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저격수 홍 대표가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끝난 후에 ‘셧 더 마우스’ 신세가 되었다. 물론 누가 대놓고 직접 그에게 한 소리는 아니다.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 연구소 정두언 소장이 트위터에 올린 말이다.
“서울은 졌으나 다른 곳은 모두 이겼다? ‘셧 더 마우스(Shut the mouth)’죠.”
홍 대표가 10·26 재보선 결과에 대해 “이겼다고도 졌다고도 할 수 없다”는 말에 대한 반응이었다. 한나라당의 위기, 정당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불거지는 와중에 여당의 대표가 보여준 현실 인식에 대한 한탄일 것이다. ‘아전인수’, 아니 ‘안대’를 하고 정치현실을 보는 왕년 저격수의 실상이다. 홍 대표의 이런 오발탄 같은 실언은 한두 번이 아니다. 보궐선거를 하게 만든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서는 ‘사실상 시리즈’까지 만들어 내었다.
“잠정 (투표율) 수치가 25.4% 전후로 나오는 것 같다(중략). 이번 투표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실상 승리했다고 본다.”
여기에 쏟아져 나온 네티즌 응답들이 ‘사실상 시리즈’다.
“25% 투표율이 ‘사실상’ 승리라면, 파리도 ‘사실상’ 새라고 봐야죠. 선거 2등도 ‘사실상’ 당선이죠. 동사무소 공익도 사실상 특수부대다. 모기도 사실상 독수리다. 등록금도 25%만 내면 사실상 완납한 걸로 합시다.”
‘셧 더 마우스’라는 극단적 반응을 일으킨 홍 대표의 실언은 젊은 세대의 민심을 살핀다는 이유로 대학생과 만난 자리에서 더욱 빛난다. 대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당 대표로서 한나라당의 변신을 요구하는 소장파 의원들에 대해 이렇게 쏘아 붙인다.
“이(여기)까지 차올라 패버리고 싶다. 내가 태권도협회장이다.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더러워서 참는다.”
이쯤 되면 민심이 떠나가는 것을 염려하는 한나라당의 입장에서는 ‘셧 더 마우스’ 수준이 아니라 아예 ‘입을 꿰매 버리고’ 싶을 것이다. ‘나는 꼼수다’에 출연하면서 자신이 나서면 ‘나는 정수다’가 된다고 우쭐대는 모습은 애교수준이다. 과거 깡패, 폭력조직에 맞선 ‘모래시계 검사’로 자신을 여전히 기억하려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에 대한 심리분석은 이런 이유로 시작된다.
당 대표 홍준표 의원의 계속되는 실언은 지금까지 남을 쏠 때는 드러나지 않았던 그의 정체를 여실히 보여준다. 왕년의 저격수였던 홍 대표는 이제 자기 말이 맞다고 막 우기는 고집 센 꼰대, 자기 이득, 밥 그릇 위해 일하는 전형적인 인물이 되었다.
홍 대표는 한나라당이 ‘부자정당’이기에 매우 싫다는 젊은이들에게 “한나라당이 부자를 위한 정당이라는 것은 ‘낙인효과’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아무리 서민정책을 내놔도 이미지를 벗기가 어렵다”고 해명한다. 최근 잇따라 불거지는 측근비리 의혹과 관련해서도, 그는 “우리 대통령(MB)은 절대 돈을 안 받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돈을 다 받았어도 이 사람은 돈을 안 받았다. 주변 사람들이 받았는지 모르겠지만”이라고 했다.
저격수에서 이제 방패로 변신한 그의 모습이다. 뜬금없이 ‘지록위마’, 즉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긴다’는 고사성어가 생각난다. 원래 뜻이 ‘윗사람을 농락하면서 권세를 휘두른다’이다.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꼼수 정치인의 전형적인 ‘자기 기만’의 모습이다.
과거 정치리더는 대중들이 막연히 믿는 악이라는 세력에 맞서 싸운다고 주장만 해도 충분히 존재의 이유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모두 서로 자신과 다른 패거리를 악이라 지칭한다. 자기편이 아니면 모두 적으로 삼고 싸워야 한다고 믿는다. 모두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싸우지만, 겉으로는 서민을 위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대중들은 이들을 모두 악당 패거리로 본다.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이 나오게 된 이유다.
한나라당 대표인 홍준표 의원과 만난 대학생들은 정말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경험했을 것이다. 아니, 정말 한나라당이 왜, 기득권 집단을 대표하고, 마치 꼰대와 같은 이미지를 주는지를 여실히 확인했을 것이다. ‘자신이 한 것은 옳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돌아볼 줄 모르고, 자기 주장만 하는’ 우리 시대 정치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들이 기득권의 위치에 있고, 또 권력을 가졌기에 대중들은 변화를 기대한다. 정말 홍 대표가 말했듯이 강호동이 복귀해야 할 듯하다. 씨름판, 방송가도 아닌 정치권으로 말이다. 그러나 정치판이 모래판이 아니라 진흙탕에서 뒹구는 레슬링이라 강호동도 쉽게 이기기 힘들 것이다.
연세대 심리학 교수 황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