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여 개의 간접증거 한계…대법원 “출산 시점과 바꿔치기 장소, 범행동기도 의문” 파기환송
#간접증거의 한계…꼬인 실타래 풀어오라는 대법원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6월 16일 미성년자 약취(납치)와 사체은닉미수 혐의로 기소된 석 아무개 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8년 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석 씨가 숨진 아이의 친모는 맞지만 이것만으로 아이를 바꿔치기한 것으로 판단하기엔 남는 의문점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추가 심리할 부분을 조목조목 요구했다.
이 사건에는 두 명의 엄마와 두 명의 아기가 등장한다. 석 씨와 석 씨의 친딸인 김 아무개 씨가 두 명의 엄마다. 그리고 김 씨가 낳은 아기 A 양, 그리고 죽은 뒤에야 신원이 밝혀진 석 씨의 또 다른 딸 B 양이 있다.
사건의 시작은 2021년 2월 9일. 석 씨는 딸 김 씨가 거주하던 경북 구미의 한 빌라 3층에서 미라가 된 시신을 발견하고 이튿날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 조사 결과, 아이의 친모로 알려졌던 김 씨는 2018년 3월 30일 아이를 출산해 약 2년 5개월 동안 키웠으나 현 남편과의 사이에서 새로운 아이를 낳게 되자 2020년 8월 아이를 빌라에 홀로 방치해 사망하게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수사 초반까지만 해도 숨진 아이가 당연히 김 씨의 친딸인 A 양일 것으로 의심했다. 그런데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실시한 유전자 검사 결과, 숨진 아이의 친모가 석 씨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석 씨가 숨진 아이의 시체를 은닉하려다 경찰에 신고한 사실도 밝혀졌다. 즉, 원래 있어야 할 A 양은 온데간데없고 석 씨의 딸 B 양이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그러나 석 씨는 출산 사실조차 없다며 관련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경찰과 검찰은 추가 수사 끝에 석 씨가 딸 김 씨와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했으며, 출산 뒤 김 씨의 딸 A 양과 자신의 딸 B 양을 바꿔치기했다는 정황을 발견하고 재판에 넘겼다. 수사기관이 두 아이가 바뀌었다고 특정한 시점은 2018년 3월 31일 오후 5시 32분부터 4월 1일 오전 8시 17분 사이다.
재판의 쟁점은 간접증거의 증명력 인정 여부였다. 네 차례의 DNA 검사로 두 사람의 친자관계는 밝혀졌으나 이 사실이 공소사실을 어디까지 증명해줄 수 있는지, ‘떨어진 아기 식별띠’와 ‘휴대전화 검색기록’, 산부인과 간호사의 법정진술 등 90여 개의 간접증거로만 유죄 입증이 가능한 지가 관건이었다. ‘B 양의 친부’나 ‘A 양의 행방’ ‘구체적인 범행 방법’ 등 직접증거는 제시하지 못 했으나 1심과 2심은 석 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8년을 선고했다(관련기사 간접증거 90개의 ‘한계’…구미 3세 여아 사망사건 막장 드라마).
그러나 대법원은 DNA 결과를 제외한 나머지 간접증거에 대해서는 1‧2심의 심리가 불충분하다고 봤다. 석 씨와 숨진 아동이 친자관계임은 인정되나 이것만으로 석 씨가 아이를 바꿔치기했는지 명확히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DNA 감정 결과가 증명하는 대상은 이 사건 여아를 석 씨의 친자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불과하다”며 “석 씨가 공소사실 기재 일시 및 장소에서 김 씨의 친자를 이 사건 여아와 바꾸는 방법으로 약취했다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 형사전문 변호사는 “실타래가 꼬여있는데 꼬인 채로 가져오지 말고 풀어오라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이 석 씨에게 죄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법원도 B 양의 친모가 석 씨라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다만 시원하게 유죄 판결을 내리기 망설여진다는 것이다. 현재 명백한 증거는 DNA 검사 결과밖에 없는데, 이 결과로는 두 사람이 모녀관계라는 사실밖에 증명을 못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판결문을 보면 대법원 재판부가 하급심 판단을 요목조목 반박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결국 유죄의 확실한 직접증거를 더 찾아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출산 시점과 범행 동기도 몰라…병원 아닌 다른 곳에서 바꿔치기 가능성 제기
실제로 판결문에 따르면, 대법원 재판부는 김 씨가 A 양을 낳은 사실과 석 씨가 낳은 B 양이 김 씨 손에 자라다가 사망한 점에 대해서는 분명히 인정한다. 다만 이것이 석 씨가 아이를 바꿔치기했다고 단정 지을 근거는 안 된다고 봤다. 그러면서 원심 판결에 남는 의문점과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석 씨가 B 양을 낳은 시기다. 수사기관은 석 씨가 B 양을 3월 초순에 낳았다고 봤다. 그러면서 석 씨가 직장에서 3월 6일 조퇴를 하고 이튿날에는 결근했다는 정황을 들어 그 무렵 B 양을 낳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다만 직접 증거는 없다.
문제는 석 씨가 2017년부터 다니던 회사를 2018년 1월 27일 퇴사를 했다가 2월 26일 재입사를 했고, 3월 6일과 7일을 제외하고는 하루 10시간씩 모두 연장근무를 했다는 점이다. 공소장에 적힌 대로 3월 초 출산을 했다면, 왜 출산 시점에 임박해 다시 입사를 한 것인지와 출산 직후 연장근무를 할 동안 신생아인 B 양은 누가 돌보았는지 등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게 대법원의 입장이다.
두 번째로 아이가 바꿔치기 된 장소에 대해서도 의문을 남겼다. 당초 수사기관은 2018년 3월 31일 오후 5시 32분부터 4월 1일 오전 8시 17분 사이 산부인과에서 두 아이가 바뀌었을 것으로 봤다. 그런데 대법원은 김 씨가 4월 8일 산부인과에서 퇴원할 때 안고 나간 아이가 자신의 친딸인 A 양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봤다.
그러면서 신생아 출생 후 3∼4일 동안은 태변과 수분을 배출하느라 몸무게가 줄 수 있는 점, 신생아실에서 아기 식별띠가 분리되는 경우가 가끔 있는 점, 해당 산부인과는 신생아실 입구까지만 출입이 자유로울 뿐 신생아를 밖으로 데리고 가는 건 산모가 아니면 쉽지 않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몸무게 변화와 분리된 식별띠는 검찰이 아이 바꿔치기의 정황증거로 제시한 것이었는데 오히려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로 해석한 것이다.
여기에 귓바퀴 모양이 달라진 시점을 근거로 들어 아이가 바뀐 시점이 4월 초가 아닌 다른 날일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했다. A 양은 태어났을 때부터 왼쪽 귓바퀴 위쪽이 접혀 있었는데, 제출된 사진들을 보면 3월 30일부터 퇴원 직전인 4월 8일까지 귀 생김새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언론에 공개된 사진을 보면 접혀있던 귀는 4월 24일쯤 펴져 있다. 대법원은 “전문가에게 아기 사진 판독을 의뢰해 동일인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는 풀리지 않은 범행 동기였다. 원심은 석 씨가 자신의 딸인 B 양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마음에 이런 일을 저질렀을 것으로 보고 유죄를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이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았다. 남편과 두 자녀를 속이고 범행을 저지를 만큼 B 양에게 애정을 쏟았다면, 방치가 될 동안 무엇을 했으며 시신을 발견한 후에는 왜 은닉하려 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난관 봉착한 검찰, 어떻게 풀어갈까…목적과 의도, 수단과 방법 밝히는 게 관건
사건이 다시 대구지법으로 돌아감에 따라 검찰은 상당기간 추가 조사에 시간을 들이게 됐다. 관건은 검찰이 공소유지를 하면서 어떤 방법으로 석 씨의 범행 동기와 방법 등을 밝히느냐다. 수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라진 A 양의 행방은 사건 발생 1년이 넘도록 묘연하다. 사망한 B 양의 친부가 누구인지도 밝혀내지 못 했다. 석 씨가 출산을 한 장소와 시점도 밝혀지지 않았다. 검찰은 혐의 변경 없이 공소를 유지하되 판결문 분석 후 미진한 부분을 보강해 심리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법조인들은 현재로서는 사라진 A 양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석 씨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들까지 입을 열지 않는 상황에서 사라진 A 양은 그 자체로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인 석 씨는 여전히 출산 사실을 부인하며 함구하고 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