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부스스 눈곱은 덕지 ‘뉴스를 말씀드…헥! 헥!’
직업적 특성상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주는 유명세가 있을 뿐, 아나운서도 엄연히 조직에 소속된 회사원이다. 부와 명예를 누리는 스타 아나운서들도 결국 보너스 나오는 달만 애타게 기다리는 평범한 샐러리맨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들도 숙직을 하고, 업무 수행 과정에서 실수나 잘못을 범하면 시말서를 쓰기도 한다. 얼마 전 생방송 뉴스를 펑크낸 전현무 아나운서 역시 시말서를 쓰고 징계까지 받을 예정이다. 숙직실에서 너무 숙면을 취한 탓이었다. 화면 속에선 반듯한 아나운서지만 카메라 밖에선 평범한 직장인인 그들만의 고충을 들어본다.
얼마 전 새벽 5시 라디오 뉴스를 펑크 내 논란이 되었던 아나운서 전현무. 과도한 스케줄 탓이냐, 아나운서답지 않은 무책임함이냐를 두고 누리꾼은 물론 KBS 아나운서실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본인이 방송 펑크 이후 거듭 사과의 뜻을 전하며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그의 이미지에는 상당한 상처가 남았다.
사실 전현무는 이전에도 방송 펑크 위기의 순간이 여러 차례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가 KBS 아나운서로 입사한 뒤 대구 순환근무 시절의 이야기다. 오전 7시 30분 뉴스를 진행하던 전현무는 늘 아침잠이 많아 고민이었다. 문제의 그날 또한 잠에서 깨어보니 뉴스가 시작하기 9분 전인 7시 21분! 부랴부랴 스튜디오에 도착해 뉴스 석에 앉았으나 그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다.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은 물론 부스스한 머리에 눈곱조차 떼지 못한 채 그는 서둘러 뉴스를 내려 읽어가야만 했다. 무사히 방송을 끝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전현무. 문제는 그 이후였다. “해도 해도 너무하다” “무슨 수재민이 뉴스를 진행하느냐!” 등등의 시청자 항의 전화가 빗발친 것. 당시 사건은 이른바 ‘대구 괴물 뉴스 사건’으로 방송사에 길이 남아있다.
한편 방송 펑크 위기는 서울로 올라온 뒤에도 수차례 있었다. 그가 기억하는 최악의 사건은 다음과 같다. 토요일 밤 생방송 <연예가중계>에 출연한 뒤 회식에 참석한 전현무는 일요일 새벽 5시 라디오 뉴스의 진행이 예정돼 있었다. 알딸딸하게 취한 그는 고질병인 늦잠이 두려워 아예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잠을 청했다. 잠깐 눈을 붙이려다 스튜디오에서 깊은 잠에 빠진 그는 뉴스를 알리는 시보가 울려도 깨어나질 못했다. 결국 당시 방송은 시보가 나가고 약 10초간의 적막이 흐른 뒤 “짜아아아!”하는 괴성으로 시작됐다. 보다 못한 엔지니어가 스튜디오에 들어가 깨우자 전현무가 일어나면서 괴물 울음 같은 소리를 낸 것. 그야말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아나운서들의 조근 및 야근 시스템이 정착돼 있는 SBS는 공중파 3사 가운데 유일하게 야간 숙직이 없었다. 그렇지만 훈남 아나운서 김환의 실수 때문에 최근 아나운서의 숙직이 부활됐다. 그가 일요일 오전 5시 뉴스를 펑크낸 것. 당시 그는 새벽 뉴스를 위해 잔뜩 긴장한 채 잠이 들었지만 알람시계 소리를 듣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의 방송 펑크 이후 SBS는 긴급회의를 열어 아나운서들의 근무체계를 개편했다. 토요일 야간 근무자가 회사에서 잠을 잔 뒤 일요일 오전 뉴스까지 책임지도록 한 것. 그로 인해 ‘김환 숙직’이라 불리는 주말 숙직이 부활하고 말았다. 김환은 매주 토요일 <나눔 로또 생방송>을 진행할 때마다 토요일 야간 근무자들을 마주치게 되는데 그때마다 미안함에 고개를 떨어뜨리게 된다고 한다.
MBC 아나운서 출신인 MC 김성주 또한 숙직에 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갖고 있다. 그는 자신의 결정적인 퇴사 이유로 과도한 스케줄과 숙직에 대한 부담감을 언급한 바 있다. 그가 숙직 근무 도중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소식을 긴급 속보로 전할 때의 일이다. 외신을 통해 침공 소식이 전해지자 보도국은 긴급 속보 준비에 들어갔다. 당시 김성주와 또 다른 여자 아나운서가 숙직 중이었는데, 윗선에선 김성주의 뉴스 진행에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뉴스보다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로 활동해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자 아나운서는 메이크업 시간이 길어질 수 있어 결국 김성주가 속보에 투입됐다. 그런데 생전 처음 맡아보는 긴급 속보는 생각보다 훨씬 급박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이 조금 전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했다’는 내용 외에는 더 이상의 아무런 내용도 원고에 적혀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습니다. 자세한 소식은 들어오는 대로 전해드리겠습니다”는 말만 무한 반복했다. 숙직 기자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뉴스의 살을 붙여가는 찰나 그는 또 다른 굴욕을 당했다. 정규 방송시간이 시작되자, 아침 뉴스 앵커가 출근해 그의 자리를 빼앗은 것. 달랑 원고 한 장으로 두 시간을 버틴 김성주는 쓸쓸히 숙직실로 돌아갔다고 한다.
늘 깔끔한 정장차림의 아나운서라고 해서 숙직 중에는 정장을 갖춰 입을 필요가 없다. 무릎이 헤진 트레이닝복부터 쉽게 보기 힘든 여자 아나운서들의 ‘쌩얼’도 숙직 현장에선 자주 볼 수 있다. 공중파 방송국 여자 아나운서 K는 뉴스 속 아나운서들의 감춰진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는 주말에 근무하는 아나운서들의 경우 편한 옷차림을 선호하다보니 화면 위는 잘 갖춰진 정장 차림이지만 화면에 보이지 않는 하의는 트레이닝복 차림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한편 아나운서들의 업무는 숙직 외에도 실로 다양하다. 신입 아나운서들의 경우 매일같이 아나운서실로 배달되는 수백 통의 우편물을 정리해야 한다. 얼마 전 후배 기수가 입사해 막내 딱지를 뗀 KBS 아나운서 도경완은 “막내시절 하루 일과의 대부분은 우편물 정리였다”며 “나에겐 언제쯤 팬레터가 올까 서럽기도 했다”고 전했다.
막내 시절을 혹독하게 겪었다는 MBC 아나운서 오상진은 “정수기에 물이 조금이라도 떨어질라치면 잽싸게 물통을 교환해야했다”며 “19리터짜리 물통 교환은 전통적으로 막내 남자 아나운서들이 담당한다”고 전했다.
전화 응대 또한 아나운서들의 또 다른 업무다. 공중파 아나운서 L은 몇 년 전 고 앙드레 김과의 전화 통화만 생각하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고 한다. L의 동료 아나운서를 패션쇼 모델로 섭외하기 위해 직접 아나운서실로 전화를 건 앙드레김. L은 “감사합니다. 아나운서실입니다”라며 친절히 전화를 받자 앙드레 김은 “저는 디자이너 앙드레김입니다~ 아나운서 ㅇㅇ씨를 섭외하려고 하는데 통화가 가능할까요?”라며 물었다고. 그러자 L은 “참 흉내 잘 내시네요. 네가 앙드레김이면 나는 베르사체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장난전화에 시달리던 L이 저지른 너무나 커다란 실수였다.
주영민 연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