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어딘가 난 누군가’손학규는 울고 싶다
▲ 지난 6일 박원순 범 야권 서울시장 후보가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방문해 환담을 나눴다. 손 대표는 박 후보의 상임선거대책위원장 자리를 수락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최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각 당 관계자들과 출입기자들 간에 오가는 농담 아닌 농담이다. 공석이 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뽑는 10·26 재·보궐선거가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는 물론 대통령 선거의 전초전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차기를 노리는 여야 대선 주자들의 대리전 양상이라는 게 이번 재·보선의 가장 큰 특징이 돼 버린 것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로 갑작스럽게 서울시장 선거가 끼어든 게 그 이유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이는 달리 말하면 갑자기 판이 커져버린 이번 재·보선이 여야의 ‘대권 방정식’을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내년 총선 이후에나 본격화될 줄 알았던 대권경쟁이 6개월 이상 앞당겨져 벌써부터 차기 주자들이 정치생명을 건 혈투를 벌여야 할 판이다.
여야 대선 주자들 모두 스케줄이 엉켜버렸지만 ‘대권 방정식’의 복잡성은 범야권이 더하다. 한나라당에는 아직 감히 박근혜 전 대표에 견줄 만한 경쟁자가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인데 반해 범야권은 고만고만한 장내 주자들의 경쟁구도 속에 안철수(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라는 강력한 장외주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번 재·보선을 계기로 범야권에선 안철수, 문재인(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중심으로 한 원심력과 손학규(민주당 대표), 정동영(민주당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한 구심력이 예상보다 일찍 충돌하게 된 것이다.
김대중(DJ) 전 대통령 이후 범야권의 대권경쟁 구도는 어김없이 원심력과 구심력의 싸움 양상이었다. 전통적 지지층의 후원을 업은 내부 주자 중 어느 누구도 DJ만큼 강력한 구심점이 된 적이 없었다. 구심이 약하다보니 외부 주자가 일으키는 원심력이 무시 못할 파워를 갖게 됐다.
그 결과 2002년 대선에선 동교동계의 지원을 받은 이인제라는 구심력과 ‘영남 아웃사이더’ 노무현이라는 원심력이, 2007년 대선에선 호남 출신 정동영이라는 구심력과 비호남 출신 손학규라는 원심력이 충돌했다. 결과는 구심력과 원심력이 각 1승씩 나눠 가졌다.
예측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번 재·보선은 향후 범야권에서 원심력과 구심력의 대결이 어떻게 진행될지 가늠해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사실 지난 3일 치러진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단일화 경선에서 박원순 후보가 박영선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것은 원심력이 우위에 있음을 분명히 확인시켜 준 사례다. 우제창 민주당 의원이 경선 직후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여론의 반대편에 서 있다는 현실에 깊은 자괴감을 느낀다”고 밝힌 데서 볼 수 있듯, 민주당으로선 뼈아프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이 때문에 서울시장 선거를 비롯한 재·보선 결과와 상관 없이 범야권에선 당분간 원심력의 우위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오히려 재·보선 패배는 구심력의 중심이랄 수 있는 손학규 대표에게 결정타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손 대표가 지난 6일 박원순 후보를 만나 민주당 입당에 대한 부담을 풀어주고 상임선거대책위원장 자리를 수락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다. 손 대표는 박 후보와 만난 당일 민주당 소속 서울 지역위원장들과 박 후보의 상견례 자리를 주선하고 7일에는 서울시의회 의원들과의 만남도 마련했다.
이런 저간의 상황을 고려할 때 범야권에선 재·보선 과정과 그 뒤로 강한 원심력과 이에 맞서 살아남기 위한 구심력의 생사를 건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복잡다단한 과정 속에서 차기 대권을 놓고 경쟁하는 주자들의 명암도 크게 엇갈릴 수밖에 없다.
우선 안철수 원장은 급조된 이번 서울시장 선거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그는 자신이 잠재적 대권 주자임을 온 국민에게 분명하게 각인시켰다. 동시에 자신이 ‘박근혜 대세론’을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파괴력 갖고 있음을 과시했다. 정당정치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안철수라는 이름은 ‘제3세력의 아이콘’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서울시장 선거 결과가 어떻든 ‘안철수 바람’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 높아 보인다.
관심 포인트는 안 원장이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개입할지 여부다. 현재로선 안 원장이 선거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지만 박근혜 전 대표가 나경원 후보 지원을 공식 선언한 이상 선거전이 뜨거워질 경우 간접적으로라도 ‘지원사격’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범야권에서 안 원장의 등장이 득이냐 실이냐는 논란거리다. 득인 것 같으면서도 다른 주자들이 못 크게 만드는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이 역시 그의 몸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문재인 이사장은 아직까지는 득실을 계산하기가 복잡하다. 범야권 전체에서 구심력이 약해지고 원심력이 강해진 것은 그에게 득(得)이다. 범야권 대통합 정당 추진기구인 ‘혁신과 통합’은 민주당 밖의 친노(친노무현)세력과 진보 시민사회의 결합체적인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안 원장이 정치에 제대로 발을 담그지 않는다면 손학규 대표의 추락이 문 이사장에 대한 기대로 옮겨갈 수 있다. 이번 재·보선이 문 이사장에게 가져다 준 실(失)은 태풍급의 ‘안철수 바람’에 묻힌 감이 있다는 점이다. 안 원장이 등장하기 직전 문 이사장은 여론조사 지지율 20%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이제 한자릿수 지지율로 미끄러졌다.
주목할 점은 문 이사장의 정치적 파괴력이 얼마나 되느냐다. 이런 점에서 부산 동구청장 선거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문 이사장은 민주당 후보로 나선 이해성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후원회장을 맡아 직접 지원에 나선다. 6일 선대위 구성 발표 기자회견에도 참석했다. 문 이사장 스스로 부산 동구청장 선거가 ‘이해성의 선거가 아닌 문재인의 선거’임을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실제로 문 이사장이 이번 선거에서 파괴력을 보여줄 경우 범야권의 전통적 지지층에게 영남을 공략할 수 있는 ‘제2의 노무현’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친노라는 조직적이고 충성도 높은 핵심 지지층을 갖고 있다는 것도 그에겐 큰 무기다.
손학규 대표는 현재까지는 이번 재·보선의 최대 피해자다. 지난해 민주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아웃사이더의 설움을 떨치고 범야권 대표 주자로 성장해 가고 있었지만, ‘문재인 바람’에 이어 ‘안철수 태풍’이 연거푸 덮치면서 존재감이 실종 위기에 내몰렸다. 그의 당내 입지가 얼마나 좁아졌는지는 지난 4일부터 5일까지 진행된 ‘28시간짜리 사퇴 해프닝’으로 표출됐다.
손 대표는 4일 저녁 측근 의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주먹으로 탁자를 수차례 내리치면서 울분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통적 지지층과 호남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한 식구’로 인정받기 위해 당직인선 등에서 측근들을 뿌리치고 양보에 양보를 거듭하고, 말 그대로 ‘시키는 대로’ 몸 바쳐 다 해줬는데 남은 게 뭐냐는 분노가 폭발해 버린 것이다. 그의 ‘사퇴 해프닝’이 단지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 경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는 차원이 아니라 민주당 내에서 축소된 자신의 입지, 동료들에 대한 배신감 등이 중첩돼 터진 ‘사고’임을 알 수 있다.
손 대표로서는 어떻게든 재기의 돌파구를 찾아야 할 절박한 상황이다. 원심력도 만만찮은데 현역 의원과 지역위원장, 핵심당원들마저 등을 돌릴 경우 그가 다시 설 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이번 재·보선의 피해자라고 말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존재감을 잃어버렸다. 손 대표에 이어 범야권 지지율 2위였던 그는 문재인 이사장 등장 이후 3위로 밀리더니 이제 존재감 없는 4위까지 떨어졌다.
손 대표나 정 최고위원이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유일한 자산은 민주당의 전통 당원들밖에 없다. 향후 진행될 범야권 대통합 과정에서 이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만이 이들의 존재감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다. 혁신에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전통 지지층은 지키는 고난도 줄타기를 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박공헌 언론인
부산 동구청장 선거 서울보다 뜨거운 내막
박근혜 vs 문재인 ‘PK 목장의 혈투’
서울시장선거에 가려져 있지만 이번 10·26 보궐선거에서 정치권이 예의주시하는 곳이 또 있다. 바로 구청장을 다시 뽑는 부산 동구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정치적 함의로만 본다면 서울보다 더 중요한 지역”이라고 단언했다. PK 지역 민심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박근혜 대 문재인’이라는 대결 구도가 형성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참여정부 시절 홍보수석 비서관을 지낸 이해성 민주당 후보와 전 부산시 기획관리실장을 지낸 정영석 한나라당 후보가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여론조사에선 두 후보가 오차 범위 내에서 혼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이 전통적인 텃밭이긴 하지만 한나라당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 무산, 부산저축은행 사태, TK(대구·경북)에 대한 소외감 등으로 인해 민심 이반 현상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난 9월 24일 열린 부산 동구청장 선거 필승결의대회에 정의화 국회 부의장을 비롯해 원희룡 최고위원, 김정권 사무총장이 등 당 지도부가 참석한 것도 당의 이러한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원 최고위원은 “한나라당이 어렵다. 전국의 언론이 부산 동구청장 재선거를 보고 있다. 이번 선거의 승리는 남은 국정 임기를 잘 마무리할 수 있는 보약이 될 것”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또한 부산지역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도 긴장하는 기류가 흐르고 있다. 부산 동구에서 패배할 경우 내년 총선 공천 물갈이론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4일 결의대회에도 김무성 서병수 안경률 김정훈 허원제 이종혁 김세연 장제원 의원 등 이 지역 국회의원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김무성 의원은 “좌파에 정권을 주지 않으려면 총선·대선에서 승리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먼저 여기서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은 선거 지원 의사를 밝힌 박근혜 전 대표의 ‘활약’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은 ‘노풍’이 불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1988년 13대 총선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나와 출마해 당선된 곳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서울시장에서 지더라도 이곳을 탈환하면 사실상 이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만큼 당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손학규 대표는 지난 9월 24일 이해성 후보 선거 캠프 개소식에 참여해 “부산에서 ‘제2의 노무현’이 될 이 후보가 승리를 위해 출마했다. 이 후보가 동남풍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치권에선 이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사실상 한나라당의 ‘홈그라운드’에서 정치적 파괴력을 보인다면 대선주자로서도 발돋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문 이사장은 “앞으로 이 후보와 손잡고 거리를 누비며 함께 지지를 호소하는 기회를 반드시 만들 생각”이라며 적극적인 선거 지원을 예고하기도 했다. 이 후보 측은 박 전 대표가 부산에 내려오는 시기에 맞춰 문 이사장이 유세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박근혜-문재인’의 맞대결 성사 여부도 관심거리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박근혜 vs 문재인 ‘PK 목장의 혈투’
▲ 왼쪽부터 문재인 이사장, 박근혜 전 대표 |
부산이 전통적인 텃밭이긴 하지만 한나라당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 무산, 부산저축은행 사태, TK(대구·경북)에 대한 소외감 등으로 인해 민심 이반 현상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난 9월 24일 열린 부산 동구청장 선거 필승결의대회에 정의화 국회 부의장을 비롯해 원희룡 최고위원, 김정권 사무총장이 등 당 지도부가 참석한 것도 당의 이러한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원 최고위원은 “한나라당이 어렵다. 전국의 언론이 부산 동구청장 재선거를 보고 있다. 이번 선거의 승리는 남은 국정 임기를 잘 마무리할 수 있는 보약이 될 것”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또한 부산지역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도 긴장하는 기류가 흐르고 있다. 부산 동구에서 패배할 경우 내년 총선 공천 물갈이론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4일 결의대회에도 김무성 서병수 안경률 김정훈 허원제 이종혁 김세연 장제원 의원 등 이 지역 국회의원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김무성 의원은 “좌파에 정권을 주지 않으려면 총선·대선에서 승리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먼저 여기서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은 선거 지원 의사를 밝힌 박근혜 전 대표의 ‘활약’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은 ‘노풍’이 불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1988년 13대 총선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나와 출마해 당선된 곳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서울시장에서 지더라도 이곳을 탈환하면 사실상 이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만큼 당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손학규 대표는 지난 9월 24일 이해성 후보 선거 캠프 개소식에 참여해 “부산에서 ‘제2의 노무현’이 될 이 후보가 승리를 위해 출마했다. 이 후보가 동남풍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치권에선 이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사실상 한나라당의 ‘홈그라운드’에서 정치적 파괴력을 보인다면 대선주자로서도 발돋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문 이사장은 “앞으로 이 후보와 손잡고 거리를 누비며 함께 지지를 호소하는 기회를 반드시 만들 생각”이라며 적극적인 선거 지원을 예고하기도 했다. 이 후보 측은 박 전 대표가 부산에 내려오는 시기에 맞춰 문 이사장이 유세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박근혜-문재인’의 맞대결 성사 여부도 관심거리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