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공익적 가치를 저작권자만 향유하는 것도 법 취지에 반하나 영리적 이용도 안 돼”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61부(권오석 부장판사)는 조각가 김운성·김서경 부부가 출판 업체 A 사를 상대로 낸 저작권 침해정지 및 손해배상 소송에서 김 씨 부부의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2015년 A 사는 김 씨 부부의 동의 없이 소녀상을 주제로 한 그림책을 제작해 판매했다. 이에 김 씨 부부는 저작권 침해라며 항의했고 양측은 ‘서적을 절판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에 합의하면서 책은 절판됐다.
하지만 2020년 1월 A 사는 또 다시 개정판을 출판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A 사가 판매한 책은 절판된 것을 포함 총 8000여 권으로 권당 13000원∼14000원이다. 김 씨 부부는 2020년 2월 A 사를 상대로 6000여만 원의 손배해상 청구 소송을 냈다.
최근 재판부는 “원고가 피고의 저작재산권을 침해해 손해가 발생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A 사가 김 씨 부부에게 13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아울러 서적 폐기와 함께 향후 출판·판매 등의 금지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소녀상이 “표현 요소들이 제작 의도에 따라 선택, 배열, 조합됨으로써 전체적으로 어우러져 다른 조형물과 구별되는 특징이나 개성이 있다”며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는 미술저작물에 해당한다고 봤다.
또 책 속 그림은 조각품인 소녀상을 그림으로 옮긴 것에 불과하고, 구성 요소들의 배치와 표현 방식이 유사하다며 저작권 침해가 맞다고 판단했다.
A 사는 “소녀상의 보편적 인권과 공익적 가치를 고려하면 공정이용의 관점에서 출판이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공익적 가치를 오직 저작권자만 독점적으로 향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저작권법의 목적에 반한다고 할 수 있으나, 이런 가치를 상업적·영리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제한 없이 허용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며 A 사가 책을 유료로 판매해 이익을 얻은 것을 지적했다.
다만 해당 서적의 판매로 A 사가 얻은 이익이 크지 않고, 소녀상의 원작자가 이미 김 씨 부부로 널리 알려진 점 등을 고려해 배상금을 1300만 원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