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사법시험 후 떠났던 인도는 평범한 것의 중요성 일깨워준 스승, 수험서와 학교 밖 세상에서 배운 소중한 것들
배 변호사의 여행은 학교 도서관 6층 서편 구석에서 시작한다. 언제 끝이 날지 알 수 없는 수험 상황, 그에게 출구이자 빛이 되어 준 것은 여행 책들이었다. 일 년 내내 학교를 떠나지 못하던 그를 어디론가 데려갈 줄 것만 같았던 여행기들. 배 변호사는 2차 사법시험을 마치고 바로 첫 번째 여행을 떠난다. 꿈꾸던 인도로.
인도는 지상 천국도, 최악의 여행지도 아니다. 우리와 똑같은 희로애락이 있었을 뿐이었다. 첫 번째 여행지 인도의 환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비행기 연착, 허름한 숙소, 각종 동물과 배설물, 벌레들…. 힘들었지만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인의 집에서 멋모르고 음식과 물을 얻어먹으며 문제가 생겼다. 병원에서 받은 약으로 병을 해결하고 다시 여행을 시작했다.
배 변호사가 본 인도는 대단한 진리나 철학을 깨닫고 가는 곳은 아니었다. 끔찍해서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저 여행 역시 삶의 일부임을, 중요한 것은 일상과 가족, 사람과 같은 평범한 것들임을 조금씩 알게 해 주는 곳이 바로 인도였다.
여행은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그에게 가르침을 주는 고마운 스승이다. 본격적인 법조인의 삶을 시작하기 전, 그는 여행을 통해 삶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깨달았다. 소통하고 교류하는 법,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법, 짐을 잃어버리는 등 긴급한 상황에 놓였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것까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고, 인과의 순환은 다르마와 카르마와 같이 오묘하다는 점을 알았다.
때로는 주제를 정해서 여행을 다니기도 하였다. 하지만 가정과 결론은 일치하기보다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행복을 찾아 떠난 라오스에서 자본에 침식당하는 삶을, 환상을 가지고 바다건너 내린 모로코에서는 외로움을 만난다. 무엇보다 신과 인간, 종교가 궁금해서 떠난 중동에서 본 것은 인간의 끊임없는 갈등이었다.
초년 법조인의 고달픈 삶만큼이나 모든 생명은 처절하게 적응하고 있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형로펌 변호사의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오늘 몇 시에 집에 갈 수 있을까가 아니라 오늘 과연 집에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하루. 결실이 있을 것이라 믿었던 곳에서 도리어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다.
다른 세계로 다시 한 번 떠나야만 했다. 춥고 먼 땅에도, 광활한 초원에도 스스로를 던져 보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자유가 아니었다. 맹수부터 초식동물까지, 모두가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매일매일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었다. 자신과, 가족과, 집단을 위해서. 인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금씩 적응을 하고 맞추어 나가면서 지금의 문명을 이루어낸다. 여행을 일단락 하면서, 배 변호사는 세 장의 편지를 남겼다.
이 책은 여행기이면서도 여행기가 아니다.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을까. 여행지에 대한 수려한 묘사도, 감성적인 사진도 없다. 어쩌면 여행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미래가 전혀 보장되어 있지 않던 고시생 시절, 번데기는 고치를 벗으면 바로 예쁜 나비가 되어 꿀도 따고 가보고 싶은 곳으로 마음껏 날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수험서와 학교 밖의 세상에는 모르는 것도, 배워야 할 것도 많았다.
다듬어지지 않고, 무서운 줄 모르고, 뾰족했던 배 변호사가 여러 여행지에서 겪은 에피소드와 인연들을 통해, 조금씩 지금의 나로 바뀌어 간다. 이는 어쩌면 변호사로서, 아니면 하나의 인간으로서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겪는 성장기였을지도 모른다.
배태준 변호사는 한국 최대 로펌 김&장에서 약 10년 정도 근무했다. 미국 연방정부 산하 연방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 인턴 등 국내외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배 변호사는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삶을 살고 있다. 변호사로서 다년 간 고민 상담 뿐 아니라 네이버 고민상담카페(회원 수 약 8만 명)에서 전문상담사 및 운영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팟빵 고민상담 팟캐스트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드립니다’ 등을 운영한 적이 있으며, 2021년 6월에는 ‘사는 법이 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고민상담 관련 저서를 출간했다.
김&장을 나와 법무법인 위어드바이즈에 파트너 변호사로 합류하면서, 라디오 패널(KBS 1FM 라디오매거진 위크앤드), 창업, 스타트업(서울대 창업지원단) 멘토링, 칼럼 게재(국방일보 조명탄), 명상 컨텐츠 제작(명상앱 코끼리) 등 사회활동을 원 없이 하고 있다. 앞으로도 스스로도 계속 꿈을 꾸면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길을 찾아나가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