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홍수에 전쟁 등 수급 우려에도 최대 수확…당국 전폭적 지원 아래 기술 개발 총력 결과
밀은 쌀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식량이다. 그동안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밀로도 수요를 충분히 맞출 수 있었다. 생산량으로만 따지면 세계 1위다. 하지만 식단이 바뀌면서 자급자족이 더 이상 힘들어졌다. 중국은 밀의 최대 생산국인 동시에 주요 수입국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시진핑 주석이 농촌 현장을 수시로 찾아 식량 생산 강화, 방역 작업 등을 직접 살펴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6월 21일 기준 중국 밀 농가의 수확은 대부분 끝났다. 개인, 소규모 단위 농가만이 남았을 뿐이다. 농업농촌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 밀 생산량은 지난해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업농촌부의 재배관리 부문 부국장 뤼슈타오는 “대풍년이 확정적이다. 올해 수확으로 식량 생산의 안정적 기반을 마련했다. 창고가 가득 차서 천하가 안정됐다”고 말했다.
농업농촌부가 밝힌 올해 밀 수확 경작지는 역대 최초로 3억 묘가 넘는다고 한다. 1묘는 약 99㎡다. 허난지역에서 밀을 경작하는 리우젠루는 최근 올해 60묘 면적의 수확을 마쳤다. 1묘당 생산량은 1270근(762kg)이었다. 단위 면적당 생산량도 최대치다. 리우젠루는 “지난해 기록적인 장마로 어려움을 겪었고, 간간히 홍수가 발생하면서 수확이 어려울 것으로 봤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이라고 했다.
국영방송 CCTV를 비롯한 방송과 많은 언론에선 대대적으로 밀 풍년을 보도하고 있다. TV 화면에서 밀을 수확하는 모습을 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CCTV 기자는 농촌 현장을 찾아 “수확을 알리는 기계들의 굉음은 풍년의 기쁨을 실감케 한다. 이런 분주함은 중국인들의 밥상을 담보하는 것”이라면서 환호했다. 밀의 풍년에 농촌뿐 아니라 전 지역이 축제 분위기인 셈이다.
사실 앞서 리우젠루가 말했던 것처럼 밀을 많이 수확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부정적 전망이 우세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전쟁은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밀은 보통 파종을 한 뒤 늦가을에 씨를 뿌리고 겨울을 지낸 뒤 초여름에 수확한다. 하지만 지난해엔 기상 등의 이유로 파종이 늦었다. 대부분의 밀 농가는 평상시보다 한 달 이상 늦게 씨를 뿌렸다.
당국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결과부터 말하면 이는 ‘신의 한 수’였다. 전쟁까지 터졌으니 만약 정부에서 나서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밀 대란’이 일어날 뻔했다. 지난 2월 농업농촌부는 국내외 전문가들과 함께 ‘밀 풍작 방안’을 모색했다. 농업농촌부는 여러 차례의 회의와 연구 끝에 늦은 파종을 극복할 만한 기술을 전국의 농가에 신속히 보급하기로 했다.
당시 농민들에게 보급했던 주요 기술은 대략 이렇다. 늦은 파종에 강한 개량종자와 비료의 무상 지급, 농촌 지도사 등에 의한 밭의 특별 관리 등이다. 또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가 심했던 재배지역을 대체할 만한 경작지를 빠르게 찾아내 전체 밀 수확 면적을 높이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이로 인해 총 3억 3000묘에 달하는 경작지를 확보했고, 이는 역대 최대 수확량으로 이어졌다.
농업농촌부의 뤼슈타오는 “올해처럼 중앙정부의 지원이 많았던 적은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없었다. 자금뿐 아니라 정책, 기술적인 측면도 그렇다. 그만큼 위기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부에서 두 차례에 걸쳐 농민들에게 300억 위안(5조 8000억 원)가량을 지원했다. 이로 인해 농민들의 부담을 크게 줄여줬다. 동시에 가뭄 등 자연재해에 강한 종자 개발도 속도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에서 지급한 보조금 외에도 각 지방에서도 자체적으로 밀 재배 농민들에게 많은 혜택, 자금을 지원했다. 올해 밀 농가는 비료, 농약, 종자 등을 무상으로 받았다. 또한 세금도 면해줬다. 농사에 들어간 돈이 거의 없으니 원가 대비 수익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을 것으로 추산된다. 부족할 것으로 우려했던 밀을 충분히 공급하는 동시에, 농가 살리기라는 국가적 차원의 목표도 추진한 결과다.
불리했던 환경을 극복하고 풍년을 이룰 수 있었던 밑바탕엔 과학 기술이 깔려 있다. 식량난을 대비해 오래 전부터 진행했던 연구가 결실을 맺었다는 뜻이다. 정부는 그동안 각 성과 함께 농업 전 분야 전문가들을 농촌 지역에 파견해왔다. 현장에서 살아 있는 연구를 하도록 장려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각종 상황에 맞는 종자를 개발했고 또 최악 여건에서도 안정적인 수확을 올릴 수 있는 농법을 찾아냈다.
우한 지역에서 밀 농사를 하는 한 농민은 “모든 농작물이 다 그렇겠지만, 밀의 풍년을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우선 사람의 노력이다. 다음은 기술 및 정책이다. 마지막이 하늘”이라면서 “그런데 이제 순서를 바꿔도 좋을 것 같다. 두 번째가 하늘인 시대가 왔다. 지난해처럼 극악무도한 가뭄과 홍수를 본 적이 없었다. 예년 같았으면 밀 농사는 대실패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확이 좋았다. 기술이 놀라우리만큼 발전했다”고 했다.
농업농촌부가 세운 올해의 야심찬 계획은 밀뿐 아니라 농작물 수확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컴바인을 최신형으로 전국 농가에 보급하는 일이다. 탈곡하는 과정에서 농작물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현재 대다수 농가에서 보유하고 있는 구형 컴바인의 손실률은 3%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출시된 컴바인은 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농업농촌부는 밀 손실률 1%포인트를 낮추면 15억kg을 추가로 생산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
또 다른 계획은 ‘밥그릇을 채우는 것뿐 아니라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양뿐 아니라 질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 식량 생산의 장기적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당국은 밀 재배 구조를 개선하고, 밀이 자라는 토지 관리에 힘쓰고 있다. 특히 최상급 밀 종자의 표준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농업 전문가 간리신 교수는 “일괄적으로 지급되는 우량종자, 전 과정의 과학 기술 지도 및 기계화 등은 밀의 품질 향상을 촉진할 것이고 이는 농민들의 수익 증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허난에서 식품업체를 운영하는 창쉬둥 사장도 “농작물의 관건은 종자다. 심은 대로 나는 것이다. 협동조합에서 공급하는 우량한 종자로 인해 허난의 삶은 윤택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