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10일 방송되는 KBS1 '다큐온'은 '우리 집에 제비가 산다' 편으로 꾸며진다.
전래동화 속 제비는 다친 다리를 고쳐준 흥부에게 행운의 '박씨'를 물어다 준다. 옛날 옛적부터 사람 곁에 살며 사람들에게 친숙한 새로 여겨져 온 제비. 경남 밀양에는 박씨를 안 물어다 줘도 좋으니 해마다 제비가 찾아와주기만을 기다리는 현대판 흥부들이 있다.
올해로 66년째 이발관을 운영하고 있는 이발사 최명덕(81) 할아버지. 슬하에 4남매를 모두 출가시킨 지 오래된 할아버지 댁에 17년 전부터 새 가족이 생겼다.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제비다.
처음엔 이발관 실내에 집을 짓는 바람에 행여 둥지가 떨어질까 노심초사했던 할아버지는 온통 제비 똥으로 이발관이 더러워지는 불편을 감수해가며 제비와 한집살이를 했다.
가난했던 젊은 시절에 어린 4남매를 데리고 셋방살이를 전전했던 할아버지는 집 없는 설움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제비를 내쫓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다시 돌아온다는 약속은 없어도 음력 삼월 삼일, 삼짇날이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제비를 해마다 기다리는 할아버지. 옆집 제비는 벌써 새끼 키우느라 분주한데, 이발관에 세 든 제비는 어쩐 일인지 올해 유난히 부화 소식이 감감해서 걱정이라고 노년의 이발사는 자식 걱정하듯 매일 둥지를 올려다보며 제비들의 출산 소식을 기다린다.
삼랑진에 있는 한 주유소는 '제비 아파트'라고 불릴 만큼 제비 둥지가 많다. 올해도 입주한 제비 둥지가 무려 아홉 개 지난년까지만 해도 해마다 평균 14채 이상 둥지가 있었다는 걸 보면 올해는 적게 들어선 셈이라고.
하필이면 주유소에 제비 둥지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이곳이 제비들에게는 최적의 생활환경을 갖고 있다.
제비 가족들이 입주를 끝내면 주유소를 운영하는 부부는 불철주야 제비 둥지 순찰 도느라 바빠진다.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는 없는지, 고양이가 얼씬대지는 않는지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부화한 제비 새끼들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독립을 앞둔 새끼들에게 혹독한 비행훈련을 시키는 걸 보면 자식 키우는 심정은 사람이나 제비나 똑같지 않나 싶다.
삼랑진에서 자전거 점포를 운영하는 손길연 씨(63)는 요즘 다시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바로 새끼 제비 '제돌이' 육아일기. 손길연 씨는 주유소 제비 둥지에서 형제들에게 떠밀려 바닥에 떨어진 새끼 제비 '제돌이'를 구출해서 돌보고 있다.
살아있는 곤충을 수시로 먹어야만 쑥쑥 크는 탓에 손길연 씨는 밤낮으로 제돌이 먹이 사냥을 나선다. 손길연 씨가 지극정성으로 돌본 덕에 건강하게 쑥쑥 자라 첫 날갯짓을 뗀 제돌이.
제돌이를 다시 가족에게 돌려보내기 위해 주유소 둥지를 찾아갔지만 제돌이네 둥지는 벌써 비어 있다. 아직은 이소할 때가 아니라서 아마도 온 식구가 비행 훈련을 나간 모양인데 제돌이는 가족과 재회하고 무사히 강남으로 떠날 수 있을까.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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