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지시 미스터리도 함께 묻혔다
▲ 박근혜 전 대표가 5촌조카 두 명의 죽음으로 또다시 골머리를 앓게 됐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이어 같은 날 오전 9시 20분께 이곳에서 3㎞ 정도 떨어진 북한산 용암문 인근 등산로에서 숨진 박 씨의 사촌 형인 박용수 씨(52)가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두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 형 박무희 씨의 손자들로 서로 4촌 지간이며, 박 전 대표의 5촌 조카들이다. 박 전 대표 측은 두 사람에 대해 “평소 왕래가 없어 사건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며 이번 사건에 대해 말을 아꼈다.
경찰 조사 결과, 박용철 씨가 박용수 씨에 의해 먼저 살해되고 이어 박용수 씨가 자살한 것으로 전해지며 경찰 조사는 두 사람의 원한 관계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리고 이번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 ‘금전 문제’에 있다는 가능성이 담긴 정황이 드러나며 두 사람 사이의 개인적인 마찰이 살인 사건을 불러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 전 대표 측 한 관계자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자살한 박용수 씨가 3년 전쯤 살해된 박용철 씨에게 1억 원의 재산상 손해를 입혔고, 최근 그 문제로 심하게 다퉜다고 들었다”고 밝혔고, 사건 전날인 5일 밤늦게까지 두 사람이 함께 술을 마신 사실이 드러났다.
박용철 씨는 서울 강서구에 대형 찜질방을 가지고 있었으나 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며 지난 7월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용수 씨 역시 10여 년 전 부인과 이혼한 뒤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아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 모두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는 것. 살해된 박용철 씨의 한 지인은 “박용철 씨가 운영하던 찜질방은 박지만 회장의 도움을 받아 개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변 인사들은 표면적인 금전문제 외에 육영재단 운영권을 둘러싼 이전투구가 두 사람 사이 갈등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육영재단을 놓고 오랜 기간 분쟁을 벌여온 박근혜 전 대표와 박지만 회장, 박근령 전 이사장 사이의 갈등이 결국 친인척 간의 마찰로 비화되는 단초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앞서의 박용철 씨 지인은 “두 사람 모두 형편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고작 1억 원의 돈을 가지고 살인 사건까지 벌였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육영재단은 근래 적자에 시달리며 재정 상태가 좋지는 않으나 육영재단의 소유부지 개발이익이 수조 원대로 추산될 만큼 박근혜 전 대표 일가의 주된 재산목록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육영재단은 오랫동안 박근혜 전 대표 일가 재산 다툼의 주된 원인이 되어왔다(박스기사 참조). 결국 남매들 간에 다툼의 불씨가 된 육영재단은 현재 박지만 EG 회장 측 인사들이 운영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일부 주변 인사들은 피살된 박용철 씨가 한때 박지만 EG 회장과 가까운 사이였고 박근령 전 이사장의 남편 신동욱 전 백석문화대 교수와 법정 공방을 벌여왔다는 점과 관련해, 이번 살인사건에 대해 의문 부호를 달고 있다.
한 측근 인사는 “피살된 박용철 씨는 박지만 EG 회장이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관장으로 내세웠을 만큼 한때 절친한 측근이었다”고 설명했다. 박 씨가 어린이회관 과장으로 일했던 시점 역시 박지만 회장과 분쟁을 벌이던 박근령 전 이사장이 육영재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게 된 2005년 5월 무렵이었다고 한다.
또한 박용철 씨는 신동욱 전 교수가 지난해 9월 살인교사 혐의로 고소했던 인물 중 한 명이기도 한다.
신 씨는 당시 “박지만 회장의 5촌 조카인 박용철 씨와 비서실장 정 아무개 씨가 자신을 중국으로 납치했고, 중국에서 마약을 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며 박 씨 등을 고소했다가 지난 5일 박지만 회장에 대한 명예훼손과 무고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주변 인사들은 박용철 씨가 오는 9월 26일 신동욱 전 교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었으나, 재판을 20여 일 앞두고 피살된 점에 대해 예사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용철 씨는 한때 박지만 회장의 측근이었으나, ‘양심선언’을 하겠다고 밝히며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박 씨는 이번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박지만 전 회장으로부터 살해를 지시받은 내용을 녹음한 녹취록을 공개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 관계자는 “박용철 씨가 입을 열면 박지만 회장은 물론, 매형과 처남 사이의 갈등이 박근혜 전 대표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 결국 핵심 내용을 쥐고 있는 당사자가 죽음으로써 사건의 내막은 묻히게 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죽은 박용철 씨가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박근혜 전 대표를 돕기 위해 나서려고 했다가 무산된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캐나다 국적을 가지고 있는 박 씨는 당시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들어와 대선주자로 나선 박 전 대표의 경호를 담당하겠다며 경호업체를 차렸었다는 것. 이 관계자는 “당시 여의도 D 빌딩에 박용철 씨가 경호업체를 차려 사무실을 마련하기도 했다. 박 전 대표 경호를 맡겠다고 나섰지만 당시 박 전 대표 측근 의원들이 반대해 결국 성사되지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박근혜 전 대표 5촌 조카들의 피살과 자살 사건으로 박지만 회장과 박근령 전 이사장의 남편 신동욱 전 교수와의 법정 공방전은 일단락되는 분위기이나, 일각에선 이번 사건으로 육영재단을 둘러싼 박 전 대표 남매들 간의 진흙탕 다툼이 또다시 고개를 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 친박계 의원은 “이번 사건은 육영재단 싸움과 별개로 볼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육영재단 사태는 이번 대선에서 최태민 목사 문제와 함께 박 전 대표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다. 박 전 대표 입장에서 이 문제는, 대선 공약과 정책을 준비해야 하는 것 못지않게 하루빨리 해결해야 할 과제”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밝혀왔습니다]
지난 9월 25일자 ‘박근혜 5촌 조카 피살·자살’ 전말 기사에 대해 박지만 EG 회장 측에서는 “박용수 씨는 육영재단과 직·간접적인 관련이 없는 자이며, 박지만 회장이 박용철 씨를 어린이회관 관장으로 내세운 사실이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또한 박용철 씨는 9월 27일 신동욱 전 교수 재판에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았고, 2010.9.1 신 전 교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박지만 회장으로부터 신동욱 살해지시를 받은 적이 없으며, 녹취록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증언을 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육영재단 둘러싼 갈등 일지
근령 vs 지만 치고받고 ‘현재진행’
육영재단은 1969년 4월 고 육영수 여사가 설립해 상임이사 체제로 운영해오다 1982년 박근혜 전 대표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고 최태민 목사 관련 비리가 불거지면서 지난 90년에 동생 박근령 이사장이 운영권을 쥐게 된다. 하지만 박근령 전 이사장이 자금을 부적절하게 사용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이에 대한 법정 공방이 이어진 결과 지난 2008년 5월 대법원 판결로 이사장직을 상실했다. 이에 앞서 2007년 11월엔 박지만 회장의 측근인 정 아무개 씨가 ‘고 육영수 여사 탄신 82주년 기념행사’에 모 복지회 회원 100여 명을 동원해 폭력을 행사하고 사무실을 점거한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이후에도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 이후 임시이사가 선임되었으나 동생 박지만 회장이 추천한 이들로 구성되자 박근령 전 이사장이 이에 불복하며 출근투쟁을 이어왔던 것. 결국 2009년 3월 5일 박근령 전 이사장과 사무국직원 노조원 10여 명이 용역 150여 명을 동원해 재단 사무실을 기습점거했다가 박 전 이사장 역시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바 있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육영재단을 둘러싼 공방전에 관여하지 않았던 박근혜 전 대표가 육영재단 문제와 관련해 본인과 보좌진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육영재단 전 직원 서 아무개 씨(60)를 지난 4월 고소했던 사실이다. 서 씨는 박 전 대표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신동욱 전 교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박 전 대표가 육영재단 고문으로 비리를 저지른 인사에게 금품을 받았다”고 증언한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또한 박근혜 전 대표와 박지만 회장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이어오던 중 지난 5일 구속된 신 전 교수는 지난 14일 육영재단 복직을 위해 행정소송을 낸 상태다. [조]
근령 vs 지만 치고받고 ‘현재진행’
이후에도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 이후 임시이사가 선임되었으나 동생 박지만 회장이 추천한 이들로 구성되자 박근령 전 이사장이 이에 불복하며 출근투쟁을 이어왔던 것. 결국 2009년 3월 5일 박근령 전 이사장과 사무국직원 노조원 10여 명이 용역 150여 명을 동원해 재단 사무실을 기습점거했다가 박 전 이사장 역시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바 있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육영재단을 둘러싼 공방전에 관여하지 않았던 박근혜 전 대표가 육영재단 문제와 관련해 본인과 보좌진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육영재단 전 직원 서 아무개 씨(60)를 지난 4월 고소했던 사실이다. 서 씨는 박 전 대표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신동욱 전 교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박 전 대표가 육영재단 고문으로 비리를 저지른 인사에게 금품을 받았다”고 증언한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또한 박근혜 전 대표와 박지만 회장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이어오던 중 지난 5일 구속된 신 전 교수는 지난 14일 육영재단 복직을 위해 행정소송을 낸 상태다.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