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 때 해체됐다 문재인 정부 때 부활…현재의 해경이 2년 전 해경 반박, 정치 파도에 흔들
2020년 9월 24일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하던 때였다. 해양경찰청은 브리핑에서 공무원 이대준 씨에 대해 “조류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던 점, 채무 등으로 고통을 호소했던 점과 국방부 첩보 등을 종합해 볼 때 자진 월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상세한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해 10월 22일 해경은 이 씨의 15개월간 급여·수당 및 금융계좌 분석을 통해 도박횟수와 금액, 채무상황 등을 상세히 발표하기도 했다.
유족 측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국방부 장관과 더불어 해양경찰청장을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진행했다. 이 씨 피살 경위와 관련해 투명한 정보 공개를 요구했다. 2021년 11월 12일 재판부는 유족 측 손을 들어줬다. 해경이 비공개로 결정한 수사 정보에 대해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 자료가 아니라면 공개하라는 취지 판결을 내렸다. 해경은 청와대와 함께 보조를 맞췄다. 소송 결과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2022년 5월 10일 대통령이 바뀌었다. 그리고 한 달 남짓 시간이 흐른 6월 16일, 해경은 2년 전 사건에 대해 다시 브리핑했다. 해경은 “북한군에게 살해된 공무원 월북 여부를 수사했으나 북한 해역까지 이동한 경위와 월북 의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사건 당시와 비교했을 때 입장이 백팔십도 바뀌었다. 새롭거나 뚜렷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은 가운데, 현재의 해경이 2년 전 해경을 반박하는 묘한 상황이 연출됐다.
그러자 야권에선 해경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6월 17일 TBS라디오 ‘신장식의 신장개업’에서 “해경이 (입장) 번복을 알아서 했을 리 없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시해서 발표를 뒤집은 셈”이라고 주장했다. 최 전 수석은 “권력에 의해 음모론이 기획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언론에선 문재인 정부 당시 ‘해경왕’이란 별칭을 가진 민정수석실 소속 행정관 A 씨를 둘러싼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월북처리 압박 의혹’을 제기했다. 6월 28일 조선일보는 해경 고위간부 발언을 인용해 A 씨가 해경 내부 인사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보도하기도 했다.
6월 17일 오후 유족 측 변호인은 정보공개청구 소송 승소에 따라 확보한 해수부 산하 어업관리선 무궁화 10호 직원 7명의 진술조서를 공개했다. 유족 측 변호인 김기윤 변호사는 피살 공무원 이 씨의 방수복이 그대로 있었다는 점을 제시하며 “(문재인 정부가) 구명조끼는 그렇게 월북의 증거로 댔으면서 왜 방수복은 언급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라며 “(이 씨 피살사건을) 월북으로 조작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 사건을 둘러싼 두 가지 해석이 나오는 양상이다. ‘입장 번복 음모론’과 ‘월북 조작설’이다. 서로 다른 해석은 전 정부와 현 정부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다. 그 사이에 끼인 건 해경이다.
더불어민주당 ‘서해 공무원 사망사건 TF’는 6월 2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TF는 “윤석열 정부 안보실과 (사건 관련) 최종 수사 발표를 조율했음을 시인했으며, 이 조율에 따라 국방부와 해경이 월북 번복 문건을 작성하고 합동으로 발표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이날 대통령실은 더불어민주당 주장을 즉각 반박했다. 대통령실은 대변인실 언론 공지를 통해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이 해경 수사 결과 발표를 주도했다는 야당 주장은 터무니 없는 정치공세”라면서 “해경 수사나 입장 번복에 관여한 바 없다는 것을 거듭 분명히 밝힌다”고 주장했다.
해경 측은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관련 입장 번복과 관련해 “국가안보실 지침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2년 만의 입장 번복을 둘러싼 치열한 진실게임이 국정 최대 이슈로 부상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경 내부 역시 뒤숭숭한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진다.
장봉훈 해경청장을 비롯해 지휘부 9명은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입장 번복과 관련해 책임을 통감한다는 취지로 일괄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감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사퇴 의사를 반려했다.
해경이 정국 최대 이슈에서 난처한 입장에 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8년 전인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해경은 안일한 대처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이 여파에 따라 2014년 11월 해경은 해양경찰청 조직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었다. 해양경찰청은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다시 독립 외청으로 부활했다.
해양경찰청의 시초가 된 조직은 내무부 치안국 산하 해양경찰대다. 1953년 일본 불법조업선 단속과 더불어 남파하는 공작원 유입을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창설됐다. 이후 해양경찰은 경찰청 산하 기관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그러던 1996년 해양수산부가 신설되면서 해양경찰은 독립을 맞이했다. 해수부 산하 해양경찰청 시대가 열렸다. 동시에 해경청은 경찰청처럼 치안총감을 청장으로 둔 기관으로 발돋움했다.
해경 청사도 변천을 거쳐 왔다. 1953년 부산에 둥지를 틀었던 해경은 1979년 인천 월미도로 이사했다. 2005년 낙후된 기존 청사 대신 송도신도시 소재 청사로 터전을 옮겼다. 세월호 침몰사건 부실 대응으로 해수부 산하 해경청은 독립 19년 만에 호된 성인식을 치렀다. 결국 조직이 해체됐다. 해경은 국민안전처 산하로 편입돼 해양경비안전본부로 재편됐다. 그러면서 해경 청사는 세종시 정부청사로 이동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 해양경찰청은 부활했다. 부활한 해경청 소재지로 부산, 세종, 인천 등 도시가 거론됐다. 그 결과 해경은 기존 소재지였던 송도신도시로 복귀하게 됐다.
2017년 9월 10일 해양경찰의날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바다에서 일어나는 재난과 재해는 처음부터 끝까지 해경이 완벽하게 책임져야 한다”면서 “국민이 다시 기회를 줬다”고 강조했다. 문 전 대통령은 “해경은 세월호 참사 때 보여준 실망스러운 모습 때문에 조직 해체라는 아픔을 겪었다”면서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 바람과 달리 해경은 실망스런 장면을 연출했다. 2019년 삼척항 목선 귀순사건, 2020년 태안 보트 밀입국 사건 등은 해경 해양 경비 능력에 의문부호를 붙였다. 2020년엔 각종 도덕성 논란이 해경을 엄습했다. 9월엔 해경 간부 음주 폭행 사건, 코로나19 유흥주점 출입 해양경찰관 동선 은폐 사건 등이 대표적 사례다.
2022년 4월 8일엔 마라도 해상을 지나던 해경 헬기가 추락해 해양경찰관 3명이 순직하는 안타까운 사고도 발생했다. 해경 일각에선 지휘부의 무리한 지시가 사고 원인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부활 이후에도 여러 가지 사고를 겪은 해경은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관련 입장 번복으로 또 위기를 맞았다. 정치적 심판대에서 해경의 신뢰를 지켜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지난 6월 29일 일요신문이 찾은 인천 연수구 송도신도시 소재 해양경찰청 청사는 고요한 분위기였다. 정문 해양경찰청 현판과 출입문에 걸린 ‘안전하고 깨끗한 희망의 바다’라는 문구는 여전했다. 그 가운데 장마철 궂은 날씨는 현재 해경 내부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야를 오가며 활동했던 한 정치권 관계자는 “해경이 유독 정치권 이슈 중심에 서는 이유는 바다라는 활동 무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북한과 바다를 맞대고 있는 지리적 특성, 사건이 발생하면 빠르게 증거를 찾기 힘든 지형적 특성과 더불어 애매한 입지를 가진 독립외청 특유 내부 기류가 혼합되면서 정치 논란으로 비화되기 좋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