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과 색실로 펼치는 아름다운 손의 예술
만해 한용운의 시 ‘수의 비밀’의 한 부분이다. 임을 기다리는 사랑의 마음을 우리 전통 조형예술인 ‘자수’에 비유해 표현한 것이다. 굳이 시인의 시선을 빌리지 않아도, 한 땀 한 땀 정성을 기울여 수놓는 장인의 모습은 오롯이 마음을 기울여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의 모습과 어쩌면 닮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늘과 색실로 그리는 아름다운 그림’, 전통 자수의 세계로 한번 들어가보자.

전통 자수는 크게 ‘바탕천 틀에 고정하기’ ‘밑그림 그리기’ ‘수놓기’ ‘뒷면에 풀칠해 말리기’ 등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자수의 재료로는 바늘과 바탕천, 한 가닥에서 여러 가닥까지 엮인 다양한 종류의 색실과 틀 등이 있다. 실은 굴 껍데기, 치자, 홍화 등 자연의 재료를 이용해 염색한다. 얼핏 간단해 보여도 전통 자수의 기법은 60여 가지가 넘는다. 주요 기법으로는 돗자리의 표면처럼 촘촘하게 엮는 ‘자릿수’, 땀새가 장단으로 교차되게 수놓는 ‘자련수’, 수면을 수평·수직·경사 방향으로 메워 가는 ‘평수’, 선을 조성하는 ‘이음수’, 수가 놓인 윗부분에 군데군데 길게 고정시켜 수면이 흩어지지 않게 하는 ‘징검수’, 각종 꽃의 술이나 석류 등 작은 씨앗을 표현할 때 쓰이는 ‘매듭수’ 등이 있다.

고대 일본의 기록을 통해서 일찍이 우리나라에서 일본에 자수를 전하여 큰 영향을 끼친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서기’에는 340년경 백제 왕이 옷을 짓는 여공 진모진을 일본으로 보냈는데, 이 여공이 일본 자수의 시조가 되었다는 기록도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불교문화의 영향을 받아 자수로 종교 작품이 많이 만들어졌으며, 일반 백성의 의복까지 자수 장식이 성행했다. 특히 생활 자수의 기능을 넘어 자수의 아름다움 자체를 즐기고 구경하기 위한 ‘감상용 자수’까지 등장했다. 장막을 칠 때 사이사이에 드리우거나 가정의 내실에 걸던 일종의 실내 장식품인 ‘수도’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수도에는 산에 피는 꽃이나 새, 과실 등을 그림처럼 수놓았다.

특히 문무관의 신분과 계급을 구별하기 위해 관복의 앞뒤에 각기 다른 문양의 흉배를 착용하는 제도가 제정됨으로써 자수의 수요는 더욱 커졌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흥선대원군 기린무늬 자수 흉배’(국가민속문화재)가 소장돼 있는데, 검은색이 도는 청색 비단에 구름무늬를 바탕으로 상상 속의 영물인 기린이 금색 실로 수놓아져 있다.
한편 민간에서는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의복은 물론 베갯모, 방석 등 일상 용품에까지 자수가 폭넓게 적용되면서 생활의 일부로 정착되었다. ‘경국대전’ ‘속대전’ 등에 따르면 민간에서 고급 직물과 자수 의장을 사용하는 것을 여러 차례 금지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민간에서 얼마나 자수가 성행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방증이기도 하다.

자료 협조=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