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팀, 그동안 묵살당한 무혐의 의견 “정식 보고했다” 밝혀…이정수 지검장 판단 주목 속 박범계 장관 나설 가능성도
수사팀이 지검장에게 사건을 정식 보고했다는 내용을 기자단에 공유한 사실 자체도 이례적이다. 수사팀이 ‘정식’으로 보고했다는 사실이 주목을 받은 것 자체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수사팀이 수차례 한동훈 검사장을 무혐의 처분하겠다고 보고했지만 묵살됐다는 내용이 언론에 알려지자 “정식 보고가 아니었다”고 서울중앙지검이 이를 부인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식 보고 기준 놓고 검찰 해명 논란
서울중앙지검은 4월 4일 출입기자단에게 공유한 내용을 통해 한 검사장과 채널A 사건 수사를 담당하는 형사1부(이선혁 부장검사)가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정식 보고했다고 밝혔다.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은 문재인 정부와 가깝다는 평가 속에 주요 보직을 승승장구했던 인물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남강고등학교 후배이기도 하다.
수사팀은 이날 한 검사장에 대해서 무혐의 처분을 하겠다는 사건 처리계획을 정식으로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날 보고는 1시간가량 이뤄졌다고 한다. 수사팀은 한 검사장에 대한 그동안의 수사 결과를 설명하고, 무혐의 처분의 이유와 판단 배경을 이정수 검사장에게 설명했다고 한다. 형사1부 소속의 주임검사, 부장검사, 1차장검사가 참석했는데 특정 사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장이 1시간 가까이 보고를 받는 것 자체는 매우 이례적이다.
수사팀과 지휘부의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동안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 주임검사와 부장검사 등은 수차례에 걸쳐 “한 검사장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하는 게 맞다”는 의견을 상부에 전달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정수 지검장 등은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수사가 더 필요하다는 취지로 의견을 반려하기도 했다. 4월 1일에는 수사팀에 “1주일만 기다려 보자”는 취지로 말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정치권 눈치를 본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1시간 넘게 특정 사건에 대해서 보고를 한다는 것 자체가 ‘수사팀이 그동안 수사를 진행했던 사안을 면밀하게 챙기면서 지휘하지 않았다’는 것은 인정하는 셈”이라며 “수사 일선에서 지휘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수사를 끌고 가지 않을 때에는 지속적으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수사 방향과 범위 등을 조정하는 게 지검장, 차장검사 등의 역할이다. 왜 최종 수사 결과 보고를 1시간이나 받아야 했는지를 생각해보면 거꾸로 현재 서울중앙지검의 분위기가 읽힌다”고 설명했다.
특히 앞서 보고된 수사팀의 무혐의 처분 의견에 대해서는 ‘정식 보고가 아니’라고 서울중앙지검이 설명한 것을 놓고는 비판이 제기된다. 서울중앙지검은 4월 1일 수사팀이 이정수 지검장에게 무혐의 처분 의견을 보고했는데 “1주일만 기다려 보자”는 취지로 발언했다는 내용이 보도된 뒤 “최근에 수사팀 단계에서 사건 처리에 관해 논의를 한 것은 사실이나 지검장까지 ‘정식 보고’되지는 않은 상태였고, 따라서 이에 대해 반려한 사실도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앞선 변호사는 “구두로 의견을 주고받는 것은 정식 보고가 아니고, 서면을 들고 와서 정확하게 ‘정식입니다’라고 말을 하면서 보고를 해야만 정식 보고냐”라며 “어느 검사가 부장검사도 아니고, 차장검사도 아닌 지검장에게 사건 처리 방향 생각을 밝히는 것을 ‘보고’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지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 역시 “서울중앙지검장에게 보고를 하려면 보고 내용은 이미 부장, 차장검사에게 통과가 된 내용이어야만 가능하고 99%의 사건은 지검장 역시 보고를 듣고 그대로 처리하라고 지시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구두로만 이뤄진 보고는 정식 보고가 아니라는 거냐”라고 지적했다.
#박범계 나서서 사건 방향 바꾸나
아직 이정수 지검장은 정식 보고만 받고, 별도의 처분을 내리지는 않은 상황이다. 대다수의 검사들은 “수사팀 의견대로 무혐의 처분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워낙 여권이 주목하는 사건인 만큼 부장검사 회의 등 이정수 지검장이 추가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재수사를 지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법조계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나설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한 검사장이 연루된 채널A 의혹 사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가족 및 측근 사건 등에 대한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 복원을 지시했다. 지휘권 복원을 검토하면서, 박범계 장관이 한 검사장 사건 수사를 계속하라는 내용의 수사지휘권을 추가로 발동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전해진 것.
한 검사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묶어둬 서울중앙지검장 등 요직에 발탁되는 것을 막으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 대목이다. 정치적인 목적이 입증된다면 직권남용 소지도 있는 상황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박 장관은 “(한동훈을 겨냥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 정말 놀라 자빠질 뻔했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검찰과 법무부 소속 일선 검사들의 분위기가 바뀌었기 때문에 이정수 중앙지검장은 물론, 박범계 장관이 내부 여론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는 설명이 나온다. 무혐의 처분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익명의 한 검사는 “한동훈 검사장 사건에 대해서는 ‘언급이 됐지만 실제로는 아무 내용이 없다고 검사들이 공공연하게 얘기를 하고 있고, 이미 무혐의 처분이 나야 할 사건이 정치적인 외풍 때문에 여전히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대부분 생각한다”며 “사건을 놓고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범죄 혐의를 입증할 사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무혐의를 처분하는 게 검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결정 아니냐”고 말했다.
앞선 차장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부장검사 회의를 통해 여러 의견을 듣고 이를 통해 재수사 등을 유도하려 했다면 4일 오후 이뤄진 정식 보고에서 이정수 지검장이 이를 언급하면서 곧바로 회의 개최를 알렸을 것”이라며 “곧바로 수사 처분에 대해 답을 하지 못한 것은 남강고 선배가 이끌고 있는 법무부나 혹은 여권의 분위기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도 있을 것 같다”고 풀이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