이란 무대에서 아쉽게 패한 후 라커룸에서 선수들이 모여 모두 울었어요. 고맙다고, 미안하다며 서로 포옹하고 위로해주면서 많이 울었고, 저도 밖에 나가 울지 않으려고 일부러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인터뷰하다 이 로스터로 뛰는 선수들과의 ‘마지막’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선수들, 코치님, 그리고 관중석의 데이비슨대 선수 가족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 얼굴 등을 떠올리니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또 눈물이 났어요.”
―어머니 성정아 씨가 누나와 함께 그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경기 내내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아들을 응원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경기 마치고 어머니를 만나러 갈 때 어떤 마음이 들던가요?
“죄송했어요. 제가 최선의 경기력을 보인 게 아니니까요. 엄마가 이전에 농담 삼아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거든요. 가족들이 경기장을 찾을 때마다 제가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 가족들이 떠나면 20점 이상씩 득점하니까 당신이 현장에서 경기를 안 봐야 잘 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어요. 그걸 바꿔드리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안 되네요.”
―마지막에 3점슛을 쏠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미시건주립대를 따라 잡으려면 시간이 부족해 공을 잡자마자 빨리 쏘고 파울 작전이든 스틸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3점슛을 넣고 시간을 보니 경기 종료까지 0.5초가 남았더라고요. ‘아, 안 될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상대팀이 볼을 잡고 날린 볼을 잡는 순간 경기가 끝나버렸어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거지만 1점 차 경기치곤 마지막에 너무 허무하게 끝이 난 셈이죠.”
―NCAA 토너먼트 경기 전에 워싱턴 D.C.에서 2021-2022 NCAA 디비전Ⅰ 애틀랜틱10(A10) 컨퍼런스 토너먼트가 3일 연속 진행됐습니다. 결승전에서 맞붙은 리치몬드대학에 62대 64로 역전패하면서 우승을 놓쳤지만 데이비슨대학은 NCAA 선발위원회를 통해 NCAA 토너먼트 진출에 성공했는데요, 이현중 선수의 슛감이 워싱턴 D.C.에서부터 좋지 않아 보였거든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리치몬드 대학과의 결승전을 치르기 전 세인트루이스 대학과의 4강전에서 상대 수비수에 의해 무릎 옆쪽을 맞았어요. 그러다 결승전 때 똑같은 부위를 또 맞은 거예요. 슛을 쏘는데 밸런스가 안 맞더라고요. 절뚝거리며 뛰는 바람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어요. 그 부분이 슛을 쏘는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리치몬드 대학과의 결승전은 경기 종료 1분 전까지 우리가 6점을 리드하고 있다가 62-64로 패한 터라 그 경기 후 며칠 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아무리 곱씹어도 우리가 왜 졌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눈을 감고 있어도 리치몬드 대학과의 경기 장면이 맴돌았고, 농구장 가면 또 그 경기 생각이 나서 정말 괴로웠어요. 농구를 잊고 지내려 밤새워 공부를 하다 지금까지 못해 본 걸 해보자는 생각에 새벽 1시에 피자, 탄산음료 등을 배달시켜 먹기도 했었죠. 며칠 지나니까 자연스레 스트레스가 풀리긴 하더라고요.”
―미시건주립대와의 NCAA 토너먼트 경기에선 가드인 포스터 로이어가 너무 개인 플레이에 치중한 게 아니냐는 비난도 있었어요. 그로 인해 이현중 선수가 슛을 쏠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이었으니까요.
“저는 로이어의 마음이 이해됐어요. 미시건주립대는 로이어가 전학 오기 전의 소속팀이었고, 그런 팀을 상대로 ‘3월의 광란’ 무대에서 만났으니 얼마나 잘하고 싶었겠어요. 그날 경기에선 저랑 로이어가 손발이 잘 안 맞았을 뿐입니다.”
―NBA 드래프트를 앞두고 스카우트들이 희망하는 포지션이 슈팅 가드가 아니라면 혹시 포지션을 변경할 의향이 있나요?
“슈팅가드가 아니면 스몰포워드인데 스카우트들이 제 포지션을 스몰포워드로 본다면 그렇게 바꿔야죠. 여기서 제 고집만 피운다고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사실 가장 편한 포지션은 그냥 슛만 쏘는 거예요. 아무 것도 안하고 슛 쏘고 수비하는 게 편하긴 한데 저는 제가 다양한 면에서 필요로 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만약 스카우트가 제게 포인트가드를 바란다고 해도 연습을 통해 그렇게 만들 자신이 있어요.”
―지난해 치른 올림픽 최종예선전을 통해 성인대표팀을 경험했는데 당시 농구적으로 얻은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나라를 대표하는 12명이 한 팀에 모여 대회를 치르는 건 엄청난 경험으로 쌓이더라고요. 실제로 (이)대성이 형, (라)건아 형이랑 손발을 맞춰보고 싶었고, 대화하고 싶었는데 대표팀에 뽑혀 형들이랑 잊을 수 없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리투아니와의 마지막 경기에선 제 스스로 100% 이상을 쏟아 부었다고 생각했지만 57-96 대패로 끝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 경기가 제게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아무리 좋은 평가를 받아도 제 실력은 아직 밑에 있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죠. 자신감을 얻는 대신 저의 부족한 부분을 다시 깨달았던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KBL 이대성, 최준용 선수와 친하게 지내는 걸로 알고 있어요. 단톡방도 만들어 자주 소통한다고 들었는데요.
“(최)준용이 형은 대화를 나눠봐야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형이랑 대화해보면 정말 영혼이 순수한 사람이란 걸 느끼게 돼요. (이)대성이 형은 농구에 대한 열정이 엄청나죠. 농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저를 정말 잘 챙겨주세요. 한국 농구가 잘되길 바라는 방향성이 저랑 잘 맞아요. 그래서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고요. 특히 대성이 형은 대표팀에서 만났을 때 저를 많이 배려해주셨어요. 막내들이 하는 잡다한 일들을 선배가 후배들한테 시키지 않고 직접 처리하시더라고요. 대성이 형이 그렇게 하니까 다른 형들도 자연스레 따랐고요. 대성이 형이 대표팀 생활 문화를 바꿔 놓았어요.”
―아버지 어머니가 농구 선수 출신이라는 게 선수 생활하는 데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요.
“당연히 부모님의 영향을 크게 받았겠죠. 하지만 억울한 부분도 있어요. 타고난 유전자 덕분에 좋은 슈터가 됐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제 스스로 좋은 슈터가 되기 위해 엄청난 양의 훈련을 소화했거든요. 호주의 NBA 아카데미에선 매일 새벽에 1000개씩 슛을 쐈어요. 만약 제가 좋은 유전자의 힘만 믿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평범한 대학 농구 선수로 머물렀을 것 같아요. 좋은 선수가 되는 건 타고난 것보다 자신이 만들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르브론 제임스의 아들이라고 해서 르브론처럼 전미 1위는 아니잖아요. 결국은 자신의 노력이 중요한 거예요.”
인터뷰 말미에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을 건넸다. 이현중의 진로 문제다. 이현중이 오는 6월 NBA 신인 드래프트에 나가게 될지 아니면 내년에도 데이비슨대학에서 뛰게 될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리그에서 뛰는 걸 고려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는데 이현중은 그에 대해 열린 대답을 들려준다.
“지금 상당히 복잡한 상태예요. 멀지 않은 시간에 제 진로가 결정될 것 같은데 만약 제가 다시 데이비슨대학에서 뛰게 된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팀원들과 함께 할 것이고, 못 돌아오게 된다면 팀원들을 서포트하면서 제 꿈을 이어 나갈 예정입니다. 제 진로의 방향이 설정되면 마지막은 밥 맥킬롭 감독님과 상의해서 결정하려고 해요.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는 걸 알고 있어요. 다음달에 나올 드라마라고 생각하고 조금 더 기다려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