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연장의 꿈’ 향해 한발 한발
▲ 시장 선도자가 되기 위해 동물의약품 회사에서 시작해 생명전문기업으로 거듭난 우진비앤지 민운기 사장을 만났다.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최근 항비만식의약품 개발연구 정부 과제 선정, 생명연장물질 상용화 특허 출원 등으로 화제를 불러 모으는 우진비앤지 민운기 대표이사 사장(63)의 말이다. 1977년 과학축산연구소라는 동물의약품회사에서 출발해 생명전문기업으로 거듭나기까지, 쉽지 않았던 여정을 소개한다.
우진비앤지는 1977년 건국대학교 축산과 출신의 강석진 대표이사 회장(68)이 동창 두 명과 함께 설립한 과학축산연구소가 그 모태다(법인 설립 1985년). 과학축산은 창업 이듬해부터 다국적기업의 동물의약품 원료를 독점적으로 들여와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무역회사에 다니던 민운기 사장이 선배 강 회장의 강권에 못 이겨 합류한 것은 1981년.
우진비앤지는 창립 초기 가루형 사료 첨가제와 물에 녹여 먹이는 수용산 제제 위주로 사업을 펼쳤다. 1990년 화성에 새로운 공장을 세우며 주사제 시장에 진출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런데 1995년 정부에서 KvGMP(동물약품우수제조시설) 의무화 제도를 예고하면서 일이 꼬였다.
“1997년부터 그거 안하면 사업 못한다고 했죠. 우리는 자신도 있었고,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따랐습니다. 1996년부터 설비에 돈이 막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은행에서 돈을 빌리자니 이자가 아까운 거예요. 그래서 원료를 외상으로 사고 3개월 만에 갚는 방법을 썼습니다.”
그렇게 1년. 1997년 하반기 들어와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 무시무시한 IMF 외환위기가 닥친 것이다.
“원료를 살 때는 환율이 800원이었는데 갚으려고 보니 1000원, 1200원, 1500원…. 아직도 날짜가 생생한데 12월 23일엔 2300원까지 가는 거예요. 시쳇말로 있는 돈 쫙쫙 빨렸죠. 그렇게 몇 개월 더 지나고 1998년 4월 1일엔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사람이 숨을 멈춰서 5분이면 뇌가 죽는다잖아요. 회사도 하루만 약속된 돈이 채워지지 못하면 그게 부도죠. 정말 깔딱깔딱했어요.”
영업사원들이 주유소에서 법인카드로 결제했는데 결제가 안 떨어져 현금을 가지고 가서야 잡혀있던 차가 빠져나올 수 있을 만큼 살얼음판을 걸었다. 그때 20년간 사업을 함께해온 노바티스에서 중역 셋이 날아왔다. 그들은 일주일 동안 진을 치고 우진비앤지의 회생 가능성을 타진했다. 결론은 원료 두 달치 외상 공급. 이로써 우진비앤지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IMF 때 그렇게 혼이 나고 나서 유동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죠. 이후 보수적으로 경영했습니다. 자금도 외환계획까지 시스템화해 실시간으로 보이게 해놓았죠. 그래서 2008년 금융위기 땐 오히려 국제규격 첨단 GMP 설비를 지을 정도로 탄탄해졌습니다.”
외환위기 때 유동성의 원인은 수입 원료에 있었다. 우진비앤지는 사실 그 전부터 이에 대한 대비, 즉 ‘원료독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국적 기업이 원료를 대줘서 편하게 좋은 제품을 만들지만 환율이 왔다 갔다 하면 원료 가격을 안 올려도 원가가 움직이고, 장사가 좀 되겠다 하면 원료 가격을 올려요. 시쳇말로 노가 나게 해주질 않죠. 죽겠다고 하면 실탄 밀어주고. 우리가 다국적 기업의 용병인 셈입니다. 캐시카우(현금창출원)도 있어야 하지만 바이오 쪽으로 가야 동등한 기회가 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우진비앤지는 1992~3년 인력을 확충하는 등 준비기간을 거쳐 1997년 본격적으로 미생물 원료를 갖기 시작했다. 위기를 넘긴 이후 미생물을 원료로 하는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해 미생물 추출·배양·분리·정제 기술에서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했다. 2002년부터는 기존 동물 일변도에서 벗어나 식물 쪽으로 확장, 친환경농자재 분야에도 진출했다.
“이제까지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빠른 추격자)로 2등 전략으로 생존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젠 선진국에서도 막 치고 들어오니까 우리도 공격적으로 가야 합니다. 즉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시장 선도자)가 돼야 한다는 거죠. 이를 위해 차세대 산업을 이끌 노화지연물질, 항비만물질, 피부재생물질 등을 7~8개 학연기관과 공동연구하고 있는데 순조롭습니다.”
지난 2005년 수출을 본격화한 우진비앤지는 4년 만에 100만불 수출탑을 받았다. 이후 매년 평균 50% 이상 수출 신장을 기록, 내년에는 300만불 수출탑 수상이 확실시된다. 실질 수출 10년 만인 2015년께 1000만불 수출탑 수상이 목표다. ‘자연과 생명공학이 우리의 미래다’라고 외치는 우진비앤지의 미래가 기대된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
민운기의 ‘등산경영론’과 성공 스텝
“사업도 등산도 절실해야돼”
민운기 사장은 해발 1000m가 넘는 국내 218개 산을 모두 등정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지난 2000년부터 매일 10㎞씩 달릴 정도로 마라톤 마니아인 그는 2005년 초 후배가 한겨울 태백산을 간다기에 따라나섰다가 산에 빠져들었다.
“1월 8일이었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그때부터 쫓아다녔죠. 그러다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며 1000m 넘는 산 리스트를 만들었어요. 처음엔 100여 곳이었는데 등산하면서 찾아보니 점점 늘어나 222개(4곳은 휴전선 안 위치)나 되더군요. 처음에 그렇게 많았으면 시작도 안했을 겁니다. 허허.”
민 사장은 지난해 말 홍천의 가리산(1051m)을 끝으로 ‘218봉’ 완등을 마쳤다. 이제 국내 100대 명산 완등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운 그의 ‘등산경영론’을 들어보자.
“산행이 15㎞면 6시간가량 걸립니다. 거의 매주 이 시간 동안 혼자 있어보면 철학자가 됩니다. 회사의 골치 아픈 문제도 6시간만 집중적으로 화두로 잡고 가면 길이 딱 나와요. 등산의 목표(정상)와 루트 설정, 계절적 준비 등과 집행이 경영과 꼭 같습니다.”
이어지는 ‘민운기의 성공스텝’이다.
“결국은 절실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절박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남들이 하는 만큼만 하려고 하고. 진심으로 절박하게 생각하고 뭘 하든 정확히 방향을 잡고 최선을 다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사업이든 연애든 등산이든….” [로]
“사업도 등산도 절실해야돼”
민운기 사장은 해발 1000m가 넘는 국내 218개 산을 모두 등정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지난 2000년부터 매일 10㎞씩 달릴 정도로 마라톤 마니아인 그는 2005년 초 후배가 한겨울 태백산을 간다기에 따라나섰다가 산에 빠져들었다.
“1월 8일이었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그때부터 쫓아다녔죠. 그러다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며 1000m 넘는 산 리스트를 만들었어요. 처음엔 100여 곳이었는데 등산하면서 찾아보니 점점 늘어나 222개(4곳은 휴전선 안 위치)나 되더군요. 처음에 그렇게 많았으면 시작도 안했을 겁니다. 허허.”
민 사장은 지난해 말 홍천의 가리산(1051m)을 끝으로 ‘218봉’ 완등을 마쳤다. 이제 국내 100대 명산 완등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운 그의 ‘등산경영론’을 들어보자.
“산행이 15㎞면 6시간가량 걸립니다. 거의 매주 이 시간 동안 혼자 있어보면 철학자가 됩니다. 회사의 골치 아픈 문제도 6시간만 집중적으로 화두로 잡고 가면 길이 딱 나와요. 등산의 목표(정상)와 루트 설정, 계절적 준비 등과 집행이 경영과 꼭 같습니다.”
이어지는 ‘민운기의 성공스텝’이다.
“결국은 절실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절박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남들이 하는 만큼만 하려고 하고. 진심으로 절박하게 생각하고 뭘 하든 정확히 방향을 잡고 최선을 다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사업이든 연애든 등산이든….” [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