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을·경기지사 제외 김포시장·강서구청장 등 민주당 후보에 부정적 작용…이재명 책임론 불가피
6·1 지방선거는 민주당 참패로 막을 내렸다.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선거구 17곳 중 5곳에서 승리하는데 그쳤다. 호남과 제주를 제외하면 ‘최대 승부처’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승리한 것이 유일한 성과였다.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이 인천 계양을에 출마해 초선 의원이 됐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자마자 이재명 의원에 대한 비판론이 고개를 들었다.
6월 1일 지방선거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출구조사 결과를 시청하고 밖으로 나와 정처 없이 걷는다”면서 “자기는 살고 당은 죽는다는 말이 당내에서 유행한다더니 국민의 판단은 항상 정확하다”고 했다. 박 전 원장은 “당이 살고 자기가 죽어야 국민이 감동한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의원을 겨냥한 말로 풀이됐다.
이 의원은 6·1 지방선거 선거운동 기간 막판 민주당 지도부를 인천 계양을에 총동원해 자신의 승리에 사활을 건 행보를 보였다. 통상 총괄선대위원장이 전국을 돌며 지원 유세를 하던 정치 공식을 거스르는 장면이었다. 민주당 내부에 따르면 이재명 의원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 발동한 것인지, 총괄선대위원장으로서 이기적인 행동인지에 대해 당내에서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친문계 당권주자로 꼽히는 홍영표 의원은 6월 2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사욕과 선동으로 당을 사당화시킨 정치의 참담한 패배”라며 지방선거 결과와 관련해 ‘이재명 책임론’을 띄웠다.
지방선거 패배 직후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민주당 안팎에선 ‘김포공항 이전 공약’이 이번 지방선거 막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대형 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와 이재명 총괄위원장 콤비가 띄운 히든카드가 패배 요인으로 꼽히는 셈이다.
김포공항 이전 공약은 5월 28일 발표됐다. 김포공항 국내선 수요를 인천국제공항 및 수도권 인근 공항으로 분산하고 김포공항 부지에 ‘제2의 강남’을 개발하겠다는 취지였다. 서울 서남부 개발 핵심 부지로 공공부지인 김포공항을 활용하겠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일요신문 취재에 따르면 이 공약은 단기간에 급조돼 나온 공약이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김포공항 이전 공약은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카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공약이 처음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5월 초쯤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에서 이 공약에 대한 반발 여론이 심했다고 한다. 송영길 캠프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이 공약에 대해 우려를 표한 것에 가로막혀 선거 캠페인 초반 공식 공약으로 발표되지 못했다.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김포공항 이전 공약은 어떻게 이재명·송영길 콤비의 핵심 공약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을까. 취재에 따르면 이재명 의원이 인천 계양을에서 ‘초접전 여론조사 성적표’를 받으면서 기류가 바뀌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 의원이 윤형선 국민의힘 후보와 오차범위 내 접전을 펼치는 여론조사 결과가 누적되면서, 회심의 카드로 김포공항 이전 공약을 꺼냈다는 내용이다.
김포공항 이전 공약은 선거 막판 정국을 뒤흔드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한 민주당 기초단체장 캠프 소속 관계자는 공약이 발표된 뒤 “어느 지역구로 유탄이 튈지 모르는 로또 같은 공약”이라면서 “이 공약이 호재일지 악재일지 지역구마다 결과 값 편차가 굉장히 클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 말처럼 김포공항 이전 공약은 다양한 지역구에 변수로 작용한 것처럼 보인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김포공항과 이해관계가 얽힌 지역구 곳곳에서 공약에 대한 온도차가 극심했다. 먼저 서울시장, 김포시장,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등에서 김포공항 이전 공약 불똥이 튀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강서구는 김포공항 소재지다. 2010년부터 강서구청장은 진보진영에서 내리 승리해왔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결과가 달랐다. 이번 강서구청장 선거에선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리 폭로자로 잘 알려진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가 51.30% 득표율을 기록하며 근소한 차이로 당선됐다. 김포시장 선거에서도 정하영 현직 김포시장이 낙선하며 민주당 4연승 도전이 저지당했다. 서울시장 선거에선 송영길 후보가 서울시 산하 25개 구에서 전패했다.
그 가운데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의원은 김포공항 이전 공약 수혜를 봤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의원 맞대결 상대였던 윤형선 국민의힘 후보는 “마지막에 이재명 캠프에서 내세운 김포공항 이전 공약이 계양을 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낙선 소감을 밝혔다.
윤 후보는 “계양구민들은 평소 소음 대책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었고, 고도 제한 때문에 재개발 재건축이 영향을 많이 받았다”면서 “20년 넘어도 실행하기 힘든 공약이지만 막연한 기대감이 마지막 표심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인천계양을 지역구와 김포공항을 함께 마주하고 있는 지역구도 있다. 바로 경기도 부천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부천에서도 김포공항 이전 공약이 ‘허니문 효과’를 막는 데 적잖은 효과를 봤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경기도지사 선거 개표 상황을 설명하며 “김동연 후보가 김은혜 후보를 역전한 뒤 관건은 어느 지역 투표함을 열지 않았느냐 여부였다”면서 “부천에 가장 많은 미개봉 표가 남아 있었는데, 부천의 지지세가 김동연 후보가 승부 쐐기를 박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본다”고 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도 “부천은 경기도에서 ‘허니문 효과’가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미친 지역 중 하나였다”고 짚었다.
김포공항 관련 가장 이해관계가 깊은 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 제주도에선 이번 공약과 관련한 별다른 후폭풍이 불지 않았다. 오영훈 민주당 제주도지사 후보는 55.14% 득표율을 기록하며 낙승했고,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도 김한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민주당은 제주 지역 광역의원 선거에서도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제주도의회 45개 의석 중 민주당은 27석을 챙기며 도정 동력을 확보했다.
김포공항 이전 공약이 전국적으로 민주당 후보들에게 막판 페널티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언급된다. 김포공항과 이해관계가 없는 지역구에서도 해당 공약을 부정적으로 봤고, 이에 따라 민주당 지지율이 전국에 걸쳐 소폭 하락했다는 지적이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교수는 “서울이나 수도권, 부산 등 지역엔 ‘김포공항 이전 공약’이 충분히 민주당 후보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고 본다”면서 “어떻게 됐든 간에 이번 선거 결과와 맞물려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이 책임론에서 자유롭긴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공약은 국민 눈높이와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것들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위원은 “이재명 의원은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포퓰리즘이라는 양면이 있는 본인의 리더십이 비판받는 이유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면서 “합의와 토론 없이 김포공항 이전 공약을 내세운 것은 이재명 리더십 그림자를 나타내는 사례로 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