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당선인, 김만배 누나가 구매한 집에서 성장…장지 구하지 못해 전두환 유골 아직도 자택에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은 연희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부촌과 대학가가 형성된 이색적인 지역이다. 대학가 쪽엔 연세대학교 부지 일부가 포함돼 있으며 그 인근엔 대학생들이 거주하는 자취촌이 형성돼 있다. 한국 대중문화계에 충격을 줬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했을 당시 서태지가 연희동에 거주해 많은 팬이 몰리기도 했다.
대학가 맞은편엔 고급 주택이 모여 있다. ‘부촌’이라 불리는 주택지다. 이곳에 전직 대통령이지만,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했던 전두환 씨와 노태우 씨가 거주했다. 전 씨의 경우 군인 신분이었을 때부터 연희동 소재 안전가옥에 거주하면서 연희동과 인연을 맺었다. 이 당시엔 주민들도 전 씨가 연희동에 거주하는 사실을 몰랐다고 전해진다.
연희동에서 전 씨 존재감이 부각된 건 퇴임 후였다. 전 씨는 퇴임 후에도 연희동에 둥지를 텄다. 1987년 4월 9일 전 씨 부인 이순자 씨는 연희동 자택에 대해 소유권 보존을 등기했다. 이 당시 등기부에 기록된 이 씨 소재지는 ‘서울 종로구 세종로 1’이다. 청와대와 경복궁 일대가 포함된 지역으로 ‘전직 영부인’ 신분이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 씨는 말년을 연희동에서 보내면서 셀 수 없이 많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가 외출할 때마다 미디어는 연희동 자택을 주목했다.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사상 초유의 구속수감이 될 당시에도 그의 자택은 연희동이었다.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연희동 자택 앞은 취재진, 시민 등으로 북적거렸다.
전 씨는 퇴임 후 30년이 넘는 세월을 연희동에서 보냈다. 지난해 11월 23일 9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전 씨는 죽어서도 연희동을 벗어나지 못했다. “북녘 땅이 보이는 전방 고지에 백골로 남고 싶다”는 유언을 전했지만, 장지를 구하지 못했다. 전 씨 유골은 지금도 자택에 임시 안치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군부 2인자로 대권까지 잡았던 노태우 씨의 경우 전 씨 자택 인근에 주택을 구매했다. 육군사관학교와 하나회, 신군부를 거쳐 정치권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은 둘은 사는 곳도 지척에 있었다. 이웃사촌이었던 셈이다. 부동산등기부에 따르면 노 씨는 1981년 12월 21일 연희동 자택을 구매했다. 퇴임 후 전 씨보다는 미디어 노출이 적은 상태로 연희동에 거주했던 노 씨는 지난해 10월 26일 사망했다.
두 전직 대통령이 연희동에 거주하던 당시 연희동 주민들 사이에선 ‘불편하다’는 여론과 ‘별 상관없다’는 여론이 공존했다는 후문이다. 이따금씩 몰려드는 취재진 인파에 전 씨와 노 씨 자택 인접 주민들은 일부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두 전직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연희동을 향한 관심은 확연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새로운 이슈가 고개를 들면서 연희동은 다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대장동 개발사업 논란 핵심 인물이자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인 김만배 씨 누나 김명옥 씨가 2019년에 연희동 주택 하나를 구매한 까닭이었다.
이 주택을 소유했던 인물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부친 윤기중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였다. 김만배 씨 누나가 윤석열 당선인 부친 자택을 구매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선 각종 의혹이 불거졌고, 연희동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윤 명예교수는 1974년 5월부터 연희동에 거주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윤 당선인은 서울시 성북구 보문동에서 출생한 뒤 중학생 시절부터 연희동에 거주했다. 연희동에서 성장기를 보낸 셈이다.
윤 당선인은 성북구 소재 대광국민학교를 졸업한 뒤 연희동으로 이사를 오고 은평구 소재 충암중학교와 충암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윤 당선인은 ‘헌정 사상 최초 서울 출신 대통령’이란 타이틀을 얻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연희동에 거주했던 두 전직 대통령은 퇴임 이후 불명예스러운 말년을 보냈다”면서 “그런데 윤 당선인의 경우엔 연희동에서 성장한 뒤 대통령이 됐다. 권력 정점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연희동에 거주했고, 연희동에서 성장한 신인 정치인이 권력 정점에 오른 사실 자체가 흥미롭긴 하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