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여왕도 서울에선 안 통했다
▲ 지난 10월 16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서울 남산을 찾아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를 펼치고 있다. ‘선거의 여왕’ 지원 유세가 무위에 그치자 박근혜 대세론이 크게 타격을 입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나 후보의 패배로 직격탄을 맞은 진영은 박근혜 전 대표 측이다. 박 전 대표는 이번 재보선을 사실상 ‘올인’하다시피 지원했고 특히 서울시장 선거에는 사활을 걸었다. 선거결과가 나온 직후 “대세론은 애초 없었다”고 말하는 박 전 대표 말에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가 묻어난다. 실제 친박 진영에서 느껴지는 서울시장 선거 패배에 대한 위기감은 총선 패배에 버금가는 분위기다. “더 이상 박근혜 전 대표를 믿을 수는 없다”는 불안감으로 친박계 일각의 이탈 조짐도 보이고 있다. 박 전 대표 주변에서는 여러 가지 비상상황에 대비해 준비해둔 시나리오를 대대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과연 친박 진영이 느끼는 위기감은 어느 정도인지, 박 전 대표의 깊어지는 고민을 들여다보았다.
“박근혜 얼굴만 바라보다 이 꼴이 된 것이다.”
한 친박 인사는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 이후의 참담한 심경을 이 한 마디로 밝혔다. 실제 친박 진영에서 느끼고 있는 위기감은 예상보다 큰 듯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4년 만에 선거 지원에 직접 나서며 화려한 복귀식을 했으나, 그 결과는 뼈아픈 패배로 이어지고 말았다. 여의도의 한 정치 컨설턴트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무상급식 이슈가 파문이 되어 애초 한나라당이 불리한 상황에서 출발했고 정권심판론이 크게 작용하는 재보궐 선거라는 점도 감안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박근혜 전 대표가 받은 타격은 매우 크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상징적 이미지에도 큰 흠집이 가해졌고 결과적으로 내년 총선에서 친박, 친이를 불문하고 이대로의 한나라당은 어렵다는 인식이 더 확실해졌음을 보여준 선거”라고 진단했다.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전·현직 친박 의원들도 재보선 결과를 본 뒤 참담한 심경을 전했다. 서울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한 친박계 의원은 “‘박근혜 대세론’에 근본적 회의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서울 민심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차기 대선주자로 서울과 수도권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승산이 희박하다. 이 상태로라면 박 전 대표도 영남권의 ‘지역 맹주’라는 오명을 듣게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박 전 대표는 물론 한나라당 전체가 뼈를 깎는 심정으로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서울시장 선거 개표 방송을 지켜보던 친박 진영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대목은 강남권과 용산을 제외하고는 나경원 후보가 전패했다는 점이다. 특히 박 전 대표가 공식 선거운동 첫날 집중적인 유세전을 펼쳤던 구로 지역을 포함하는 남서권에서 박원순 후보(58.2%)와 나경원 후보(41.4%)의 격차가 16.8%p로 가장 크게 벌어졌다. 박 전 대표의 속을 쓰리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구로지역 유세에 동행했던 한 친박 인사는 “구로가 한나라당 강세 지역은 아니지만 이번에 박근혜 전 대표가 유세를 돌며 현장 분위기가 매우 뜨거웠다. 어느 정도 선전을 예상했는데 결과를 보고 충격을 받은 게 사실”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이번 재보선은 ‘대선 전초전’으로 불렸으나, 우선 내년 총선에 직접적인 여파를 줄 수밖에 없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 결과는 총선에 대한 한나라당의 앞날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중립계 의원은 “수도권 전멸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18대에서 선전했던 지역들도 이번 서울시장 선거 득표율이 10~20% 가까이 떨어진 곳이 상당수다. 특히 20~30대 득표율 차이를 보고는 충격 이상의 공황 상태에 빠졌다. 서울 민심이 수도권 민심과 직결된다고 보는데, 이번 결과만 놓고 보면 내년 총선에서 몇 석을 건질지 예상조차 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친박계에서 더 위기감을 느끼는 이유는 재보선을 계기로 친박계 의원들 및 지지인사들의 이탈 조짐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나라당 내 친박계는 ‘박근혜 대세론에 함께 취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들을 만큼 느슨하고 안이한 대처를 해온 측면이 크다. ‘친박’을 표방하는 의원들이 많지만 이들을 유기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친박계 의원들은 당내에서조차 일종의 ‘소외감’을 느낀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또한 이들 중엔 이번 재보선을 계기로 ‘친박’에서 하루 빨리 돌아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현실적인 목소리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고 한다. 앞서 언급했던 친박 인사는 “그동안 박근혜 전 대표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번 재보선을 보니 박근혜 전 대표도 안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더 확실해졌다. 박 전 대표가 ‘애초 대세론은 없었다’고 말하지만 ‘없었던 게 아니라 대세론이 이미 끝났다’고 보는 게 더 맞는 말일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런 ‘난기류’ 때문인지 박 전 대표 측도 지난 대선 이후 맞은 가장 큰 고비에서 다양한 대응 시나리오를 모색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미 박 전 대표 측도 대선까지 남은 기간 동안에 벌어질 여러 가지 가능성과 변수에 대비한 전략이 논의되어 왔던 게 사실. 재보선을 계기로 불거진 ‘당명 변경’ 아이디어 역시 이미 몇 달 전부터 친박계 일각에서 이야기가 흘러나온 바 있다. 이 아이디어는 친박계 S 의원이 구체적으로 주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친박 인사는 “그동안은 여러 가지의 아이디어 중 하나로 논의됐던 게 사실이지만, 이번 재보선을 계기로 당명 변경을 포함해 전반적인 한나라당 쇄신 작업이 이뤄질 것이라고 본다. 현재의 한나라당으로는 어렵다는 판단에 대해서는 친박, 친이를 불문하고 전반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단순히 한나라당의 ‘간판’을 바꾼다고 해서 국민들의 반감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좀 더 깊은 고민의 속내가 담긴 듯하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총선에 앞서 이번 기회에 대대적인 ‘물갈이’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부 친박계에서도 “그동안 어정쩡한 입장에 있던 ‘친박’ 타이틀을 가진 인사들을 이번 기회에 정리하고 조직을 재정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 외곽에 있는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친박 정당’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재보선 이후 급부상하고 있다. 이번 재보선에서 박 전 대표 지지인사들이 모여 만든 미래연합과 친박연합은 각각 충주시장, 대구 서구청장 선거에 후보를 내고 한나라당 후보들과 경쟁하며 저마다 ‘친박 후보’임을 내세우는 웃지 못할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한편 이번 10·26 서울시장 선거 결과가 박근혜 전 대표에게 당장의 위기가 될 수 있지만, 내년 총선과 대선을 위해 좋은 반면교사가 될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지적도 나오고 있다. 친박계의 한 인사는 이에 대해 “홍준표 대표 체제가 들어서며 사실상 친박계가 당의 주류로 부상했는데 그동안 친박계는 박근혜 전 대표에게만 기대거나 개인의 안위에만 매달렸을 뿐 당 개혁이나 민심을 살피는 데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번 재보선을 좋은 약으로 삼아야 한다”며 재출발을 다짐했다. 과연 박근혜 전 대표는 흐트러진 친박 대오를 어떻게 정비하며 재도약을 하게 될까.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박사모’ 어찌하오리까
주군과 엇박자 ‘니들 정체가 뭐니’
박근혜 전 대표와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과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박사모가 박근혜 전 대표를 ‘사랑하는’ 방식이 점점 엇박자를 낳고 있는 것. 그동안 박사모가 간혹 박근혜 전 대표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보여 주었고, 박 전 대표 또한 이미 지난 2007년 대선 이후 차츰 박사모와는 거리두기를 해온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10·26 재보궐 선거에서도 충주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도왔던 박근혜 전 대표와는 달리 박사모는 미래연합 후보를 도우면서 또 한 차례 박 전 대표를 ‘곤란’하게 했다. 또한 박사모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적극 도운 나경원 후보와도 불편한 사이다. 지난 2009년 10월 정광용 회장이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나 의원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가 소송을 당한 적도 있다.
그런가 하면 지난 7·4 전당대회에서도 박사모는 친박계 주류와는 다른 목소리를 냈었다. 당시 친박계에서는 유승민 의원과 함께 홍준표 의원을 돕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음에도 박사모는 이와는 별개로 권영세 의원을 지원하겠다고 공개 선언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박사모’에 대해 박 전 대표 주변에서도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고 한다. 한 친박계 관계자는 “정치인 팬클럽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박사모가 별개의 정치조직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젠 ‘주군’인 박근혜 전 대표가 ‘박사모’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든 메스를 대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조]
주군과 엇박자 ‘니들 정체가 뭐니’
그런데 이번 10·26 재보궐 선거에서도 충주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도왔던 박근혜 전 대표와는 달리 박사모는 미래연합 후보를 도우면서 또 한 차례 박 전 대표를 ‘곤란’하게 했다. 또한 박사모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적극 도운 나경원 후보와도 불편한 사이다. 지난 2009년 10월 정광용 회장이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나 의원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가 소송을 당한 적도 있다.
그런가 하면 지난 7·4 전당대회에서도 박사모는 친박계 주류와는 다른 목소리를 냈었다. 당시 친박계에서는 유승민 의원과 함께 홍준표 의원을 돕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음에도 박사모는 이와는 별개로 권영세 의원을 지원하겠다고 공개 선언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박사모’에 대해 박 전 대표 주변에서도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고 한다. 한 친박계 관계자는 “정치인 팬클럽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박사모가 별개의 정치조직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젠 ‘주군’인 박근혜 전 대표가 ‘박사모’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든 메스를 대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