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표소에서 3~4km 산길 올라야 나오는 깊은 숲 속 야영장…‘초록황홀경’ 보며 ‘피톤치드샤워’를~
캠핑은 이제 가족단위를 넘어 MZ세대들에게까지 새로운 놀이 문화로 정착했다. 혼자서 단출하게 캠핑을 떠나는 ‘솔캠족’도 부쩍 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됨에 따라 공립 자연휴양림 이용 제한도 풀렸다. 공립 자연휴양림은 사립 캠핑장에 비해 가격이 70~80%나 저렴하고 자연환경도 훌륭해 매력적이다. 유행도 날씨도 다시 돌아온 캠핑의 계절, 이번엔 예약이 비교적 쉬운 제주의 자연휴양림으로 떠나본다.
전국에는 산림청이 운영하는 자연휴양림이 41개,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자연휴양림이 100여 개가 있고 이 가운데 제주에 4개의 공립 자연휴양림이 있다. 제주시에 교래자연휴양림과 절물자연휴양림, 서귀포시에 붉은오름자연휴양림과 서귀포자연휴양림이 있다.
제주로 여행 오는 사람들은 짐이 번거로운 캠핑보다는 호텔과 펜션 등의 숙박 시설을 예약하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제주의 자연휴양림 예약은 육지보다는 쉬운 편이다. 하지만 캠핑을 작정하고 왔더라도 캠핑 장비 일체는 제주공항 근처에서 빌릴 수 있으니 크게 걱정할 건 없다(관련기사 짐 싸기 걱정 뚝! 제주 캠핑 미니멀하게 즐기기). 숙박시설을 예약하는 비용으로 캠핑 장비를 빌리고 자연휴양림을 예약한다면 총 여행비용도 비슷해진다.
자연휴양림에는 보통 ‘숲속의 집’이라고 불리는 방갈로 형태의 객실과 노천 야영장이 갖춰져 있는데 펜션 느낌의 방갈로에서 자거나 야영장에서 캠핑을 할 수 있다.
캠핑장이 아닌 자연휴양림에서의 캠핑은 좀 특별한 구석이 있다. 화장실과 개수대 등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야영하기에 불편함이 없지만 주변 환경은 일반 캠핑장과 달리 나무가 우거진 깊은 숲속이다. 특히 공립 자연휴양림의 숲은 울창하게 잘 가꾸어져 있고 오롯한 산책길과 나무 데크 등 힐링을 위한 휴양공간도 잘 갖춰져 있다.
제주의 자연휴양림은 더 특별하다. 제주는 바다뿐 아니라 산과 숲에서도 국내 여느 지방과는 또 다른 이국적인 정취를 풍긴다. 특히 국내 최남단 자연휴양림인 서귀포자연휴양림은 인공조림의 요소를 줄이고 제주의 산과 숲의 특징을 그대로 살려 놓았다. 제주 특유의 식생으로 인한 숲의 신비함과 정글 같은 울창함이 휴양림을 더 풍성하게 한다.
서귀포 중산간에 위치한 서귀포자연휴양림은 좀 더 남다르다. 야영장으로 가려면 깊은 숲 속을 차로 한참이나 꼬불꼬불 올라가야 한다. 길은 아스팔트로 잘 닦여 있어 어떤 차라도 오르기 어렵지 않다. 보통은 매표소를 지나 바로 주차를 하거나 차로 좀 더 올라가더라도 길어야 1km 내외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서귀포자연휴양림의 야영장은 매표소에서 차로 3~4km나 산길을 더 올라야 나오는 깊은 산 속에 있다.
해발고도 700m에 위치한 깊은 산중으로 들어오니 공기의 질부터 다르다. 온도도 서귀포 시내와는 10℃ 정도 차이가 나 더 쾌적하다. 거저 등산을 했다는 쾌감도 인다. 숲 한가운데에는 큰 담이 있어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물이 가득 넘친다. 영화 대사처럼 ‘지금까지 이런 야영장은 없었다. 이곳은 야영장인가, 깊은 산 속 옹달샘인가’를 절로 웅얼거리게 한다.
산길을 올라오는 사이 어느새 한라산 정상부와도 성큼 가까워져 버린 야영장은 편백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피톤치드 향연이 펼쳐진다. 눈을 감고 숲의 향기를 들이켜니 코가 누리는 호사는 5성급 호텔 뷔페 부럽지 않다. 짐을 최대한 줄여 떠나온 캠핑이라 먹을 것과 입을 것은 소박해도, 숲이 내어주는 공기만큼은 욕심을 부려 실컷 마실 수 있다. 홀가분히 마스크를 벗고 누리는 온전한 하루다.
서귀포자연휴양림에는 42개의 야영 데크가 있다. 숲이 너른 만큼 데크가 만석이 되어도 야영객은 드문드문하다. 서로가 너무 가까우면 찔리고 너무 멀면 외로운 ‘고슴도치의 거리’를 유지한다.
낮 시간에 1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숲만 즐기다 가는 일반 방문객들의 이용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야영객은 오후 1시부터 다음날 오후 12시까지 야영 데크를 쓸 수 있다. 덕분에 늦은 저녁과 이른 아침의 휴양림은 오롯이 야영객들의 것이다.
특히 밤새 새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야외에서 잠을 청하는 야영객에게 늦은 밤과 이른 새벽의 숲은 무엇보다 반가운 자연의 선물이다. 이곳에 오면 24시간, 1년 365일이 내 것인 줄 알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도 뼈저리게 깨닫는다. 내가 내게 준 시간, 숲이 내게 준 시간이 새삼 새롭다.
아무의 방해도 없이 숲을 즐길 수 있는 한가한 시간을 갖게 된 야영객들은 도시에선 아무리 게으름뱅이라도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게 된다. 잠들기 전엔 밤의 별빛과 단란하게 한 잔 하고, 아침은 새벽이슬과 조촐하게 맞이한다. 다만 야영 데크에서 음식을 꺼내놓을 땐 까마귀는 좀 조심해야 한다. 음식을 데크에 놔두고 화장실에라도 다녀오면 사람이 없을 때를 노리던 까마귀가 음식물을 휙 채 가버린다. 야생이다. 사람이 까마귀를 무서워하지 않고 까마귀가 사람을 무서워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깊은 숲으로 찾아 들어온 야영객들은 대개 조용한 특징이 있어 방해 받을 일도 드물다. 사립 야영장에 비해 작은 데크 때문에 집 같이 큰 텐트를 펼칠 수도 없고, 그렇다 보니 야영 살림살이도 거창할 것이 없다. 문득 이렇게 적은 물건으로도 하루, 이틀 혹은 며칠을 훌륭하게 살아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캠핑을 좀 다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잠시의 이런저런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캠핑의 짐은 최소한으로 줄여야 결국엔 더 편하다. 한 가족이, 혹은 혼자나 친구끼리 이렇게 하룻밤 자연 속에 묻혀 잠을 청하는데 드는 비용은 1만 원 안팎이다.
서귀포자연휴양림에는 여러 생태탐방코스도 있어 틈틈이 산책하기도 좋다. 난이도는 누구나 걸을 수 있을 만큼 낮은 편이다. 차와 사람이 함께 다닐 수 있는 3.8km의 차량순환로는 길 하나가 숲을 둥글게 돌아가며 나 있다. 고도를 높이며 난대‧온대‧한대의 수종이 어우러지는 한라산 특유의 생태숲을 걸어서뿐 아니라 자동차를 타고도 즐길 수 있다. 그 외에도 1.1km의 생태관찰로, 2.2km의 어울림숲길, 5km의 숲길산책로가 있고 670m의 혼디오몽 무장애나눔숲길에선 유모차를 끌며 산책할 수 있다. 숲을 돌아 법정악전망대에 오르면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서귀포 시가지를 굽어볼 수 있고 마라도까지 탁 트인 제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숲에선 양치류와 비자나무 등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여러 이국적인 수종들을 관찰할 수 있고 삼나무, 편백나무, 곰솔, 주목, 서어나무에 둘러싸여 ‘초록황홀경’을 느낄 수 있다. 숲은 4월 말이라는 날짜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울창하게 푸르고 깊다. 걷다 보면 종종 노루나 다람쥐와도 마주친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길을 따라 걸어도 좋다. 발바닥에도 마음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제주=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