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물가 상승 속 국내도 예외 없어…대출이자 부담, 소비여력 약화 우려
러시아의 국제 에너지 시장 배제, 우크라이나 농산품 공급 차질, 미국의 긴축에 따른 달러 강세가 글로벌 물가 상승의 핵심이다. 최근 중국의 경제봉쇄로 공산품 공급 차질까지 빚어지는 모습이다. 하반기 우크라이나 파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면 농산품 공급 대란이 현실화되고 이는 식료품 값이 급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방역 봉쇄로 주춤해진 중국의 에너지 사용까지 재개되면 한동안 정체됐던 국제유가도 다시 상승세를 보일 수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면 달러 강세로 에너지 수입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와 같은 곳은 원자재 수입 부담이 커진다. 부담을 줄이려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려 원화가치 하락을 방어해야 한다. 지난해부터 한국은행은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올 들어 원화가치는 달러화 대비 7.1% 하락했다. 유로(7.08%)와 비슷한 수준이고 일본 엔(13.46%), 영국 파운드(8.72%)보다 낮은 하락폭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이명박 정부는 원화가치 하락을 방치했다. 환율 상승이 수입물가 상승보다는 수출 경쟁력을 높여 기업실적을 개선하고 임금을 높아 물가부담을 상쇄한다는 ‘낙수효과’를 노렸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경제팀은 이명박 정부 때 핵심인사들로 채워지고 있다. 김대기 대통령실장, 추경호 경제부총리, 최상목 경제수석이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기획재정부 차관을 역임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명박 정부 초대 금융위 부위원장이다.
금리도 숙제다. 이자는 비소비 지출이다. 부담이 커질수록 가계 소비여력이 훼손된다. 생활의 질 하락이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우리나라 가계 평균소득은 5478만 원에서 6125만 원으로 11.8% 높아졌다. 부채가 7099만 원에서 8801만 원으로 24% 불어났지만 순자산은 3억 1572만 원에서 4억 1452만 원으로 31.29% 더 큰 상승세를 기록했다. 저금리 덕분에 원리금상환액은 1024만 원에서 1265만 원으로 10.49% 늘어나 상대적 증가폭이 적었다. 소득 내 비소비 지출 비중은 17.5%에서 18.3%로 큰 변화가 없었다.
올해부터 이자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이자비용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미국 기준금리가 3.5% 이상으로 오르면 달러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그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한은 기준금리가 4% 이상이던 2007~2008년 가계대출 금리(신규)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가 6~7%대, 신용대출이 7~9%대였다. 올해 2월 현재 금리는 주담대 3.88%, 신용대출 5.33%다. 이자부담 증가는 이제 시작이다.
이자율과 물가 상승이 겹치면 가계 소비여력 훼손을 피하기 어렵다. 노동계가 임금을 올려달라는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월급만 빼고 다 올랐다’는 불만은 이미 나오고 있다. 기업들은 원가 상승에 따른 이익 성장세 둔화를 우려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기간 동안 최저임금제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역대 정부는 물가가 불안해지면 유류세 인하, 은행의 예대마진 통제, 전기와 통신 등 공공성 요금의 인상 억제 등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긴축의 큰 흐름에는 이 카드는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의 아킬레스건이었던 집값은 윤석열 정부에서도 난제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재건축 재개발 규제 완화를 통한 공급이 새 정부의 기조다. 1기 신도시 재건축 화두는 벌써부터 주택시장을 들끓게 하고 있다. 대대적인 재건축 재개발은 이주 수요를 자극하고 이는 전세 부족,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기 쉽다. 금리상승과 대출규제로 주거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도 크다. 소득 상위 계층이 주 수요층인 서울과 경기 핵심지역 집값은 오르는데 소득 하위 계층이 주로 거주하는 수도권 외곽, 지방 집값은 하락하는 현상이다.
새 정부가 무주택자와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의 담보인정비율(LTV)은 높일 방침이지만 40~50%선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손대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자율 상승까지 감안하면 지금보다 가계대출 문턱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 소득이 낮은 이들은 기존 부채를 줄여야 할 수도 있다. 소득 2분위(상위 80%)와 3분위(60%)의 경상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율은 21%대이지만, 4분위(40%)과 5분위(20%)는 이 비율이 5.4%, 18.9%다. 차입을 통한 주택구매 여력이 더 높다는 뜻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