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손학규 대표는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권 단일후보로 나선 박원순 씨를 위해 선거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기로 했다고 한다. 여권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중심으로 결집하기에, 야권 대표로서 당연한 선택이라 한다. 그런데, 모두들 떨떠름한 분위기다. 무소속 후보로 나온 박원순 씨를 위해 야당의 대표가 나선 것이 뭔가 어색함을 주기 때문이다. 왜, 이런 마음이 생겨났을까?
지난 10월 12일 국회 민주당 대표실로 가 보자. 당시 손 대표는 “박원순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는 ‘더 큰 민주당’을 만들어나가는 선봉장이 될 것”이라 하면서, “무지개 연합군이라고 일컬어지는 범야권의 총 단결 선거대책위원회로 이번 선거를 반드시 승리로 이끌 것”이라 했다. 그런데 박원순 후보가 승리한다면 그것은 더 큰 민주당보다는 민주당의 존재 여부에 대한 대중의 심판이 이루어진 것이다. 민주당의 위기이다. 이런 판에서, 손 대표가 취할 길은 새로운 정치 변화를 만들어내는 비장한 분위기 연출이다. 정치적 결단의 순간에 ‘필사즉생, 생즉필사’를 연출하는 그의 장기를 살려야 한다.
현재 민주당 대표로서의 손학규는 있으나, 정치인 손학규의 정체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민주당 대표로 등장하자마자, 과거 대표를 거쳐 갔던 정세균 정동영과 비슷한 ‘그 나물에 그 밥’의 존재가 된 듯하다. 손 대표로서는 억울하다. 무엇보다 그는 민주당 대표가 된 이후,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를 구현하려 했다.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야당의 정책을 제시하는 등 역할을 다 했다. 그런데 손 대표를 보는 대중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그 이유는 바로 정치인 손학규에게 국민들이 막연히 기대했던 역할, 손 대표가 만들어 주기를 원했던 변화는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바라는 손 대표의 변화는 무엇일까?
| ||
다양한 정치 현안이나 이슈에 대해, 손 대표는 국민을 위한다는 진정성,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게 한다. 야당 대표로서 여당에 대항하여 싸울 때, 정작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성찰도 없이, 따분한 과거 야당의 구태의연한 아젠다와 방식으로 마치 시험의 정답 찾기와 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한다.
제도권 정당의 존재 이유가 의문을 받을 때, 야당도 대중의 버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만일 한나라당이 대중의 버림을 받으면, 민주당도 그냥 같이 ‘허당’이다. 손 대표는 변화를 바라는 국민의 마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드러내야 한다.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이 분명 도래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국민들의 변화 욕구를 분명하게 공유해야 한다. 적어도 그렇게 할 때, 남보다 많이 배우고 또 교수까지 한 인텔리 지식인이자 정치인으로서의 손학규 씨 정체가 더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국민이 막연히 희망을 걸고 있는 ‘키다리 아저씨’는 이름도 얼굴도 알 수 없기에 존재감이 없다. 그렇다면, 손 대표도 존재감이 없는 투명인간이 되면 키다리 아저씨가 될 수 있을까? 키다리 아저씨의 존재감은 국민의 마음속에 뚜렷하지만, 손 대표의 존재감은 점점 사라지기에 안타까울 뿐이다.
연세대 심리학 교수 황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