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클래식 투어링 모터사이클 기준으로 R 18 클래식 바라보기
BMW R 18 시리즈는 BMW 모토라드에서 2020년을 기점으로 새롭게 전개하고 있는 아메리칸 크루저 장르다. 그동안 아메리칸 크루저 장르는 할리데이비슨이 독식해왔다. 이미 할리데이비슨이 장르의 트렌드를 이끌어가고 있는 장르에 도전자로써 BMW가 등장하는 형국이었다. 그래서 R 18은 출시 이전부터 직후까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시장 반응은 기대와 달랐다. R 18은 등장과 함께 할리데이비슨 모델들과 비교당했고 평가받았다. 당연한 검증 과정이었다. R 18의 가장 큰 특징인 엔진과 연관된 것들이 가장 공통적이었다. 엔진의 완성도와 폭발적인 토크 등의 엔지니어링에 대한 것은 주로 점수를 잘 받는 포인트였고, 엔진의 크기와 부피 그리고 위치로 인한 라이더 포지션의 단점이나 지오메트리의 특이성을 꼽는 것들이 부정 평가를 주로 차지했다.
이런 일대일 비교는 첫 번째 시리즈였던 R 18에서 끝나지 않았다. 뒤이어 출시된 후속 모델인 R 18 클래식도 예외는 없었다. R 18 클래식의 직접 비교 대상 모델은 할리데이비슨 소프테일 헤리티지다. 둘 다 아메리칸 클래식 투어링 모터사이클을 지향한다. 고전적 형태의 윈드 스크린과 헤드라이트에 추가된 안개등이 얼굴을 만들고 엉덩이에는 여행 짐을 넣기 위한 사이트 백을 달았다. 프런트 휠을 16인치로 사용한 것도 동일하다. 장거리 투어에서 자연스럽고 편안한 핸들링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장거리 투어를 위한 요소들이다. 이전에도 두 모델을 동시에 시승해 보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R 18 클래식을 경험하면서 실제 투어에서도 목적에 걸맞은 역할들을 할까 알아보기로 했다. 이번 시승은 제주도에서 이뤄졌고, BMW 오너 라이더를 대상으로 제공되는 여행 프로그램인 BMW 제주 라이딩 라운지를 통해 2박 제주도 투어를 진행했다.
첫 시작부터 볼멘소리가 나온다. 양쪽 사이드 백에 배낭이 들어가지 않았다. 사이드 백은 디자인 때문에 마름모 꼴로 디자인되었는데 이것 때문에 카메라 가방처럼 프레임이 딱 정해진 백팩 같은 것은 수납하기가 불편했다. 장점도 있었는데 사이드 백 안쪽의 이너 백은 버튼으로 쉽게 탈착하는 것이라서 숙소에 도착했을 때 안쪽 가방만 툭 떼어갈 수 있어 편했다.
바이크에 시동을 걸자 1,802cc 대배기량 박서 엔진이 좌우로 꿈틀거린다. 꽤나 강력한 펀치로 라이더를 자극한다. 이 엔진은 BMW가 아메리칸 크루저를 생각하면서 새롭게 개발한 것이다. 박서엔진 특유의 회전 질감과 기계적 움직임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다. 마치 손목에 맥을 짚어볼 때 선명하게 느껴지는 맥박처럼 피스톤이 움직이고 회전력이 샤프트를 통해 리어 타이어로 전달되는 것이 세밀하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것은 시동 시 느껴지는 첫 번째 펀치 맛이다. 뭔가 죽어 있던 것이 꿈틀대면서 생명을 갖게 되는 느낌이랄까.
엔진의 힘은 차고 넘친다. 특히 가장 힘이 좋은 라이딩 모드인 락(Rock) 모드에서 즉각적인 피드백을 느낄 수 있다. 스로틀 그립을 과격하게 비틀면 헤비급 인파이터 복서처럼 무섭게 콤비네이션 펀치를 날린다. 하지만 격정적으로 내지르는 펀치답게 라이더에게도 피로도가 쌓여서 주로 2번째 단계인 롤(roll) 모드를 사용했다. R 18은 3가지 라이딩 모드를 제공하는데 가장 강력한 것은 락(Rock)이고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롤(Roll)이다. 보통은 라이딩 모드의 명칭은 숫자나 알파벳 등으로 직관적으로 짓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경우는 의도적으로 감성적으로 접근했다.
이 엔진은 물리적 크기가 큰 탓에 피하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구조적으로 엔진 헤드가 좌우로 나와 있기 때문에 아메리칸 크루저에서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포워드 스텝 포지션, 말하자면 발을 앞으로 내 뻗는 자세가 불가능하다. 이것 때문에 R 18 시리즈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라이더들이 있는 만큼 아메리칸 크루저 장르에서만큼은 발의 포지션도 선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엔진 헤드 위쪽으로 발을 얹을 수 있도록 하는 옵션 파츠가 나온 것 같기는 한데, 어쨌든 옵션으로 추가 장착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배기량 엔진 덕분에 확실한 존재감이 있는 반면에, 이것 때문에 가장 부정적인 평가도 함께 존재한다.
아메리칸 크루저 장르의 바이크답게 한가한 길 위를 여유롭게 미끄러지듯 달리는 기분은 이 바이크의 압권이다. 가장 기분 좋은 속도는 60~80km/h 정도였는데 박서 엔진이 지속적으로 원투 펀치를 리드미컬하게 내지르면서 기분 좋은 맥박감을 만들어 낸다. 이때의 진동은 최대로 상쇄되며 부드럽게 노면을 밀어 나갈 수 있었다. 엔진의 힘이 충분히 많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여유롭게 정속하는 느낌이라서, 원하는 상황에서는 급격히 스로틀을 개방해서 노면을 짓누르며 앞으로 튀어 갈 수도 있을 만큼 힘이 좋다.
마음먹고 바이크를 밀어붙여 보겠다면 원하는 속도 이상으로 달리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주행으로는 피로도가 금방 쌓였고 기분도 전혀 좋지 않았다. 핸들바 진동도 단점이다. 기어 변속 타이밍을 놓쳐 속도가 조금 떨어지면서 기어에 맥이 풀린듯한 상태가 되면 여지없이 핸들바가 춤을 춘다. 오래 주행을 하고 나면 전완근에 긴장이 생길 정도로 진폭이 커서 대미지가 쌓인다.
핸들바는 나의 신장(169cm)을 기준으로 멀기도 하거니와 넓기도 해서 핸들 그립을 바싹 잡으려면 허리가 숙여지고 턱이 몸 쪽으로 바짝 당겨진 공격적인 자세도 만들어진다. 주행 중 가장 거슬리는 것은 윈드스크린의 와류인데 특정 속도 이상의 고속 주행에서 와류가 생긴다. 포지션이 잘못되었을까 싶어 양팔을 나란히 쭉 펴서 길게 밀고 허리를 세워 달려봤는데, 양쪽 훅을 연속으로 두들겨맞는 것처럼 바람이 헬멧을 좌우로 흔든다. 그 뒤로는 고속을 자제했고 최대한 정속을 유지하고 풍경을 즐기는데 집중했다.
R 18 클래식은 프런트 16인치 휠을 사용한다. 기본형인 R 18이 19인치 프런트 휠을 사용하는 것과 다른 점이다. 19인치 휠의 시원함은 적지만 자연스러운 핸들링은 16인치 쪽이 더 낫다. 하지만 단점은 이 바이크에서는 휠 사이즈 변경으로 인한 장점이 별로 와닿지 않는다. 저속에서 셀프 스티어 성향도 강하고 지오메트리도 19인치 쪽이 이해하기 쉽고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서스펜션이나 브레이크는 불만 사항은 없다. 브레이크는 세팅이 보수적이어서 반응이 날카롭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원하는 제동 거리와 타이밍을 어렵지 않게 조절할 수 있었다. 서스펜션도 마찬가지로 보수적인 느낌인데 아무래도 아메리칸 크루저 장르에 맞춰 무게를 점잖게 잘 받아내 주었다. 스타일은 확실한 임팩트가 있다. 차체가 큼직하고 엔진이 좌우로 툭 튀어나와 시선을 끌어당기는 멋이 있다. 한 번은 신호 대가 중에 옆에 서있던 자동차 운전자가 말을 걸어왔다. 이 바이크 배기량이 얼마나 되냐고. 풀 페이스 헬멧을 쓰고 있어서 말로 전달하기가 어려워 엔진 위에 쓰여있는 숫자 1800cc를 가리켰다. 그걸 보더니 운전자는 엄지척을 날린다.
투어는 이틀 동안 지속되었다. 제주도 중산간을 기준으로 첫날은 서쪽을 둘째 날은 동쪽을 돌았다. 중산간에는 3월의 날씨에도 눈이 아직 쌓여있다. 포근한 공기와 다른 자연의 표정이 재밌다. 도로는 길을 따라 구불거리기도 했지만 대체로 길게 잘 뻗어있는 곳으로 다녀서 풍경을 넉넉히 즐길 수 있었다.
그렇다면 BMW R 18은 괜찮은 아메리칸 클래식 투어링 모터사이클일까.
R 18 클래식은 단점이 먼저 보였던 바이크였다. 그동안 경험했던 클래식 아메리칸 투어링 모델 중에서 되려 낮은 점수를 받아할 정도로 이 바이크에서 느끼는 피로도가 크게 부각되었다. 장거리 투어링을 위한 윈드 스크린은 와류가 생겨 머리가 어지러웠고, 사이드 백에는 내가 넣으려고 계획했던 백팩도 넣지 못했다. 투어링을 지향하는 요소들이 다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게 전부라면 오히려 최악의 바이크를 뽑아야겠다.
하지만, 또 다른 단점으로 꼽았던 사항들은 선택의 문제다. 이를테면 미드 스텝 라이딩 포지션이나, 이질적인 차체 움직임 같은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것들의 원인은 BMW의 상징인 박서 엔진을 아메리칸 크루저에 이식하면서 생겨난다. 불가역적인 항목인 것이다. 거대한 박서 엔진은 가장 큰 특징이며, 이 엔진이 만들어내는 강력한 파워는 R 18 클래식의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R 18 클래식은 직접 경험하면서 나에게 맞는 바이크인지 확인하는 작업을 통해서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것들이 동의가 된다면 R 18 클래식 당신에게 잘 맞는 아메리칸 투어링 모터사이클이 될 것이다.
이민우 모토이슈 기자 pade794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