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칠’은커녕 달마 얼굴에 ‘먹칠’
▲ 금으로 그려진 진짜 달마도(왼쪽)와 금 성분이 포함되지 않은 가짜 그림. 지난 10월 28일 서울 광진경찰서는 금은 성분이 포함되지 않은 그림을 ‘순금 달마도’ 등으로 속여 판매한 혐의로 총판매책 황 아무개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김 화백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연합뉴스 |
경상남도 고성군 태생인 김 화백은 원래 민화가였다. 김 화백이 달마도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75년도부터였다.
어릴 적 똑같은 ‘노인의 꿈’을 자주 꿨던 김 화백은 당시엔 그 이상한 꿈을 ‘개꿈’으로 치부했다. 그런데 1975년의 꿈은 이전과는 달랐다. 전남 해남 대흥사에 머물던 김 화백은 또 다시 같은 꿈을 꿨다. 승려복 차림의 노인이 나타나 ‘나를 그려 1만 명에게 보시하라’고 해 김 화백은 그때부터 달마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 후 김 화백은 달마도를 그려 무료로 배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본격적으로 김 화백의 달마도가 유명해진 것은 방송출연 후부터다. 1998년 모 지상파 방송을 통해 김 화백의 달마도가 ‘기 발산’ ‘수맥 차단’ 등의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방송이 나간 뒤 김 화백의 달마도만 유명해진 것이 아니었다.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달마도 전문 화랑의 이 아무개 씨에 따르면 당시 김 화백이 방송에 나온 후부터 달마도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씨는 “김 화백이 기 달마도의 시초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방송 이후 김 화백은 돈도 꽤 많이 번 것으로 전해졌다. 이 씨는 “길거리에서 전전하던 그 사람(김 화백)이 지금은 경남 고성에서 그렇게 잘 산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김 화백은 경남 고성군에 ‘달마선원’이라는 곳을 만들어 거주하고 있다. 달마선원은 김 화백이 상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곳이다. 달마선원에는 김 화백이 만든 청광사라는 절과 달마도 박물관도 있다.
이렇듯 김 화백은 달마도를 통해 크게 성공했지만 방송출연이 모두 좋은 결과만 낳은 것은 아니었다. 김 화백이 방송을 통해 유명세를 타게 되자 소위 ‘업자’들이 김 화백에게 접근했다. 실제로 김 화백은 얼마 전에도 사기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기도 했다.
지난 5월 서울 광진경찰서는 가짜 금 독수리 작품을 수백만 원에 팔았다는 신고가 접수돼 그림을 판매한 홍보관 판매업자 백 아무개 씨(37)를 입건했다. 당시 백 씨는 서울 강동구 명일동의 한 상가에 홍보관을 차려 놓고 지역 노인들을 초청해 ‘달마도’로 유명한 김 화백의 작품이라며 주부와 할머니 등에게 금 독수리 그림을 한 세트에 600만 원씩 받고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백 씨는 신뢰도를 높이고자 노인들을 모아 김 화백의 작업실이 있는 경남 고성의 달마선원으로 데려가기까지 했다. 당시 경찰은 김 화백이 그림 제작·판매에 관여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고성의 달마선원 작업실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그런데 또 다시 김 화백이 사기사건에 연루되자 경찰은 사실상 김 화백이 공급책 역할로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총판매책 황 씨는 2009년 4월부터 김 화백과 인연을 맺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황 씨는 김 화백의 유명세를 듣고 김 화백에게 접근해 인공 진주가루로 금칠을 한 달마도를 제작케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금 달마도가 바로 사기에 쓰인 것이다.
황 씨는 김 화백으로부터 공급처를 확보한 뒤 전국에 홍보관 29곳을 설치하고 고객유치에 나섰다. 또 김 화백이 생활하는 경남 고성의 ‘달마선원’을 무료로 관광시켜주겠다며 피해자들을 끌어들였다.
황 씨 일당은 달마선원에 전시된 그림에서 “기가 나온다. 자식이 없는 사람은 애를 낳을 수 있다. 장가도 갈 수 있다”고 현혹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판매원 윤 씨는 명상 전문가로 행세하며 관상을 봐주는 척하면서 그림구매를 권했다. 주로 남편 걱정, 자식 걱정 등 항상 가족 걱정에 고심이 많은 50~60대 주부들이 타깃이 됐다. 황 씨 일당이 판매한 그림은 달마선원뿐만 아니라 여러 경로를 통해 판매가 이뤄졌고, 결국 전국에 걸쳐 피해자가 양산됐다.
피해자 중 한 사람인 가정주부 A 씨는 사기 피해에 대해 민사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를 포함해 4명의 피해자들은 대구의 S 아울렛 행사장에서 김 화백의 금은 달마도를 300만 원에 샀다고 한다.
판매 당시 점원이 ‘순도 99.9% 금’이라고 해 A 씨는 달마도를 샀지만 일주일이 지나서야 사기를 당한 것을 알았다. 당연히 금은 들어 있지 않았다. 이후 A 씨는 판매처에 환불을 요청했지만 판매처에서는 A 씨에게 “김 화백에게 우리도 사기를 당했고 (우리는) 경찰조사에서 무혐의로 나왔다. 일부금액만 환불이 가능하고 나머지는 회사 행사 상품을 들고 가라”고 대응했다고 한다.
황 씨 일당은 이렇게 2년여에 걸쳐 764명에게 김 화백의 가짜 순금·순은 그림을 위조된 진품보증서와 함께 개당 150만∼300만 원씩 받고 팔아 약 30억 원에 달하는 부당이득을 챙겼다.
하지만 김 화백은 경찰조사에서 “그림을 그린 것은 맞지만 보증서 만드는 데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10만 원 정도 받고 판 그림을 판매상 측에서 과대광고를 통해 값을 부풀린 것”이라고 주장하며 혐의를 부인했다. 11월 3일 기자와 통화한 달마선원 관계자는 “경찰조사에서 말한 것이 김 화백의 의견이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화랑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은 달랐다. 사기사건이 터진 뒤 지난 11월 2일 기자는 달마도를 취급하는 서울 견지동과 인사동 일대 화랑을 둘러봤다. 모 화랑에 들어가 김 화백의 그림을 찾자, 화랑 관계자는 대뜸 그 (사기)사건 때문에 왔느냐고 반문하며 말을 이어갔다.
‘김 화백의 작품이 그렇게 대단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화랑을 운영 중인 이 아무개 씨는 “우리는 김 화백의 작품을 그리 높게 치지 않는다. 김 화백의 그림을 보면 선이 거칠다”고 말했다.
인사동 일대에서 김 화백의 그림이 실제로 어떻게 거래가 되는지 묻자 이 씨는 “공식적으로 내놓고 팔지는 않고 요청이 들어오거나 하면 주문을 받아 판다. 또 일부 화랑에서는 지하에 판매처를 만들어 놓고 암암리에 판매가 이뤄지는 걸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문화재 수리기능자이기도 한 이 씨는 “달마도에서 기가 나오고 수맥을 차단하는 등의 소리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은 옳지 않다. 원래 달마도는 스님들이 보시의 의미로 그리는 것”이라며 달마도가 상품처럼 판매되는 현실을 꼬집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