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석 수백 톤 매립 의혹 ‘유적지 훼손’ 우려…50년간 무상임대 불공정계약 논란도
레고랜드는 1968년 덴마크 빌룬드에서 최초의 레고랜드 테마파크를 선보인 뒤 영국, 독일, 미국, 말레이시아, 아랍에미리트, 일본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운영되고 있다.
국내에선 2011년 하반기부터 강원도 도유지인 춘천시 중도에서 추진 중이다. 처음 유치 계획을 세웠던 것은 2008년 김진선 전 강원도지사 재직 시절이다. 김 전 지사는 레고랜드 운영사인 영국 멀린엔터테인먼트(멀린) 본사를 직접 방문했지만 투자 조건 문제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광재 전 강원지사도 레고랜드 유치를 추진했지만 같은 문제로 사업 추진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2011년 최문순 강원지사 때 멀린과 레고랜드 개발사업 투자합의각서(MOA)를 체결했다.
레고랜드는 하중도 28만㎡ 부지에 지어졌으며 7개 클러스터(기사왕국, 미니랜드, 레고시티 등 산업집적단지)와 40개 이상의 놀이기구, 150여 개의 테마호텔 등으로 이뤄져 있다. 레고랜드가 개장을 완료하면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레고 테마파크가 생긴다.
그러나 레고랜드 사업은 삽 뜨기 전부터 잡음이 새어나왔다. 해외 기업에 도유지를 100년간 공짜로 빌려준다는 불공정계약 논란을 비롯해 한반도 중부 이남 최대의 청동기 유적지 훼손 등 문제가 발생했다. 이 중에서도 유적지 훼손이 가장 중대한 문제로 꼽힌다.
춘천 중도 유적지는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에 이르는 수많은 유물과 유적이 나와 ‘한반도의 역사보고’라 불린다. 특히 2013~2017년 레고랜드가 건설된 하중도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했을 당시 1266기의 선사시대 거주지터와 149기의 선사시대 적석무덤이 발굴됐다.
일부 역사 전문가들은 중도 유적이 석기시대에 조성돼 청동기시대까지 존속한 도시 유적이라고 설명한다. 김종문 춘천중도선사유적지보존본부(중도본부) 대표는 “발굴된 선사시대 집터들을 5인 가구 기준으로 계산하면 하중도에서만 최소 4000~5000명 이상 살았고, 상중도와 춘천분지 도처에 동일 유형의 유적이 분포함을 감안하면 1만 명을 상회하는 강력한 도시국가가 선사시대에 춘천에 존재했다”고 말했다. 춘천역사문화연구회 관계자도 “발견된 유적·유물만 해도 당대 최대 동아시아 유적지”라며 “수량이나 중요성 등 모든 측면에서 우리나라에 이 시대 최대 유적 사례가 없다”고 강조했다.
학계에선 이러한 유적 위에 추진한 사업 자체를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문화재청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유적지 보존을 전제로 레고랜드 개발사업을 허가했기 때문이다.강원도청 관계자는 “사업 초반엔 유적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가 사업 시작 후 공사가 진행되면서 유적이 발견되자 비난 목소리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중도 유적지 불법매립 의혹도 제기된다. 2015년 11월 20일 문화재청 매장문화재분과위원회는 ‘레고랜드 관광시설부지 보존방안’으로 ‘청동기시대 주거지 등 유구는 모래(30cm), 그 위 현장토 1.5m 이상 복토’를 조건부 가결했다. 복토란 흙으로 덮는다는 것을 뜻한다. 즉, 유적·유물이 나온 구간을 흙으로 덮어 레고랜드 공사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5년 뒤에 작성된 2020년 문화재청 매장문화재분과위원회 회의록에도 이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하지만 중도본부 측이 춘천지방검찰청에 제출한 ‘레고랜드 공사현장 불법매립 잡석 중도유적지 훼손 추가신고’ 문서를 확인한 결과, 2020년 4월 6일 ‘H구역 및 순환도로부지구역’에서 수백 톤의 불법매립 잡석이 발견됐다. 잡석은 구조물의 기초에 사용하는 부순돌로 1개의 중량이 10kg부터 1000kg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즉, 작은 입자의 흙 대신 유적에 훼손이 가해질 수 있는 잡석이 채워진 셈.
문화재청은 2020년 5월 11일 중도본부에 보낸 공문에서 “현지점검을 실시해 복토 상층부에서 전석과 암편이 확인돼 강원도 및 중도개발공사에 경위서 제출을 요청했다”며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36조인 '행정명령 위반 등의 죄'에 해당한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고랜드 공사는 중단되지 않았다. 통상 발굴조사를 실시하는 개발사업자가 유적지 보존을 위한 행정명령을 위반하면 문화재청은 유적지 보존을 위해 먼저 공사를 중단시켜야 한다. 이에 대해 김종문 대표는 “문화재청의 방조로 레고랜드 공사가 지속돼 왔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문화재청 측은 잡석 매립을 허가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레고랜드 불공정계약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강원도는 멀린과 2011년 9월 MOA를 체결하고, 5270억 원을 투자해 2015년까지 레고랜드 코리아 테마파크를 완공하겠다 목표를 세웠다. 사업비 총 5270억 원 가운데 멀린이 4470억 원, 강원도가 최대주주인 강원중도개발공사(GJC)가 8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후 민원 처리 및 법률 검토 등으로 2년간 첫 삽을 뜨지 못했고, 2013년 10월이 돼서야 멀린과 본 협약(UA)을 맺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 협약에 △강원도는 레고랜드 부지를 50년간 멀린에 무상임대(추후 50년 범위 내에서 재임대 협의)한다 △레고랜드 테마파크 임대료 비율은 연매출 400억 원 이하시 0%로 한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즉, 레고랜드 부지 무상 제공 기간은 최대 100년이며 레고랜드의 매출이 연간 400억 원이 안 되면 강원도는 운영 수익을 한 푼도 못 받는 셈이다. 심상화 강원도의회 의원은 “레고랜드가 아무리 좋은 사업이라 해도 무조건 짓고 보자는 식으로 엉터리 계약을 맺으면 안 됐다”며 “이 같은 불공정 계약은 앞으로 강원도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8년 12월 강원도와 멀린이 맺은 총괄개발협약(MDA)에 GJC가 레고랜드 사업에 800억 원을 투자하면서 멀린으로부터 받기로 한 임대수익 배분비율이 당초 30.8%에서 3%로 대폭 삭감됐다. 멀린 측이 추가로 2270억 원을 투자한 대가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강원도청 측은 “도에서 투자하기로 했는데 멀린이 직접 투자하기로 해 임대수익 구조가 변경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레고랜드는 오는 5월 5일 개장을 앞두고 있다. 현재 홈페이지에선 연간 이용권 3종(스탠다드 11만 9000원, 골드 16만 9000원, 플래티넘 24만 9000원)과 일일 이용권(성인·청소년 5만 원, 어린이 4만 원)을 판매 중이다. 하지만 외국계 회사와 불공정 계약, 동아시아 최대 유적지 훼손 문제 등으로 레고랜드 보이콧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닉 바니 멀린 대표는 지난 26일 준공 기념식에서 “(레고랜드 관련) 우려사항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중도가) 춘천시민의 섬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아름다운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