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오세훈·이준석·안철수+한동훈 등 입지 커져…경쟁 아닌 갈등 땐 다음 총선 악재 작용 우려
#잠룡 대풍 국민의힘
국민의힘의 최대 지지기반인 대구·경북(TK) ‘적통’임을 강조해온 홍준표 전 의원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에 당선되면서 사실상 차기 행보를 개시했다는 분석을 낳는다. 홍 당선인은 앞서 지난 대선에서 TK의 압도적 지지를 윤석열 대통령에 빼앗기면서 경선 문턱에서 주저앉은 바 있다.
홍 당선인은 ‘보수의 적자’ 구호를 내걸고 경남도지사 시절 보여줬던 진주의료원 폐쇄 등 특유의 거침없는 돌파 행정을 대구에서 보여주면서 전국적 주목을 이끌어낼 것으로 보인다. 홍 당선인은 차기 대선 출마 여부와 관련해 “대선 재도전은 없다”는 발언은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 실제 그는 서울·세종 등지의 대구시청 업무 라인에 정무직을 전면 배치하는 등 전임 시장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시장이 차기 대선을 향한 징검다리라는 얘기가 계속 나오는 까닭이다.
홍 당선인 주변에서는 그가 지난 대선 경선에서 2030 남성들의 지지를 크게 받은 데다, 이번에 TK까지 거머쥔다면 5년 뒤를 충분히 내다볼 수 있다고 기대하는 모습이다.
사상 첫 4선 시장이 된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인도 5년 뒤 대선을 향한 고속주행에 시동을 걸었다. 특히 그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 서울 25개 구청장 후보와 시의원·구의원 후보를 지원하는 데 집중하면서 큰 성과를 이끌어냈다.
서울시내 구청장은 국민의힘 후보가 17곳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8곳에 당선되면서, 24 대 1의 치욕을 맛봤던 2018년 지방선거 결과를 되돌려놨다. 서울시의회도 국민의힘이 68%인 76석을 차지하면서 다수당 위치에 올랐다.
또한 이번 선거 과정에서 ‘오세훈 세력’이 당 내부에서 더욱 커졌다는 평가도 받았다. 선거캠프에 나경원·진수희 전 의원, 조수진·배현진·최재형 의원 등 전·현직 국회의원이 다수 합류하면서 이미 당 내부 세력화에 성공했다는 관측을 낳고 있다.
오 당선인은 차기 대선 출마에 대해 손사래를 치며 “5선 도전도 생각하고 있다”는 말까지 했지만, 당 내부에서 이를 믿는 이들이 많지 않다. 정치 경험이 많은 오 당선인으로서는 조기 등판이 절대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뿐, 전국에서 주목도가 가장 높은 광역단체장이라는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차기 대선에 뛰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간판으로 성남 분당갑에 출마, 당선된 안철수 전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이제 3선의 중진 의원이 됐다. 6월 2일부터 의원 임기가 바로 시작된 안철수 의원은 윤 대통령과 후보 단일화·인수위원장에 이어 원내 재입성에도 성공하며, 내년 당권 도전을 시작으로 대권 프로그램을 가동할 것이 확실시된다.
정치 경력이 10년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정치권에 뚜렷한 ‘라인’이 없는 안 의원은 일단 국민의힘 내부에 ‘안철수계’를 만드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포용력과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단점을 반드시 극복해내야 한다는 것이 정치권의 제언이다.
국민의힘을 이끌고 있는 이준석 대표도 후계자 그룹에서 빼놓을 수 없다. 대선에 이어 지선·보선 승리라는 전과를 거머쥔 그는 이번 선거를 거치면서 ‘좌충우돌 대표’라는 약점도 상당부분 불식시켰다.
특히 이 대표는 이재명 상임고문이 출마한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윤희숙 전 의원 등 이른바 ‘자객 공천’이 아닌 해당 지역구의 윤형선 후보를 공천, 이 고문을 계양에 묶어두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윤 후보의 선전으로 이재명 의원의 무게감을 크게 떨어뜨리면서, 국민의힘으로서는 인천 계양을은 졌지만 수도권은 물론 전국 여러 곳에서 민주당 세력을 무너뜨리는 효과를 봤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표는 큰 숙제를 안고 있다.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진 당 중앙윤리위원회의 징계 결과에 따라 이 대표에게 거취 압박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 앞서 이 대표는 성상납 및 증거인멸교사 의혹이 제기되면서 당 윤리위원회의 징계 절차가 개시됐다.
#윤석열 직계라인도 꿈틀
야당의 공격 대상을 보면 정부여당의 권력 서열이 보인다는 정치권 속설이 있다. 이에 비춰본다면 윤석열 정부 후계 그룹에서 단연 돋보이는 이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다. 민주당은 한 장관이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을 때부터 ‘소통령’ ‘세자책봉’ 등 어휘를 써가며 맹폭을 가했다. 장관이 된 이후에도 거의 매일 비판을 쏟아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5월 26일 법무부가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하고 공직자 인사검증을 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한동훈 법무부가 21세기 빅브라더가 되려는 것”이라며 한 장관의 무소불위 권력을 비판했다. 이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로 이어지는 직할 체계 무소불위 검찰공화국”이라고 윤석열 정부를 규정하면서 한 장관의 위치를 대통령 직계 라인으로 격상시켰다.
또한 윤호중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한동훈 장관 청문회 과정에서 제기됐던 한 장관 자녀의 스펙 논란과 관련해 “조사특위를 설치해 관련 의혹을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특정 장관 가족을 겨냥한 국회 내 조사특위 설치는 이례적이다.
민주당이 한 장관을 자꾸 때리는 것은 정치인으로 급부상해 대선 패배까지 안긴 윤석열 대통령이 자꾸 연상되기 때문이란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과거 윤 대통령처럼 한 장관도 국회가 지적하면 수긍하는 모습이 전혀 없고, 반박하는 태도만 보이고 있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은 이대로 놔둬서는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갈 것이란 걱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이 때릴수록 오히려 한 장관의 무게감은 커지는 중이다. 윤 정부를 상징하는 인물로까지 떠오르면서 팬덤까지 형성될 정도다. 한 장관의 가방·스카프 등 패션 소품까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됐다.
뚜렷한 계획 표명이 없긴 하지만 한 장관이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민주당과 정면승부를 불사, 윤 대통령이 쌓았던 것처럼 공정과 상식의 정치 자본을 축적할 것이란 예측이 있다. 이어 이를 밑천으로 2024년 봄 총선에 출마, 정치권에 입성하고 여세를 몰아 차기 대선에 도전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이미 정치권에 파다하다.
한 장관과 함께 내각 내 후계그룹으로는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있다. 그는 정치 경력으로 봤을 때 한 장관을 모든 면에서 능가한다. 하지만 국토부 장관 특성상 각종 정책 현안에 파묻혀 있을 수밖에 없어 최근 주목도가 떨어지고 있다. 장관직을 잘 수행한 이후 그 다음 행보가 과연 무엇일지 주목되는 이유다.
#친윤·비윤 분화 불가피
정치권에서는 대통령 임기 초반 후계그룹이 조기 부상하는 장면에 낯설어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후계그룹에서 경쟁이 아닌 갈등 양상을 표출할 경우, 다음 총선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도 우려한다. 하지만 후계그룹이 이미 표면화된 이상 현실을 받아들이고 흥행 자산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국민의힘 내부에서 나온다. 5년 내내 문재인 대통령에게 모든 관심이 집중되는 형태로 있다가 큰 실패를 맛본 민주당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국민의힘 후계그룹은 ‘친윤’과 ‘비윤’으로 분화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에게 각을 세우기 어려운 최측근 한동훈 장관과, 공동정부 창업자 안철수 의원, 원희룡 장관 등은 친윤 후계그룹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홍준표 당선인이나, 오세훈 당선인, 이준석 대표 등은 자기 지지층이 어느 정도 형성된 정치인인 데다 윤 대통령에게도 뚜렷한 부채가 없어 비윤으로서 독자적 후계그룹을 만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역대 정권 재창출 사례를 보면 현직과 결을 완전히 달리한 차별화 세력이 성공을 거둬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 후계자 이미지를 과감히 버리고 ‘주류세력 교체’라는 새로운 개혁 이미지를 통해 정권 재창출을 이뤘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대립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박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내내 개혁을 앞세우며 이 전 대통령에 거침없이 날을 세워 ‘여당 내 야당’이란 평가까지 들었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행정도시 설치 백지화 법안’에 반대해 법안을 부결시키면서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 이미지는 물론, 충청권 민심까지 박근혜 전 대통령은 덤으로 얻었다. 대립 전략이 명분과 실리 모두를 얻어내면서 2012년 말 대선에서 박 전 대통령은 승리를 거뒀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0선 출신 윤 대통령의 당선으로 국회의원 경력 등 과거 대통령이 공통적으로 가졌던 커리어가 무너졌다”며 “때문에 다양한 구질을 가진 선수들을 미리부터 불펜에 대기시켜야 큰 승부에서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후계그룹이 일찍 형성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평가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