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폐 잘라놓고 내쫓기까지…”
▲ 의사의 오진으로 멀쩡한 폐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수술이 진행된 국립대학병원.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2009년 6월 수술 후 박 씨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수술 전후를 추적해 봤다.
2011년 10월 기자가 병실을 찾았을 때 박 씨는 말을 제대로 못하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여러 개의 호스를 몸에 꽂은 채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식사도 불가능해 빨대를 이용해 미음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박 씨는 낯선 기자의 모습에 가쁜 숨을 들이마시며 아들의 손을 꼭 붙잡고 놓질 않았다. 기자는 박 씨의 아들을 통해 박 씨의 사연을 들어봤다.
2007년 중국에서 간이식 수술을 받고 귀국한 박 씨는 2007년 말부터 서울대병원에서 1년에 한 번씩 전체검사를 받았다. 그러던 2009년 4월 전체검사 도중 박 씨의 폐에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혹 같기도 하고 (곰팡이)균 같기도 하다”는 것이 당시 검사를 담당했던 의료진의 의견이었다. 이후 박 씨는 바로 흉부외과 김 아무개 교수에게 진료를 받게 됐다.
2009년 5월 22일 박 씨는 김 교수로부터 “조직검사 할 필요없다. 100% 암이다”며 폐암 진단을 받았다. 다행인 것은 종양의 크기가 좁쌀만큼 작아서 절제수술을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2009년 6월 2일 수술 전 의료진은 환자 보호자에게 수술동의서를 받으면서 박 씨의 상태와 시행될 수술에 대해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도 의료진은 ‘100% 암이다’라며 수술동의서에도 ‘항암’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그렇게 흉강내시경 수술은 김 교수의 집도로 6시간에 걸쳐 시행됐다.
수술 다음날 김 교수는 박 씨의 가족들에게 “폐암 수술했다”고 말하며 수술 후 치료계획 등을 설명했다.
그런데 그날 밤 박 씨는 갑자기 열이 오르더니 가래를 뱉지 못하고 급기야 호흡곤란 증상을 보이는 등 상태가 심각해져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스스로 호흡을 못해 기관절개를 하고 가래를 뽑아냈다. 그 뒤로 박 씨는 50여 일 동안이나 중환자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이 후에도 박 씨는 상태가 호전되면 일반실로 왔다가 다시 같은 증상을 보이면 중환자실로 가는 반복된 생활을 했다.
이후 9월부터는 병원 재활센터에서 재활프로그램에 맞춰 하루 30분~1시간 씩 회복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1월경 박 씨는 같이 병실을 쓰는 환자들로부터 감기가 옮아 폐렴에 걸렸고, 다시 상태가 악화됐다.
박 씨의 아들은 “멀쩡하게 두 발로 병원으로 걸어 들어간 노인이 2년 5개월여가 지난 지금 병실에 누워 있다. 오진으로 멀쩡한 폐의 3분의 2를 잘라 내지만 않았다면 이 상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며 병원 측의 오진에 의한 명백한 의료사고라고 주장했다. 2009년 11월 조직검사 결과 박 씨의 병은 암이 아닌 크립토콕쿠스증, 진균으로 판명됐다.
이에 대해 기자는 지난 12일 전화통화를 통해 병원 측의 입장을 들어 봤다. ‘(진균을 암으로)오진에 의한 수술로 환자 상태가 나빠진 것 아닌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병원 측은 “박 씨는 면역억제제를 복용하고 있어 약물 치료가 불가능했다. 어차피 폐 절제 수술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조직검사도 없이 폐암 진단을 한 것이 오진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병원 측은 “박 씨의 경우 면역억제제를 복용하고 있어 조직검사를 할 경우 출혈이 심해 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수술 후 환자치료에 소홀한 것은 아니었느냐’는 질문에는 “수술 후 운동 열심히 하라고 했지만 환자가 운동을 게을리해서 폐렴에 걸렸다. 그래도 병원에서는 미음도 드리고 탈수증상방지를 위한 조치도 취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 또 더 이상 우리 병원에서 치료할 필요가 없어 2차 병원을 소개해 줬지만 환자가 버티고 나가지 않아 병원 측이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씨의 가족은 병원이 거짓으로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우선 출혈 때문에 조직검사를 할 수 없었다는 병원의 의견에 대해 박 씨의 아들은 “이미 지난 2007년 11월에 이 병원 호흡기내과에서 조직검사를 한 바 있다. 자신들의 오진을 떠넘기기 위한 변명일 뿐이다”고 반박했다. 의무기록 확인결과 조직검사를 한 적이 있다는 박 씨 아들의 주장은 사실이었다. 또 그는 “진균이라도 수술을 했을 것이라는 말은 수술전 듣지도 못했다. 결과에 짜맞춘 병원의 변명일 뿐이다”고 일축했다. 더군다나 그는 “병원에서 소개시켜 준다는 2차 병원에 대해 알아보니 아버지와 같은 중환자를 받을 시설도 안돼 있다며 그 병원에서 오히려 만류했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자 결국 병원 측은 지난 9월 27일 박 씨의 강제퇴원 절차를 진행했다. 병원 측은 박 씨의 퇴원간호 계획지에 박 씨의 퇴원시 상태를 의식상태 명료, 이동방법 도보라고 작성했다. 추후관리란에는 걷지도 못한 환자에게 ‘외래진료’라고 기록했다. 또 병원에서는 박 씨 측에게 퇴원결정 내용증명서를 보내며 “병원의 퇴원지시를 거부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급여제한을 요청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협박했다. 작년 1월 박 씨는 병원의 신청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산정특례’ 환자로 등록됐다. 산정특례는 희귀·난치질환으로 등록한 환자에 대해 보험공단에서 치료비를 지원해 주는 제도다. 이 산정특례는 병원이나 환자나 아무나 신청이 가능하지만 의사확인이 필수사항이다. 다시 말해, 의사가 동의하지 않으면 박 씨는 이 혜택을 누릴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그만큼 박 씨 측의 병원비 부담은 가중되는 것이다.
2009년 5월부터 2011년 9월까지 박 씨의 총 진료비는 6000여만 원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병원비 때문에 박 씨의 가족들이 병원에서 버티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확인결과 서울대 병원은 이미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보험급여로 3억여 원을 받았다. 그것도 모자라 병원 측은 이미 법원에 박 씨의 집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해 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광진구에 소재한 박 씨의 단독주택은 지난 8월 1일 가압류결정이 내려진 상태다. 이미 병원 측에서 취할 조치는 다 한 셈이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