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은 계열사로…“혹한기는 없다”
▲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삼성전자 사옥. 사진공동취재단 |
올1월에도 삼성전자 주가는 100만 원을 넘었다. 하지만 종가 기준으로는 1월 28일 딱 하루뿐이다. 장중 가격으로 따져도 4거래일이 전부다. 4월 2일 코스피지수가 2208.35로 1월 28일 2107.87보다 4.7% 이상 높았다. 하지만 4월 27일 삼성전자 종가는 92만 4000원으로 1월 28일 종가 101만 원보다 9% 이상 낮았다. 근본적인 이유는 애플 탓이다.
애플이 아이폰4와 아이패드2로 세계시장을 휩쓸면서 삼성전자의 갤럭시S와 갤럭시탭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란 전망이 높아졌다. 외국계 증권사 가운데는 삼성 등이 애플에 맞서다 결국엔 참담한 패배를 경험할 것이란 분석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이들이 예상한 아이패드의 세계시장 점유율 전망은 최고 70%에 달했다. 경쟁업체들이 막대한 돈을 들여 개발해 판매에 열을 올려봤자 헛물만 켜고 주저앉을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세계시장에 갤럭시 후속 시리즈를 공격적으로 출시했다. 제품개발에도 속도를 더해 애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사양이 개선된 신제품을 내놓았다. 그래도 스티브 잡스가 버티고 있는 애플의 우세는 지속됐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10월 이후 삼성전자 주가는 급등했다. 시가총액이 110조 원을 넘는 공룡주식이 한 달 새 무려 20% 넘게 올랐다.
아이폰4S가 기대에 못 미친 점도 한몫했다. 아이폰5가 나왔더라도 상승폭이 좀 달랐을 뿐 시장을 웃도는 오름세는 이어갔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애플이 내년 아이패드3를 내놓을 것이란 게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요즘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새롭게 내놓은 갤럭시탭 등 신제품들이 더 많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LG전자가 스마트폰 부문의 경쟁력 상실로 침몰 직전까지 몰린 상황은 역설적으로 삼성전자의 최근 성과를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잡스가 유작들을 남겨 놨다 하더라도 한계는 분명 있다. 잡스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애플은 분명 달랐다. 잡스가 콘셉트에서는 삼성전자를 앞섰지만, 제품을 만들고 치밀하게 마케팅하는 능력은 삼성전자를 따라갈 수 없다. 당분간 시장 주도권은 삼성전자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거의 모든 가전을 만드는 삼성전자로서는 스마트 기기를 이용한 가전 네트워크에서도 강점을 가진다.
유럽 재정위기로 세계 경제가 불안해진 것도 삼성전자에는 오히려 긍정적인 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위험자산’이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전만 해도 코스피보다 상승 탄력이 현저히 떨어지던 삼성전자는 리먼 사태로 다시 한 번 우뚝 선다. 모두 공포에 질린 가운데서도 삼성전자는 위험자산 투자처에 든든한 피난처가 돼 주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이 증시를 강타한 2008년 6월부터 10월까지 코스피가 52% 급락할 동안 삼성전자는 48% 하락해 4%포인트 이상 선방했다. 삼성전자의 방어력은 이후 반등장에서 더욱 돋보인다. 2009년과 2010년 코스피는 각각 49.65%, 21.88% 올랐지만 삼성전자는 같은 기간 각각 77.16%, 71.55%의 기록적인 반등에 성공한다. 덜 빠지고 훨씬 더 오른 셈이다.
그럼 이만큼 올랐으니 이제 더 올라 100만 원을 넘기 어렵지 않을까 싶지만, 꼭 그렇지 않다. 삼성전자도 많이 올랐지만, 현대차나 LG화학 같은 ‘차·화·정’ 종목은 이보다 더 많이 올랐다. 삼성전자의 예전 주력이던 반도체 부문은 글로벌 경기 부진으로 수요가 줄며 값이 떨어진 반면, 자동차와 화학은 글로벌 경쟁사들의 투자 부진으로 생산능력이 줄어들면서 국내 업체들에 큰 기회가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애플이 득세해 삼성전자를 ‘차·화·정’의 그림자에 가리게 만들었다.
그런데 잡스의 사망으로 애플의 힘이 빠지면서 더 이상 삼성전자를 ‘차·화·정’의 그림자에 숨겨둘 이유가 없어졌다. 최근 삼성전자 주식을 적극적으로 사들인 곳은 국내 기관과 외국인 등 이른바 프로(Professional)들이다. 삼성전자가 더 이상 할인(Discount)받을 요인이 없어지면서 더 사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펀드매니저 출신 증권사 투자전략가는 “금융위기 이전 업종별 시가총액 규모는 삼성전자가 속한 전기전자, 금융, 자동차, 화학의 순이었지만 지금은 자동차, 전기전자, 화학, 금융의 순이 돼버렸다. 삼성전자가 아주 좋은 상황이 아닌 한 현재 수준은 비중을 높일 만한 충분한 여지가 있다”고 조언했다.
끝으로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삼성전자 100만 원 안착의 이유가 있다. 삼성전자는 여러 계열사를 갖고 있는데 이들을 이용해 절묘하게 사업구조조정을 한다. 장사가 잘 되지 않을 것 같거나 미래성장성이 없는 사업의 경우 계열사로 보내버린다. 브라운관TV에서 PDP TV나 LCD TV로 바뀌는 과정에서 사양제품인 브라운관TV 부문을 삼성SDI로 내보냈다. 삼성테크윈에서는 휴대카메라 사업을 가져왔고, 최근에는 업황이 악화된 태양광 사업을 제일모직으로 넘겼다. 삼성전자가 이들 전자계열사의 대주주인 덕분에 얼마든지 이 같은 사업구조조정이 가능하다. 이것이 삼성그룹 전자 계열사들이 늘 삼성전자만 못한 성장세를 보이는 이유 중 하나다. 종합하면 삼성전자는 늘 유망한, 또는 자신 있는 사업만 할 수 있다.
삼성전자 100만 원 시대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막대한 돈이 시중에 풀려 화폐가치가 떨어졌다. 원화 가치도 정부의 수출 중심 정책으로 인해 아직 높지 않은 상태다. 지금의 100만 원이 예전에는 80만 원, 90만 원 정도의 가치밖에 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100만 원을 넘긴다고 해서 단숨에 150만 원까지 가기는 쉽지 않다. 전고점을 뚫으면 추가 상승한다는 게 증시 속설이지만, 꼭지를 찍은 주식은 반드시 조정을 받게 마련이다. 증권사 목표주가가 가장 높은 게 135만 원인 점도 참고할 만하다. 100만 원대 안착은 하겠지만, 그렇다고 ‘대박’날 주식은 아닌 셈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