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추트레인, 잠시 쉴 뿐… 멈추지 않는다
#부상 재발의 악몽
9월 16일, 또 다시 클리블랜드가 텍사스에 패하는 장면을 지켜보며 경기가 끝나자마자 클럽하우스로 달려갔다. 추신수의 라커에 주인은 없고 원정 경기 중에 입는 양복만 걸려 있다. 한참 후에 나타난 추신수. 팀 닥터의 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중이라고 한다.
“정말 나조차 지금의 몸 상태를 믿을 수가 없다. 경기 전에 스윙도 충분히 연습했고, 전력질주를 해도 이상이 없었는데, 정작 경기에 나서니까 작은 충격에도 큰 통증이 느껴졌다. 팀 닥터 말로는 이전 부상이 더 안 좋아진 것 같다면서 한 달 정도는 경기에 나설 수 없을 것 같다고 하더라. 결국 시즌이 끝났다는 말과 같은 의미다.”
실제로 추신수는 허리를 굽히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재채기를 하는 것도 모두 힘들어했다. 오랜만의 복귀전에서, 그것도 첫 타석에서 또 다시 부상이 재발됐다는 현실에 대해 추신수는 “안 되려고 하니까 뭘 해도 안 되는 것 같다. 정말 올해는 내가 한 게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며 절망감을 드러냈다.
추신수는 야구장에 서고 싶은 욕심에 옆구리 부상에서 100% 회복된 몸 상태로 복귀전을 맞이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다른 건 몰라도 시즌 마무리를 꼭 야구장에서 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조금은 (옆구리가) 묵직한 감이 있었지만, 트레이너한테 괜찮다고 얘기를 했고, 나 스스로도 괜찮아질 거라는 최면을 걸었다. 다른 건 몰라도, 부상 선수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 작은 소원마저 이뤄지지 않더라.”
#음주운전을 끄집어내다
추신수의 2011시즌은 한마디로 악재의 연속이었다. 부상도 부상이지만, 음주운전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일은 추신수의 이미지를 나락으로 떨어트리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2010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병역면제 혜택을 받았고, 성실하고 모범적인 생활로 인해 대다수의 팬들은, 야구선수 추신수도 좋아했지만 인간적인 매력을 풍기는 추신수를 더 좋아했다. 그런 상황에서 음주운전 사건은 추신수를 좋아했던 팬들에게는 일종의 ‘배신감’으로 작용했다.
“올해는 살면서 처음 겪는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졌다. 신은 사람한테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고 하는데, 난 계속된 악재들로 인해 정말 제대로 호흡하고 살 수조차 없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으니까 이렇게 담담한 심정으로 얘기할 수 있지만, 한동안 나는 음주운전에 대해 질문받는 것조차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던 시간도 있었다. 100번 얘기해도 내가 전적으로 잘못한 행동이었고, 그 일로 인해 내 인생을 제대로 돌아볼 수 있었다. 야구하면서 좌절이란 걸 모르고 살았는데 음주운전 사건으로 인해 아주 뼈저리게 내 위치에 대해, 내 역할에 대해, 그리고 내 잘못에 대해 절절하게 뉘우치고 반성했다.”
▲ 팬들과 호흡하던 추신수의 모습들. 비 때문에 경기가 취소되자 관중석을 찾아가 정성껏 사인해 주고 있다. 아래쪽은 팬들에게 티셔츠를 나눠 주고 있다. |
“내 성격이 완벽주의자 스타일이다. 그런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닌, 내 실수로 인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욕도 많이 들었고 손가락질도 많이 받았다. 나로 인해 내 가족, 특히 우리 부모님까지 욕되게 했다. 그 참담함, 비참함이 얼마나 심했는지 모른다. 못난 아들이고 남편이고 아빠지만, 그래도 가족들은 날 안아주고 받아줬다. 아마 가족들이 없었다면 재기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음주운전 사건으로 한국의 여론이 자신을 향해 비난과 비판의 수위를 높여갈 때, 추신수는 ‘이제 모든 게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내리막길을 모르고 오르막길만 달려갔던 자신이 야구 시작하고 처음으로, 인생의 나락을 경험하며 야구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새삼 자세를 고쳐 잡는 아픈 시간들이었다.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자만심이 존재했던 것 같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는데, 마치 다 이룬 것처럼 들뜬 마음으로 초심을 잃고 어리석은 행동을 저질렀다. 하지만, 그래도 자꾸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려고 노력하면서, 야구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2~3년 후(FA)가 아닌 지금, 이런 시련을 겪게 된 데 대해 감사하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추신수는 돌이켜보면 올 시즌 유난히 야구 외적으로 신경 쓸 부분이 많았다고 말한다. 연봉이 늘고 인기가 올라가는 만큼 그에 걸맞은 그릇의 크기가 돼야 하는데, 수직상승을 이룬 겉모습과는 달리 자신은 아직 그 그릇과 어울리지 않는 작은 사람이 아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본 적도 있었단다.
#올 겨울에 훈련소 입소
지난 8월, 셋째 딸 소희를 품에 안게 된 추신수. 아들만 둘이었던 그는 평소 입버릇처럼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자주 얘기했고, 그 덕분인지 그는 소원대로 딸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딸이 태어난 다음날, 생애 첫 끝내기 만루홈런을 치고, 더블헤더로 벌어진 2차전 때 또다시 홈런을 때리면서 ‘내 생애 최고의 하루’를 만끽했었다. 정말 그 날만큼은 ‘오 해피데이’였다. 그 홈런들로 인해 이전의 진한 아픔들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행복은 ‘하루짜리’였다. 옆구리 통증이 시작되면서 엄지손가락 부상 이후 또다시 부상자명단에 올랐기 때문이다. 참으로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경험이었다. 더욱이 팀이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안간힘을 쓰며 디트로이트와 1위 싸움을 벌이고 있던 터라 부상당한 것조차 선수들한테 미안할 지경이었다. 올해는 모든 게 안 되는 해인 것 같다. 뭐가 씐 것처럼, 발버둥을 쳐도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걸 경험했다.”
추신수는 올 시즌, 부상으로 팀에 합류하지 못한 채 마무리하겠지만, 팀의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 부단히 몸을 만들어 회복시켜놔야 한다. 왜냐하면 오는 11월 16일,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훈련소에 입소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광저우아시안게임을 통해 큰 선물을 받았고, 그로 인해 2년간의 군복무 생활을 4주만 받고 마치게 되었다. 야구선수들이 아닌 일반 남성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생활을 체험하면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
추신수는 또한 클리블랜드와의 계약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은 데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나타냈다.
“어떤 분들은 올 시즌 초라한 내 성적 때문에 지난해 클리블랜드에서 제시한 장기계약을 거절한 데 대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얘기하지만, 난 다시 똑같은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절대 후회하지 않고, 전혀 미련도 없다. 연봉은 분명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계약 기간은 좀 더 고민을 해 봐야 할 것 같다. 왜 고민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선 나중에 천천히 말씀드리겠다.”
추신수는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입을 열었다.
“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컸기 때문에 그에 따른 비난과 실망도 컸을 거라고 생각한다. 올 시즌, 그래도 감사했고,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야구선수는 야구장에서 성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믿음은 변함이 없다. 아직 추신수란 선수에 대해 관심을 버리지 않았다면, 다음 시즌을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싶다.”
미국 댈러스=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