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야당 후보는 있었다. 현재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바닥 수준이라면, 적어도 그때 그 사람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떠오르지 않는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민주당의 정동영 의원은 빈정 상할 것이다. ‘감수성’은 어디에 있을까? 그렇다고 완전히 잊혀진 인물은 아니다.
“민주당 아직 정신 못 차렸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 정도 하면, 민주당 집권 가능성이 99% 가까이 돼야 하는데 안 된다. 야당은 ‘선명성’인데 흐리멍텅해서 그렇다. 한나라당 2중대인지 3중대인지 모르겠다.”
민주당의 정동영 최고위원이 지난 11월 14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과 관련, 핵심 쟁점인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절충안을 추진 중인 당내 협상파를 겨냥해 퍼부은 쓴소리다. 한미 FTA 비준 저지 투쟁 과정에서 당이 선명성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이런 정 의원의 주장에 대중들이 얼마나 공감할까?
사실 대중은 당혹스럽다. 정치인 정동영의 정체를 생각하면 그렇다. 정 의원은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어떻게든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입지에 부합하는 발언을 가장 자연스럽게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뉴스를 전달하는 기자의 모습이다. 슬픈 일이든, 기쁜 일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의 마음과 관계없이 그대로 전달할 뿐이다. 정치활동에서 그의 이런 모습은 성공적이었다.
그는 한미 FTA 협상을 타결한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내며, NSC(국가안전보장회의)의 외교·안보 좌장 역할을 했다. 2006년 3월 17일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를 만나서는 “지난 53년간은 상호방위조약이 양자관계의 중요한 기둥이었다. 일단 FTA가 완성되면 향후 50년간 관계를 지탱시켜 줄 두 번째 중요한 기둥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그가 이제 한미 FTA를 “제2의 을사늑약”이라고 한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에게 “대한민국 국익을 대표하는 게 맞는지, 미국 파견관인지, 옷만 입은 이완용인지 모르겠다”고 비난했다. 이쯤 되면, 누군가의 말씀이 떠올려진다. ‘막가자는 것이지요?’ 왜? 그가 과거 FTA를 체결했던 지난 정권의 핵심인물이기 때문이다.
과거 대중은 그에 대해 언론인 시절의 모습을 연상하며 신선하고 참신한 정치인으로 기억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는 세월의 쓴맛을 다 덮어써 쪼그라들고 만 어떤 중년 남자가 되었다. 이래저래 상황에 따라, 아니 맞추어 자신의 정체를 잘 바꾸면서 계속 잘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자신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 어떤 변신도 가능한 사람, 그는 이런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대선 이후 정치권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도 이것을 잘 보여주었다.
정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새로 지역구로 삼은 서울의 동작구에서 패배한 다음 다시 2009년 4·29 재보선에서 신건 전 국정원장과 무소속연대를 선언하며 고향인 전주에서 출마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과거 자신이 모셨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MB 정권의 실정을 비판하는 대신 민주당 지도부를 공격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정 의원을 다시 복당시키고 대표 최고위원 자리까지 준 것도 민주당이다. 정 의원 말대로 흐리멍텅한 ‘잡탕당’이자 한나라당 2중대다. 이런 당에서 그가 나름 선택한 정체성이 ‘투쟁하는 야당투사’다. 이런 그의 행보를 민주당에서조차 ‘좌클릭’이라고 했다. 과거에 그는 좌파 소리를 들었던 열린우리당에서 ‘실용’과 ‘중도’, ‘합리’를 주장했다. ‘부정’과 ‘부정’을 통한 자기 정체성의 역사를 정 의원은 독재자가 없다는 이 시대에 너무나 잘 보여준다.
정말 정치인으로서의 정 의원의 정체는 정말 혼란스럽다. 과거에 그의 정체가 무엇이든 이제 그것을 논하지는 말자. 무엇보다 현재 그의 정체를 살펴보자. 그는 한진중공업의 희망버스 참여와 국회 노동위의 활동으로 열렬한 노동 운동가로 변신했다. 반값 등록금 투쟁을 하면서 길거리투사가 되었다. 여기에 반 FTA 모습으로 강성 야권 정치인이 되려고 한다. 하지만 대중은 이런 정 의원의 활동에 대해 감동보다는 안쓰러움을 느낀다. 무엇보다 정치 초년병의 치기어린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구태의연한 안티의 방식이기에 정치를 오래했다는 경륜이나 내공도 못 느낀다. 분명 그는 과거 정권의 핵심인물이었다. 장관과 당 대표까지 거친 4선의 거물 정치인이다. 그런 무게감을 대중은 그에게서 못 받는다.
혹시 정 의원은 ‘에지’ 있고 과격한 모습으로 자신을 개념 있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정치인으로 바꾸려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닐까? 사실 정 의원은 투사 이미지에 맞지 않다. 거친 환경에서 생존욕구 하나로 살아남는 사람이기보다는 관리되고 길들여진 이미지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네거티브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얻으려 하면 할수록, 자신의 과거도 부정하고, 현재 자신의 행보마저 불분명하게 만든다.
참신한 이미지를 주었던 인물이 꼬장꼬장하면서도 억지 부리는 길거리 야권 투사가 된다고, 대중들은 그를 통해 답답한 현실이 조금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할까? 그렇지 않다. 답답하면 차라리 ‘나꼼수’나 들으면서 현재의 권력자를 조롱하고 낄낄대는 것이 더 즐겁기 때문이다. 진부한 야당 투사는 자신의 정치생명을 연장해 보겠다는 음흉함이 더 부각될 뿐이다.
자신의 정체를 계속 바꾸면서 정치를 하려는 사람이 지향하는 대의나 가치는 무엇일까? 싸우는 모습은 있지만, 그 사람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때, 대중은 또 다른 권력을 얻기 위해 투쟁하는 그런 정치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뒤에서 보면 짠하고, 앞에서 보면 속에서 짜증이 난다. 참신한 정우성이 조로해 버린 중늙은이가 되어 버린 슬픔만이 남는다. 자기 이미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구태의연한 정답을 따르는, 계속되는 ‘뻘짓’을 보기 때문이다.
연세대 심리학 교수 황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