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영광’ 되찾으려고?
▲ 최태원 회장 | ||
그러나 SK㈜의 이번 인천정유 인수 추진에 대해 다수 재계 인사들은 ‘국내 정유업계 시장 호령’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천정유 인수 건이 SK㈜의 수익 증진 차원을 넘어 SK그룹 전체 경영적 측면과 최태원 회장의 ‘오너십 다지기’ 포석에서 이뤄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SK㈜는 인천정유 최대 채권자인 씨티그룹이 내세운 입찰가격 7천8백억원의 두 배에 달하는 1조6천억원대의 인수가격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이후 SK㈜가 인천정유에 쏟아 붓게 될 액수는 3조원대로 늘어났다. 1조6천억원의 인수 자금에다 인천정유 경영정상화와 첨단 시설 보강 등을 위해 추가로 1조6천억원의 자금을 투입할 예정으로 알려진 것이다.
SK㈜가 인천정유 인수에 3조원이 넘는 초기 비용을 대는 것을 두고 재계 인사들은 “SK㈜ 차원이 아니라 SK그룹 차원의 일로 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3조원이라는 거액 조달이 단순히 계열사인 SK㈜의 사업적 이해관계에서 그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SK가 물량공세를 통해 인천정유 인수를 조기에 매듭지은 배경 중에는 국내 재벌들의 석유사업 신규진출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 호남석유화학을 통해 석유화학업계의 메이저로 등장한 롯데가 정유업 진출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인 데다 효성그룹의 LPG사업 진출설도 SK를 자극시켰을 것이란 추측이 나돈다.
국내 정유산업의 한 축인 LPG수입시장의 경우 현재 SK가스와 E1이 양분하고 있다. 그런데 SK가스의 LPG 주 구매고객으로 자리잡아온 효성이 LPG수입을 독자적으로 추진해 SK가스에 대한 의존을 끊으려 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SK가 자극을 받았다는 평이 나오는 것이다. ‘효성측이 산업자원부에 LPG수입을 위한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는 소문이 재계에 나돌기 시작하면서 SK의 인천정유 인수 베팅이 과감해진 것도 이 같은 시각을 뒷받침한다.
효성은 현재 SK가스로부터 매달 2만 배럴의 LPG를 공급받고 있다고 한다. 효성의 LPG사업 진출로 국내 정유산업 판도에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인천정유 인수 건을 조기 매듭지어 정유재벌로서의 위상을 굳히려 했다는 관전평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시각에 대해 SK보다 효성이 먼저 극구 부인하고 있다. 효성측 관계자는 “SK가스로부터 LPG를 사다 쓰고 있는데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자체 LPG수입을 검토한 것은 맞다”라고 밝힌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재정을 비롯한 여러 측면에서 무리가 따르는 것으로 자체 판단됐다. LPG 사업 진출에 관한 ‘공부’를 한 것이지 사업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효성의 LPG 사업 진출 여부를 떠나 SK는 국내 정유시장 석권을 위해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으로 보인다. 초기 비용으로 3조원 이상의 거액을 쏟아 붓기로 한 점, 인천정유 임직원의 고용승계 100% 보장, 고도화 설비 투자 약속 등이 공개된 것만 봐도 SK가 인천정유 인수에 얼마나 큰 비중을 두고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 SK㈜는 인천정유 인수를 통해 중국시장 개척에 필요한 전진기지 건설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SK는 지난해 중국에 지주회사를 설립하면서 “2010년까지 중국에 매출 5조원 규모의 석유화학그룹을 만들어 아태지역 에너지·화학 메이저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인천정유 인수도 중국시장 수출용 제품 생산기지로 이용하겠다는 얘기다.
사업적 측면을 떠나 최태원 회장의 재계 위상 다지기 차원도 거론된다. 국내 최대 에너지 종합그룹을 꿈꾸는 SK㈜가 정유산업에 적극 참여하게 된 것은 고 최종현 회장 때부터다. 분식회계 등으로 인한 법원의 유죄 선고와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 등으로 생채기를 입은 최 회장이 ‘선친 유업의 계승·발전’이라는 대의 실현을 통해 국내 4대 재벌의 위상을 공고히하려 한다는 관전평이 흘러나온다.
SK㈜는 2010년까지 총 7억 배럴 매장량을 보유해 하루 10만 배럴 생산을 이룬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정부가 2008년까지 에너지 자주화 비율 10% 달성 목표를 세운 것에 일익을 담당하게 되면 국민기업으로 거듭나 이미지 제고를 할 수 있다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SK의 정유업 초강자를 향한 청사진이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현재 정유업계 3강인 SK, GS칼텍스, S-오일의 시장점유율이 74%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1개 사업자 시장점유율 50% 이상이거나 3개 이하 사업자들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70% 이상일 경우 공정위가 사업 확장을 불허할 수 있다. 현재 시장점유율 5.2%인 인천정유를 SK가 인수할 경우 정유업계 상위 3개사 시장점유율은 80%에 육박하므로 공정위의 엄격한 심사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5만3천∼5만4천원선을 유지하던 SK㈜ 주가는 인천정유 우선협상자 발표 직후인 지난 8월22일 곤두박질쳐 일주일 동안 4만9천원대에 머물기도 했다. 인천정유 인수로 글로벌 정유재벌로의 도약을 꿈꾸는 SK의 ‘희망’과는 반대로 증권가에선 SK가 내야 될 인수자금에 더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