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자리가 ‘봉’이가~ 상위 30위 공기업 22곳 ‘MB맨’이 꿰차
더욱 심각한 것은 편중 인사행태가 정무직에 국한되지 않고 국민의 생활과 직결되는 공공기관에서도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얼마 전 발생한 사상초유의 정전대란사고 원인 규명과정에서 한국전력공사와 자회사 등 전기관련 공기업 13곳의 임원들이 전문성이 부족한 낙하산 인사로 채워져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특히 현 정부 출범 이후 임명된 한전과 11개 자회사의 감사 12명 전원이 이명박 대통령과 끈끈한 관계로 맺어진 인물이라는 점은 국민을 경악케 했다.
문제는 이러한 경우가 비단 한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 정권과 어떤 식으로든 인연을 맺고 있거나 맺었던 인사들이 알짜배기 공공기관 감사직을 꿰차고 있는 행태를 들여다보면 낯이 뜨거울 정도다.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실속 있는 요직에 포진해있는 ‘수상한 감사’들의 실태를 파헤쳐봤다.
“가스기술공사 감사에 한국삽살개보존회 재무이사가 임명됐다. 감사를 삽살개처럼 하겠다는 것인가?”
지난 2009년 10월 지식경제부 국정감사에서 최철국 민주당 의원이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을 몰아붙였다. ‘낙하산 인사’의 예로 가스기술공사 감사에 임명된 정충택 전 한국삽살개보존회 재무이사를 거론하며 한 말이다. 당시 정 전 감사는 한반도대운하 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을 지낸 인물로 알려져 구설에 올랐다.
MB 정부 출범 이후 공공기관에 낙하산 인사들이 투입된 사례는 한두 건이 아니다. 특히 기관이 벌이는 사업 및 자금운용의 투명성을 감시하는 감사직은 기관장이나 상임이사에 비해 외부에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실속을 챙길 수 있는 노른자위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감사직에는 전공이나 능력과는 무관하게 권력과 어떤 식으로든 얽혀있는 인물이 쥐도 새도 모르게 들어앉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지난 2009년 2월 이 대통령이 선진국민연대 간부 250여 명을 청와대로 불러 연 만찬에서 사회자가 “공기업 감사는 너무 많아 일일이 소개 못 하겠다”고 했다는 얘기는 이미 유명하다. 이와 관련, 한 정계 관계자는 “샅샅이 들여다보면 정말 가관일 것이다. 권력과 온갖 연으로 얽히고설켜 있는 인물이 있는가하면 자격 미달자와 프로필마저 엉망인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개중에는 발로 뛰어다니며 정말 열심히 하는 이들도 있지만 일부는 거액의 연봉을 받고 있음에도 이름만 올려놓은 이들도 있다.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인 조사가 요구된다”고 귀띔했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사건은 이명박 후보의 선거외곽지역에서 활동했던 이상목 청와대국민권익비서관이 지난 9월 초 예금보험공사 감사로 슬그머니 취임한 것이다. 이 감사는 앞서 기업은행 감사에 내정됐다가 낙하산 논란으로 중도하차한 바 있는데 예보가 신임 감사 임명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친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예보의 경우에서도 드러났듯이 많은 기관들은 특정 인물을 감사로 발탁하게 된 배경과 임명과정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발탁배경을 일일이 따져보지 않고 정권과 직·간접적으로 연을 맺은 이들이 감사직을 맡은 것을 무조건 낙하산 인사로 단정 짓기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기관들의 감사직 현황을 샅샅이 들여다보면 뭔가 께름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면 2012년 11월 현재, 공공기관 감사로 재직 중인 인물 중 권력형 편중인사 논란에 휩싸일 소지가 있는 이들은 누구며 몇 명이나 될까.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는 총 285곳(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의 공공기관이 있다. 주목할 것은 감사들 중 상당수가 ‘대통령’ ‘선진국민연대’ ‘인수위’ ‘취임준비위’ ‘선대위’ 등 현 정권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주요 이력과 드러난 프로필을 추적조사해본 결과 285곳 중 ‘최소’ 70개 기관에 68명의 감사(이석원 한나라당 선대위 부대변인은 3곳의 감사를 동시수행)가 정권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비율로는 전체 공공기관의 무려 25%에 달한다. 지난해 7월 조사결과(286곳 중 77개 기관, 27%)에 비해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편중인사 논란이 거듭됐음에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논란이 일면 고치는 척이라도 하는 것이 정상일 텐데 공공기관의 임원에 누가 봐도 논란이 일 수밖에 없는 인사를 요즘에도 내리꽂고 있지 않나. 말뿐인 공정사회다”라고 쏘아붙였다. 특히 프로필 상으로 쉽게 확인되지 않는 학력과 지연, 드러나지 않은 이력 및 그들 간 ‘숨은 인연’, 제3자의 인사개입 여부까지 고려할 경우 실제 비율은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공공기관에 재직 중인 감사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대부분 이 대통령과 학연-지연 등으로 얽힌 대선캠프의 핵심측근들로서 인수위-청와대 등 권력요직을 거친 뒤 공기업의 감사로 빠져나가는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명예의 전당에까지 등재된 일류 공기업 인천국제공항공사의 경우 대선 캠프에서 상임특보를 역임했던 오항균씨가 감사를 맡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영득 감사는 이 대통령의 대선 법률자문팀장을 맡은 이력이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신우룡, 한국전기안전공사 이상훈, 한전KPS 정용대, 주택관리공단 고광욱, 중소기업진흥공단 이동호, 한국가스기술공사 박성태 감사 등은 이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또 에너지관리공단 이영섭, 한국거래소 김덕수, 한국기업데이터 이준호, 한국문화진흥 김성호, 한국방송공사 이병용, 한국소방산업기술원 문상옥, 한국환경공단 이택관, 한전 KDN 김무일 감사 등은 ‘인수위’라는 공통된 이력이 있다.
대통령직속기관에 몸담은 인사들도 다수 눈에 띈다. 경북관광개발공사 김종술, 교통안전공단 우성대, 한국광물자원공사 김홍규 감사 등은 민평통 자문위원 이력을 갖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임명배 감사는 사회통합위원회, 경상대학교병원 우주호 감사는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회 이력이 있다. 이들은 대통령직속위 등에서 1차로 ‘예우’를 받았다가 다시 공기업 감사직에 임명되는 ‘관운’을 보여주고 있다.
청와대 근무 경력도 공기업 감사로 가는 확실한 경우다. 한국주택금융공사 박흥신 감사는 대통령당선인 공보팀장 및 대통령실 정책홍보비서관을 역임했던 핵심 ‘MB맨’이다. 한국가스안전공사 김혜준 감사는 대통령 정무수석실 행정관 출신이다. 또 한국공항공사 박재홍 감사는 대통령 민정비서관실을, 한국수출입은행 배선영 감사는 대통령경제수석비서실을 거친 인물이다.
기초전력연구원 감사로 있는 안승규 한국전력기술사장은 현대엔지니어링 부사장 출신으로 이 대통령과 학연(고려대)과 직장연(현대그룹)으로 얽혀 있다.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과 유관한 인물도 상당수 포착됐는데 ‘영남라인’ ‘고대라인’ 인사들까지 일일이 따져 포함시키면 편중인사 비율은 훨씬 높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올해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조영택 의원은 ‘정부 주요요직 및 공공기관장 지역별 분석결과’를 통해 현 정부 출범 이후 100대 공공기관의 기관장과 감사 48.2%가 영남권 출신임을 지적한 바 있다. 영남인구가 호남이나 충청에 비해 훨씬 많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현 정부 들어 국가 요직에 영남인사 편중이 심해졌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편중인사 논란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여권 실세들이 상당수 물갈이 됐음에도 여전히 각 기관에 권력과 유관한 이들이 감사 감투를 쓰고 포진해 있다는 사실이다. <일요신문>이 확인한 결과 지난해 여름 이후 25명 이상의 감사직이 바뀐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정권과 얽혀있는 감사의 비율은 4분의 1을 웃돌며 지난해에 비해서도 크게 낮아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인사편중 논란 소지가 있음에도 여전히 ‘회전문 인사’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통령직속기관, 선대위, 인수위, 취임준비위, 한나라당에 몸담았던 전직 감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는 비슷한 이력을 지닌 인물들이 투입돼 재직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한국전력공사의 경우 강승철 인수위 자문위원이 있던 자리에 한대수 전 한나라당 사무부총장이, 한국철도공사는 김해진 대선 언론특보에서 박원관 한나라당 정책국장이, 에너지관리공단은 김대현 인수위 전문위원에서 이영섭 인수위 전문위원이 이어받는 등 회전문 인사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야당에서는 “감사 자리를 봉으로 생각하는 최악의 돌려막기 인사”라고 비난했다.
또한 이석원 한나라당 대선선대위 부대변인의 경우 한국산업인력공단과 한국기술교육대학교, 학교법인 한국폴리텍 등 3곳에서 감사로 재직 중이라 흥미를 끈다. 공단 측은 이에 대해 “법령에 따른 것으로 연봉은 한곳에서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만 답했다. 이곳의 전임감사는 18대 총선 한나라당 경북 김천 예비후보였던 송승호 전 <월간조선> 취재팀장이다.
감사직 인사편중에 대한 문제점은 또 있다. 조사결과 총 자산 상위 30위에 있는 공공기관 중 권력과 밀접한 인물이 감사로 있는 곳은 무려 22곳에 달했다. 한국전력공사 한국도로공사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수력원자력 한국가스공사 한국철도공사 한국수자원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기관들의 감사직은 역시나 ‘MB맨’들의 차지였다. 보수나 처우 면에서 알짜배기인 상위 30위 공기업의 인사 편중률은 전체 평균 25%보다 무려 3배나 높은 73%에 달했다. 알짜만 쏙 빼서 챙기는 이런 인사편중 행태는 이명박 정권의 인사 도덕성이 얼마나 땅에 떨어져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조영택 의원 측은 이에 대해 “편중인사는 이 대통령이 공언한 공정사회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특히 희망찬 내일을 꿈꾸는 미래세대에게 노력하려는 의지마저 무참히 꺾어버린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지연 학연 직장연 등으로 얽히고설킨 편중인사는 우리사회에서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