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한류’ 뿌까 “미키마우스 비켜”
▲ 월드 스타로 떠오른 토종 캐릭터 ‘뿌까’. 김부경 (주)부즈 대표를 만나 탄생의 비밀을 들어봤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2003~2005년 3년 연속 ‘대한민국 캐릭터 대상’ 문화부 장관상 수상, 2004~2006년 3년 연속 ‘대한민국 문화콘텐츠 수출 대상’ 장관상 수상, 2007 대한민국 문화콘텐츠 해외진출 수출 유공부분 대통령 표창(2008년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수상, 2008년 이후 매년 100억 원대 로열티 수익, 2010년 ‘대한민국 슈퍼캐릭터 100’ 1위….”
‘뽀…?’ ‘땡!’
정답은 당돌한 동양 소녀 ‘뿌까’(PUCCA)다. 지난 20일 ‘뿌까 아빠’ (주)부즈 김부경 대표(38)를 만나 ‘월드스타’ 뿌까 탄생의 비밀을 풀었다.
“뽀뽀해 ‘뿌까’”
‘뽀뽀해 버릴까’의 경상도 사투리. 남자친구 ‘가루’에게 적극적으로 애정표현을 하는 활발하고 열정적인 소녀의 이름은 여기서 힌트를 얻었다. 경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대학(영남대 시각디자인학과)을 나온 김부경 대표의 출신과 관련이 있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뿌까의 탄생은 그러나 철저한 차별화 단계의 산고를 겪었다.
“대중에게 신선한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게 목표였죠. 타깃을 먼저 설정했습니다. 보통 캐릭터는 애들을 위한 게 많으니까, 애들 말고 10~20대 여성을 중심으로 해보자.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스토리는 사랑 이야기죠. 여자가 더 적극적으로 리드하는 것으로 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이미지는 기존엔 동물 캐릭터가 많으니 사람으로 하고, 또 서양적이고 예쁜 여자도 많으니까 예쁘진 않지만 매력적인, 귀여운 동양 소녀가 좋을 듯했어요. 당당하고 저돌적이고 건강한 마인드를 가진 아이니까 빨강색, 머리가 까만색이니 밑에 타이즈도 까만색. 심플한 레드&블랙. 그렇게 태어난 겁니다.”
‘뿌까 아빠’ 아니랄까봐, 이런 뿌까의 적극적인 성격은 김 대표와 닮았다. 그는 어릴 적부터 좋아한 캐릭터 만화로 ‘업’을 삼기 위해 전공을 선택했고 없던 캐릭터 동아리도 만들었다. 하지만 졸업 후 그가 취직할 만한 곳은 없었다. 결론은 창업이었다.
“캐릭터라고 하면 마스코트 제작이나 애니메이션 하청, 제품 팬시 디자인 정도로만 생각하던 시절이었죠. 창업을 해야겠다고 결심은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비슷한 업종에도 경험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데 그런 회사는 지방엔 아예 없고 그나마 서울에 좀 있었어요. 연고지도 없는 서울로 그냥 올라온 거죠.”
서울에 올라와 그는 받아주는 곳이 있으면 일을 배우고, 하청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콘텐츠를 기획하며 지냈다. 그러던 1999년 겨울 서울에서 첫 한·일 캐릭터페어가 열렸다.
“캐릭터페어에 참여하려면 사업자등록 필요하다니 제 이름에 있는 ‘부’자와 영어 ‘뷰’, 다양한 걸 보여준다는 의미를 담아 ‘부즈’라고 회사 이름을 지어 등록했죠. 그리고 부스 하나를 받아 그동안 틈틈이 만들어놓은 캐릭터들을 들고 나갔어요. 작품 전시회처럼 다양한 스타일을 할 수 있는 회사라고 알렸죠. 신선하다, 신기하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김 대표는 이후 신선한 즐거움과 감동을 주기 위한 캐릭터 개발에 돌입했고 2000년 2월 드디어 ‘뿌까’를 탄생시켰다. 애초 타깃인 10~20대 여성들과 공유를 위해 그는 당시 뉴미디어인 인터넷으로 들어갔다.
“당시 여성들이 많이 쓰던 ‘이카드’를 활용했습니다. 인터넷 엽서인데 삽화 식으로 연재를 했죠. 나를 대신해주는 사랑의 메신저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캐릭터가 유명세를 타니 몇몇 제조업체로부터 캐릭터 상품 제조 오퍼가 들어왔다. 하지만 뿌까의 색깔이 문제였다. 당시 핑크나 아이보리 등 부드럽고 여성적 색이 주류였기에 제조업자들은 뿌까의 색깔 교체를 요청했다. 그는 “이런 강렬한 색깔 때문에 젊은 여성들이 좋아한 거니 초기 상품을 출시해보고 반응 안 좋으면 따르겠다”고 설득해 첫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 뿌까를 알리는 데 뉴미디어를 활용했듯 첫 제품도 새로운 상품인 모바일 액세서리였는데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럼에도 당시 국내 캐릭터 시장은 개념도 없고 규모도 작았다. 그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엄청난 규모로 활성화된 시장에 집중하자는 것. 허나 이름도 없는 한국 회사가 메이저사와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다. 그는 회사 설립 계기가 된 박람회를 떠올렸다. 그리고 2003년 세계 최대 캐릭터 박람회가 열리는 뉴욕으로 날아갔다.
박람회에서 뿌까의 신선함은 호평을 받았다. 이는 곧바로 디즈니와의 유럽 상품화 에이전트 계약으로 이어졌다. 이후 워너브라더스와 라틴아메리카 지역 상품화 계약, 전 세계 TV 애니메이션 방영, 세계적 의류 브랜드 베네통과 계약…. 뿌까는 150여 개국 500여 파트너와의 계약을 통해 3000여 상품을 판매하는 세계적 브랜드로 급성장했다. 해외에서 더 잘나가던 뿌까는 지난 2009년 말부터 한국 시장으로 컴백했다.
“한국에 온 게 단순하게 사업을 해서 수익을 높이자는 취지가 아닙니다. 스마트폰 열풍 등 지금 대중들의 니즈(욕구)가 급속히 바뀌고 있습니다. 그래서 뉴미디어 환경에 맞는 새로운 판을 짜고 있습니다. 각 분야에 실력 좋은 한국 업체와 융합을 통해 성공모델을 만드는 거죠. 그리고 그걸 한국뿐만 아니라 다시 해외에 서비스할 겁니다.”
지난해와 올해까지는 재도약을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 내년엔 지금 준비 중인 새로운 뿌까와 다른 캐릭터들을 들고 시장에 나올 예정이다. 이어지는 그의 비전이다.
“이 분야 서양의 아이콘은 미키마우스죠. 아시아의 아이콘은 뿌까가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동서양의 융합에 이바지하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문화적으로 서양, 특히 미국이 선도했지만 이제는 동양에서 즐거움을 베풀어야 되는 시기가 왔다고 봅니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
김부경의 성공 스텝
내게도 남에게도 즐겁게…
성공에 대해 묻자 김부경 대표는 “성공하지 못했다”며 손사래부터 친다. 다만 그는 “성공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라며 말을 이었다.
“진정으로 자신이 즐거운 것을 찾아라. 그리고 그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걸 목표로 삼아라. 돈은 그걸 위해 필요한 것이지 돈을 벌기위해서 뭘 하지 말아라. 대중에게 긍정적인 즐거움,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게 의미 있는 삶이다.” [로]
내게도 남에게도 즐겁게…
성공에 대해 묻자 김부경 대표는 “성공하지 못했다”며 손사래부터 친다. 다만 그는 “성공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라며 말을 이었다.
“진정으로 자신이 즐거운 것을 찾아라. 그리고 그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걸 목표로 삼아라. 돈은 그걸 위해 필요한 것이지 돈을 벌기위해서 뭘 하지 말아라. 대중에게 긍정적인 즐거움,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게 의미 있는 삶이다.” [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