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털이 투자 꺼려” 스타트업 돈줄 말라…‘앵커 프로토콜’에 예치한 투자업체도 손해 극심
VC에서 투자를 집행하는 심사역으로 재직 중인 A 씨의 말이다. A 씨의 말처럼 최근 가상자산 전문 VC뿐만 아니라 여러 VC가 투자 집행 자체를 꺼리고 있다고 한다. 최근 엄청난 소용돌이로 작용했던 테라, 루나 때문이다.
벤처캐피털(VC)이란 잠재력이 있는 벤처기업에 자금을 대고 높은 자본 이득을 추구하는 금융자본을 말한다. 최근 VC 업계에서는 가상자산 시장이 화제였다. VC의 다음 먹거리가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 프로젝트, NFT(대체불가토큰) 등에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다. 그런데 최근 루나가 침몰하는 사태로 인해 VC 업계도 2차 충격을 겪게 됐다.
VC 업계가 2차 충격을 겪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루나 침몰로 코인 시장이 큰 하락을 기록한 상황에서 투자한 업체가 가상자산 관련 회사일 경우 관련 프로젝트 자체가 큰 손실이 났다. 두 번째로는 최근 금융 관련 스타트업이나 IT업체가 루나와 관련된 테라 메인넷(블록체인 네트워크 시스템)이나 앵커 프로토콜(탈중앙화 금융 시스템 플랫폼) 등에 연관된 경우다.
루나 투자자로 유명한 가상자산 전문 VC인 해시드벤처스는 두 가지에 모두 해당하는 경우로 볼 수 있다. 해시드는 이더리움 초기 투자로 업계 유명 인사인 김서준 대표가 이끌며 엄청난 성장세를 보였다. 해시드는 업계에서 주목 받으며 아시아 최대 블록체인 전문 투자사로 발돋움하기도 했다.
김 대표의 대표 투자 포트폴리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루나다. 김 대표의 루나 지갑에는 루나 2700만 개가 있었다. 김 대표가 보유한 루나 가치는 고점 기준 약 4조 2000억 원 수준이었지만 현재 그 가치가 거의 상실됐다. 김 대표 개인 지갑도 문제지만 해시드가 투자한 회사들도 루나 발행사인 테라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경제에 따르면 실제로 해시드는 전체 투자 포트폴리오 기업들을 대상으로 테라와 UST 폭락 사태에 따른 손실 여부 조사에 나섰다고 한다. 포트폴리오 기업 가운데 테라 생태계를 기반으로 블록체인 사업을 진행 중인 곳들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NFT를 발행한 테라 기반 NFT 게임 더비 스타즈도 해시드가 투자한 곳이다. 테라 메인넷이 사실상 작동이 불가능해지면서 더비 스타즈도 큰 변화를 겪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한 P2E 게임 관계자는 더비 스타즈가 예상된 출시일을 맞추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이 관계자는 “루나가 완전히 가치를 잃으면서 P2E 게임 핵심인 코인을 그대로 쓸 수가 없는 상황이다. 메인넷을 교체해야 하는데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작업은 아니지만, 꽤 어려운 작업이라고 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 전까지 해시드는 엄청난 투자 수익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아예 대놓고 따라 사는 투자자문사도 있었다고 한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해시드가 투자했다고 하면 어떻게든 같이 투자에 들어가거나 투자를 못 하면 해시드 투자 코인을 따라 사는 ‘카피 펀드’도 있었다. 이런 펀드나 유사 투자자문업의 경우 이번 루나 사태로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최근 VC들은 가상자산 관련 프로젝트 투자가 많아졌고 자연스레 이번 사태로 인해 직·간접적인 손실이 늘어나게 됐다. 앞서 A 씨는 “금리가 오르는 데다 루나 사태까지 겪고 나니 당분간 투자 보류나 극히 매력적인 경우 아니면 투자 자제가 내려진 VC가 여럿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해시드처럼 직접적으로 루나와 관련이 있거나 투자 회사가 테라 메인넷과 연관이 없음에도 충격을 받는 또 다른 업계도 있었다. 루나가 잘나갈 때는 연 20% 이자를 보장하는 앵커 프로토콜을 의심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5조 원 이상 준비금을 들고 있는 테라 재단이 앵커 프로토콜 서비스를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나 가격은 신고가를 경신하며 단기간에 100배 이상 올랐고 재단이 쌓아둔 돈은 점점 늘어나면서 루나 혹은 루나와 연동된 UST를 향한 믿음이 점점 커졌다.
이에 핀테크 스타트업, VIP 대상 서비스, 소위 부티크 업체로 불리는 유사 투자자문업에서 앵커 프로토콜에 돈을 예치했다. 이런 회사는 고객들에게는 은행 금리 이상 고금리를 약속한다. 이후 앵커 프로토콜에 돈을 예치해 수수료 일부를 떼고 나머지를 고객들에게 주는 회사도 있었다고 알려졌다. 자세한 수익 비법은 공개하지 않아 고객은 몰랐지만 다소 편한 방법으로 영업수익을 올려오다가 최근 예치금까지 손실을 본 회사들이 있다고 전해진다.
알고리즘 퀀트 자동 매매 업체 가운데 루나 사태 기간 동안 급락과 급반등을 이기지 못하고 청산된 경우도 있었다. 퀀트 매매는 트레이딩을 할 때 컴퓨터가 수학이나 통계 지식을 이용해 빅데이터를 분석해 알고리즘으로 매매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번 루나, UST 급락과 이를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한 급반등은 컴퓨터가 분석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해한 상황이었다. 이때 퀀트 투자 알고리즘이 큰 손실을 보게 됐다.
예를 들어 알고리즘은 루나가 급락하자 알고리즘은 하락 이익을 얻기 위해 숏으로 대처했는데 이때 급반등이 나오면서 청산됐다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이런 서비스에 가입한 사람 중 일부는 루나를 사지도 않았는데 투자 자산의 90%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한 블록체인 프로젝트 개발자는 “루나는 탈 김치코인(국내 코인)이라 불리며 해외에서 더 많이 거래됐지만 그럼에도 국내 여러 업체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돼 있었다. 이 연결고리들이 연쇄적으로 붕괴하면서 이번 사태에서 나비효과처럼 전혀 다른 업계도 피해를 보는 경우도 생긴 것 같다”면서 “단적인 예로 루나와 아무 관련이 없는 또 다른 프로젝트도 앞으로는 예전만큼 투자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