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빚투 법적 자문 늘어…입증 안된 사안도 한번 터지면 끝장 ‘합의금’으로 입 막기
연예계와 변호사 업계의 빈번한 교류가 시작된 것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전속계약 분쟁이 늘어나면서부터다. 허점이 많았던 당시의 전속계약을 두고 소속사를 떠나려는 연예인과 붙잡으려는 소속사가 법정 분쟁을 벌이는 일이 많았다. 소속사들은 업계의 관행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전속계약 자체에 법적인 허점이 많았던 터라 연예인이 승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과정에서 연예 전문 변호사라 불리는 법조인들이 유명세를 얻기도 했다.
그렇지만 점차 전속계약이 법적 공백을 메우며 탄탄해지기 시작하면서 전속계약 분쟁 자체가 크게 줄었고, 더 이상 연예인만 승소하는 방향으로 소송이 진행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저작권, 명예훼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연예계와 변호사 업계의 업무 교류가 많아지면서 이제는 어지간한 연예기획사의 계약은 모두 변호사의 자문을 거친다.
요즘에는 연예계 리스크 매니지먼트 영역도 점차 변호사의 업무가 돼 가는 분위기다. 연예인이 각종 물의에 휘말리면 대응 초기부터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연예인들이 SNS(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공개하는 자필 편지도 변호사의 법적 검토를 거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최근에는 아예 변호사가 법적인 내용부터 대중의 반응까지 감안한 편지를 미리 작성한 뒤 연예인이 이를 자필로 다시 써서 공개하는 경우도 있다. 결혼과 이혼 등 스타의 개인사 관련 사안을 소속사가 아닌 법무법인이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발송하는 일도 이젠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최근 몇 년 새 변호사들이 가장 많이 연예계와 얽히는 사안은 ‘미투’와 ‘빚투’다. 미투의 경우 각종 성범죄 관련 사안으로 시작돼 요즘에는 학폭(학교폭력) 미투가 더 많아지는 추세다. 성범죄, 학폭, 채무 등 민감한 문제와 연관돼 있는 내용의 공론화인 터라 당연히 변호사의 법적 자문과 법적 대응이 필수불가결하다. 다만 문제는 사실인지 아닌지 모호한 미투와 빚투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에 알려진 연예인 미투와 빚투는 대부분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익명의 네티즌이 과거 연예인으로부터 성범죄나 학폭 피해를 당했다며 관련 피해 내용을 올리거나, 연예인 본인이나 가족이 채무를 변제하지 않아 힘들다는 글을 올려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혹 언론사로 직접 제보해 기사화되면서 대중에 알려지기도 한다.
문제는 이렇게 대중에 공개된 미투와 빚투가 빙산의 일각이라는 점이다. 피해자나 피해자의 가족 내지는 피해자 지인이라며 해당 연예인의 소속사에 연락해 사과와 피해구제를 요청하는 사례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연예기획사는 가장 먼저 변호사를 통해 법적 자문을 구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학폭 미투나 빚투가 많은데 사실 여부가 모호해 법적으로 다툴 여지가 충분해 보이는 폭로도 많은 편이다. 그렇지만 연예기획사 차원에서 적절히 대응하지 않으면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거나 언론사에 제보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이 벙어리 냉가슴 앓는 경우가 많다”면서 “학폭 폭로의 경우 대부분 직접 만나 소속사 차원에서 사과의 말과 일정한 위로금을 건네 상황을 해결하려는 연예기획사도 많다”고 얘기한다.
실제로 한 중견 연예기획사 대표는 “연예인 입장에서 이미지가 워낙 중요해 사실이 아닐 거라는 확신이 있을지라도 사전에 대응해 무조건 막으려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미투나 빚투가 한 번 터지면 그걸로 끝이다.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도 그땐 이미 늦다. 해당 연예인이 사실이 아니라며 절대 대응하지 말라고 해도 소속사가 나서 빨리 무마하려 하는 게 바로 그런 이유”라며 안타까워했다.
문제는 빚투인데 법적으로 연예인이 변제해야 할 채무가 아닌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경우 변호사가 직접 나서 법적인 설명과 함께 빚투를 주장하는 이를 설득하는데 쉽지 않은 과정이라고 한다.
대형로펌 소속으로 중대형 연예기획사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과거에는 가족 관련 채무로 연예기획사에 연락이 오는 경우 가급적 변제해주고 일을 마무리 짓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전액은 아닐지라도 채권자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성의는 보였다. 문제는 그러고 나면 바로 다른 채권자들에게 연락이 온다는 것이다. 악성 채무의 경우 대부분 채권자가 여러 명”이라며 “결국 연예인이 더 이상 채무 변제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때 제보해 언론에 터지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채무의 존재 자체도 모호한데 무작정 빚을 갚지 않으면 언론에 폭로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다. 그럴 땐 명예훼손 등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한다는 강경 입장으로 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내용들이 루머가 돼 서초동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닌다. 연예인 누구의 학폭 폭로가 임박했다느니, 연예인 누구는 가족의 채무 때문에 곤란해 하고 있다는 내용 등이다. 신뢰도만 놓고 보면 루머에 가깝지만 연예기획사에 관련 연락이 와서 변호사에게 법적 자문을 구한 것 자체는 사실이다. 결국 법적 논의가 오갔다는 과정 자체는 팩트지만, 학폭이나 빚투 피해 호소 내용 자체가 사실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일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 해 상당한 위로금을 건네는 경우도 생긴다. 사실 여부도 확인되지 않은 사안을 두고 합의금 같은 법적 보상까지 이뤄지는 셈이다.
최근 들어 ‘무조건 막고 보자’는 연예계의 오랜 관행이 서서히 깨지며 변호사와 상의해 강력 법적 대응을 선택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한다. 앞서의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는 “소속사 직원이 아닌 변호사가 직접 피해 호소인을 만나 강경 대응 입장을 밝히면 바로 연락을 끊고 사라지는 이들도 꽤 된다”면서 “그렇지만 연예기획사 입장에선 단 한 명이라도 실제 폭로를 할 경우 치명적인 상황에 노출되기 때문에 쉬운 결정은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
김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