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인 ‘스케일’ 화끈한 바둑 사랑
▲ 지력운동회는 다른 스포츠 종목처럼 선수들이 기수를 따라 스타디움에 입장한다. |
모이는 장소가 또 사람을 놀라게 한다. 기원도 아니고, 무슨 큰 음식점 같은 곳도 아니다. 모임을 위해 기우회관 건물을 따로 지었다고 하니 말이다. 중국은 허풍이 세다고 하나 이런 스케일은 부럽다. 회원 가운데 회장을 비롯해 20여 명의 동사장(董事長), 총경리(總經理)들이 단체로 한국에 건너와 서울 강릉 등지에서 한국 바둑인들과 교류한 적이 있다.
지운회는 개막식부터가 다른 운동 경기와 똑같다. 각 팀의 선수들이 기수를 따라 스타디움에 입장하고, 기수가 젊은 여성인 것도 똑같다. 군무(群舞)를 위주로 다양한 개막 행사가 펼쳐진다. 이번에도 운동장 마당에 크게 만들어 놓은 바둑판 위에 사람이 흑백 바둑들을 대신해 움직이는 이벤트가 있다. 남방장성배 같은 데에서도 선보였던 그것.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10여 년 전에 인터넷 바둑 사이트 대시앤닷컴(dashn.com)이 처음 아이디어를 낸 이벤트인데, 잠실운동장에서 시도하기로 했던 우리는 후원자가 없어 불발로 그쳤고, 중국에서 잘 써먹고 있다.
대시바둑은 지금은 문만 열어 놓고 있는 상태지만, 2000년대 초입에는 바둑 사이트에서는 선두주자였다. 복기해설, 음악방, 아바타 등 요즘 국내 바둑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기능 대부분을 가장 먼저 시작했으니까. 사이트 이름이 기발했다. 바둑판은 선(대시:-)과 점(.)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상징한다는 것이 그쪽의 설명이다. 아무튼 지운회의 개막식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전국체전에서 하는 것 그대로다.
이번 대회에서 바둑은 11종목의 경기를 펼친다. 바둑 하나에 11개 종목! 프로 남녀 개인전, 프로 남녀 속기전, 아마 남녀 개인전에 남녀 단체전, 혼성페어전, 소년 개인전, 대학생 개인전 등이다. 특별히 새로 만든 부문은 없고, 이것저것 나열한 것이지만, 나열해서 판을 키운 발상은 참고할 만하다.
전국에서 46개 팀, 347명이 출전해 11개의 금메달을 놓고 8일부터 18일까지 열전을 벌인다. 출전 선수에는 창하오 구리 콩지에 박문요 씨에허 천야오예 뤄시허 저우루이양 류우싱 탄샤오 송용혜 예꾸이 탕이 장쉔 루지아 정옌 리저 왕샹윈 리칭화 루이나이웨이 등 늘 보는 프로 남녀 정예들의 얼굴이 전부 보인다. 바로 얼마 전에 우리 삼성화재배 결승에 올라간 구리 9단이 결승을 앞두고 여기서 먼저 우승할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루이나이웨이 9단은 또 언제 중국에 건너갔는지. 양쪽에서 뛰느라 여전히 바쁘다. 평소 조용하고 겸손해 보이는 사람이 시선 의식하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부지런히 판을 찾아다니고 있다.
▲ 지력운동회 개막 행사(왼쪽)와 바둑 경기를 펼치는 모습. |
지력운동회라. 마인드스포츠 대회보다 그게 더 빨리 이해가 된다. 마인드스포츠. 생각 없이 그냥 쓰고는 있지만, 뭐랄까, 경솔한 느낌이 조금은 있다. 그래도 별 수 없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마인드스포츠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말로 만들기도 이미 어렵게 되었고 만들어봤자 낯설고 어색해서 사람들이 잘 쓰지를 않을 것이니까. 우리말은 팔자가 별로인 것 같다.
한편 어제 오후, 인도네시아 바둑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김동명 감독(64·전 한국기원 프로기사 6단)으로부터 메일이 날아왔다. ‘SEA Games(동남아시아 연합 체육제전)’에 바둑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 특히 대한바둑협회가 힘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SEA의 회원국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필리핀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브르나이 티모르 등 11개국. SEA 게임은 말하자면 아시안게임의 축소판, 마이너리그다. 아시안 게임에서는 한·중·일 등쌀에 우리는 메달 하나 제대로 못 따니 우리끼리 놀자는 것. 그런데 2007년 제24회 태국 대회에서 바둑을 채택했다. 그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 지난번에 소개했던 대로 태국은 바둑을 좋아하는 나라다. 그러나 이후 2009년 라오스, 그리고 올해 인도네시아 대회에는 바둑이 빠졌다. 그것을 2013년 미얀마 대회부터 다시 불씨를 살리자는 것이 김 감독의 요청이었다.
바둑이 다시 들어가는 방법은 주최국인 미얀마가 선택하는 것이 하나, 또 하나는 주최국을 빼고 회원국 열 나라가 청원하는 것. 우리는 회원국이 아닌데, 어떻게 힘을 쓰나? AGF라는 게 있다. ‘아시아 바둑연맹’이다. G는 ‘GO’, 바둑 기(碁)의 일본식 발음. 한·중·일은 물론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등 아시아 전체의 바둑계를 아우르는 단체인데, 얼마 전에 한국의 서대원 씨(62)가 AGF 회장으로 취임한 것. 그러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서대원 씨는 헝가리 대사, 유엔대사 등을 거쳐 2007년 대통령 인수위원회 외교통상 쪽 자문위원 등을 지낸 외교통이고 현직은 ‘2022 월드컵축구유치위원회 사무총장’이지만 바둑계에서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 ‘바둑인’이다. 어릴 적 프로기사를 꿈꾸었던 한국기원 연구생이었다. 바둑 실력과 바둑 사랑은 불문가지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
동남아시아 게임에 바둑이 들어가기를 바란다. 인도네시아에는 김 감독이 있고, 베트남에는 이강욱 프로8단(29·해외보급단)이 국가 지도사범으로 있고, 필리핀에서는 연구생 출신 강자 홍슬기 아마7단(31)-바둑TV 진행자로 활약했던 이승연 아마6단 부부(30)가 지금 바둑보급에 정열을 쏟고 있다. 필리핀에는 또 필리핀 바둑대표선수 겸 주장 격인 노용덕 아마6단(58)도 있다. 이들이 힘을 합하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동남아는 사실 유럽이나 미주보다 더 가까운 친구들이다.
이광구 바둑전문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