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 영재, 상경해 전세 대출하려다 가짜 은행원에 속아 ‘방조범’ 벌금형…손해배상까지 하며 커리어 망가져

은행 직원은 “A 씨는 은행 거래 기록이 없어 대출이 어렵다. 은행 거래 기록을 만들어줄 테니 그대로 따라하라”고 했다. 은행 직원은 A 씨 계좌로 돈이 입금될 테니 그 돈을 찾아서 현금을 전달하기만 하면 거래 기록이 생기게 되고 대출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A 씨는 “당시 사회 경험이 전혀 없던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돈을 찾으러 은행에 갔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동시간대 보이스피싱 피해자 B 씨에게 연락하고 있었다. B 씨의 개인정보가 탈취됐는지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B 씨 상황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같은 시간대 B 씨에게 전화를 걸어 A 씨 이름을 대며 자신을 아무개 은행 A 과장이라고 소개했다. 조직원들이 말한 은행은 B 씨 주거래 은행이었다.
조직원들은 B 씨에게 “카드론 받은 게 있는데 은행에서 대환대출을 받는 게 좋겠다. 그러려면 카드론을 지금 당장 갚아야 한다. 내 이름으로 된 계좌로 카드론 받은 1210만 원을 넣어주면 처리하고 3500만 원을 연이율 8%로 전환해주겠다”고 말했다. B 씨는 주거래 은행에서 전화가 온 데다 카드론을 받은 상황과 금액까지 정확히 알고 있어 믿고 A 씨 계좌로 입금했다.
A 씨는 돈이 입금된 것을 보고 현금을 찾아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말한 사람에게 전달했다. 뒤늦게 B 씨는 보이스피싱인 것을 깨닫고 신고를 했지만 이미 돈은 계좌를 빠져나간 상황이었다. 경찰 수사가 늦어지면서 CC(폐쇄회로)TV 등이 지워져 A 씨 외에는 아무도 잡을 수 없었다. 결국 A 씨가 모든 민사적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수사기관은 A 씨가 ‘정상적인 대출 절차가 아닌 사실을 알고 있었고, 범죄에 연루된 금원임을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현금을 전달하는 행위가 보이스피싱 범행의 일환임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미성년자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젊은 나이에는 가혹할 수도 있는 판단이었다. 법조계에서도 “유명한 법 격언인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말이 보이스피싱 사건만큼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불이익으로’ 되는 경향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2019년 검찰은 A 씨를 보이스피싱 사기 범행 방조범으로 약식명령 처벌했다. A 씨는 벌금 400만 원을 납부해야 했고, 1210만 원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했다. 방조범이라도 민사소송에서는 과실에 의한 공동불법행위가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범인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을 잡지 못했으니 A 씨가 소송의 주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

서초동 김 아무개 변호사는 “대부분 수사기관이 주범들을 잡지 못하니 알바라고 생각해 전달하거나 A 씨처럼 모르고 전달하는 경우 모든 책임을 다 져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단순 전달책이라고 해도 징역형이 나올 정도로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다”고 말했다.
A 씨가 전달한 1210만 원을 두고 민사소송이 계속됐다. A 씨는 “범죄에 연루되고 소송이 계속 이어지면서 정신적으로 힘들어졌고 연습도 안 되고 경기력도 매우 안 좋아졌다. 더군다나 보이스피싱 방조범 형사처벌 기록 때문에 출전도 막힐 위기”라고 말했다. 실제 영재로 여러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던 A 씨는 보이스피싱 범죄 연루 이후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2022년 1월 길었던 민사소송 결과 1210만 원 중 A 씨가 36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A 씨는 “얼마 전 군대를 전역해 360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 일하는 중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부모님에게도 기댈 수 없어 한 달에 50만 원씩이라도 갚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B 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을 잡지 못해 A 씨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일정 부분 안타깝게 생각한다. 수사기관이 범죄조직 몸통을 잡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앞서의 김 변호사는 보이스피싱 범죄만 유독 전달책 등 단순 방조범에게 징역형까지 내리는 것을 두고 ‘국가적인 무능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회 경험이 없는 사람이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감언이설에 속아 단 한 번 알바를 한 것에 대한 처벌로는 과하다는 얘기다.
김 변호사는 “중국이나 필리핀 등과 형사사법 공조로 해결할 문제를 주부나 대학생 등을 가혹하게 처벌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면서 “보이스피싱 범죄가 나쁜 것과 별개로 가해자라는 이유로 사실상 피해자인데도 양형기준표까지 무시하는 수준으로 처벌하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근 김 변호사의 말처럼 단순 알바인 줄 알고 가담했다가 징역형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서류 전달, 현금 전달만으로 1회 혹은 하루 최대 20만 원 알바’라는 문구를 내세워 전달책을 모집한다. 사례는 매우 많다. 지난 4월에도 4회 전달한 20대 여성이 징역형을 선고 받은 바 있다. 20대 여성은 이 기간 동안 알바비로 65만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