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회생 신청자 대부분은 코인·주식과 거리 멀어…서울회생법원 “투자 실패 가장한 재산 은닉 가려낼 것”
박광흠 법무법인 이래 변호사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개인회생 시 코인, 주식 등 투자 손실금은 재산 총액에 포함하지 않기로 한 준칙’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번 서울회생법원이 발표한 준칙은 그 자체로 엄청난 이슈가 되고 있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성실하게 빚 갚은 사람만 호구 되는 세상’이라며 비난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 이슈는 6월 28일 서울회생법원에서 보도자료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사실 서울회생법원 보도자료가 이슈가 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변호사들 중에서도 도산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대중적 관심에서는 멀어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도산법 전문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회생법원 판사도 이 정도 화제가 될 줄 몰라서 놀랐을 것”이란 얘기까지 나오는 배경이다.
서초동 로펌에서 일하는 A 변호사는 “파산, 개인회생 등이 담긴 ‘도산법’은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익숙하지 않은 영역이다. 소위 시험에도 안 나오는 법이기 때문에 실무를 안 해 본 변호사들의 경우 어떤 취지인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서울회생법원 결정을 두고 비난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막말로 빚내서 주식하다 수익을 보면 주머니로 넣고 날리면 개인회생 절차에 돌입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빚을 진 것도 사회적 약속인데 약속을 지키고, 국가에서는 최대한 받도록 해야지 왜 주식 손실금은 갚아야 할 빚에서 빼주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도산법 관련해 파산관재인이나 개인회생 절차를 관리하는 전문가들은 대개 ‘현실을 모르는 얘기’라는 입장이다.
파산은 그 역사가 1910년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개인회생은 2004년 만들어진 제도다. 두 제도의 차이를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채무자가 파산을 신청하면 법원은 이를 검토해 빚을 더 이상 갚을 수 없다고 판단하면 실행된다. 이때 채무자의 남아 있는 재산을 청산가치라고 하고, 이걸 채권자에게 소위 빚잔치라고 표현하는 배당을 통해 나눠주고 면책시켜준다. 이때 남아 있는 재산을 어떻게 설정할지, 숨겨둔 재산은 없는지 등을 법원에서 정한 파산관재인을 통해 확인한다.
파산이나 개인회생이나 개인 재산, 계좌 내역 등을 꼼꼼히 살펴본다는 건 같다. 다만 파산은 면책 뒤에도 파산 사실이 은행권에 통보돼 5년 동안 보관된다. 사실상 5년 동안 신용거래가 막히는 셈이다.
개인회생은 이와 달리 앞으로 갚을 여력은 있지만 과도한 빚 이자 증가 때문에 갚을 수 없게 됐을 때 실행하는 제도다. 개인회생은 개인이 변호사 등 법률 조언을 받아 개인회생 계획안을 제출하고 이게 통과되면 빚을 갚아 나가면 된다. 개인회생에서 갚는 돈은 파산 시 청산가치보다 높은 금액이 돼야 한다. 개인회생 계획안은 3년을 기한으로 벌이에서 최소 생활비를 빼고 얼마나 갚을 수 있을지 설정한다. 3년 동안 갚으면 나머지 빚은 면책된다. 개인회생의 경우 파산과 달리 면책을 받으면 바로 회생사실이 삭제돼 신용등급에 따라 신용거래가 가능해진다.
청산가치를 결정하는 계산에서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재산이지만 없는 것으로 계산하기도 하고, 없는 재산을 있다고 계산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서울의 경우 채무자의 5000만 원 이하 임대보증금은 개인 재산이지만 최소한의 생계 차원에서 청산가치에서 제외한다. 반면 채무자 본인 소유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재산 형성에 기여한 배우자가 소유한 부동산은 절반을 청산가치로 보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는 채무자가 배우자와 이혼한다면 부동산 절반을 받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청산가치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청산가치 계산을 할 때는 여러 사정을 고려한다. 과거에는 빚 내서 투자했다가 날린 돈의 경우 비록 내가 갖고 있지 않은 돈이지만 청산가치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이번 준칙 도입으로 투자 실패로 날린 돈은 청산가치에서 제외하기로 변경됐다.
예를 들어 1억 원의 채무가 있는데 남아 있는 재산은 2000만 원인 채무자가 있다. 그런데 그가 투자로 날린 돈이 5000만 원인 경우 과거에는 청산가치가 7000만 원으로 잡혀 개인회생을 하려면 청산가치인 7000만 원 이상의 금액을 3년 동안 갚아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투자손실금 5000만 원은 청산가치에서 제외돼 2000만 원 이상의 금액을 3년 이내에 갚으면 개인회생이 된다.
과거 기준으로는 3년 동안 7000만 원을 갚을 수 없어 개인회생이 아닌 파산을 선택하면 채권자들이 남은 재산 2000만 원을 나눠 갖게 된다. 그렇지만 이제는 법률 조언을 받아 2000만 원 이상으로 책정되는 개인회생 금액을 3년 동안 갚는 개인회생 계획안을 마련하면 개인회생을 할 수 있게 됐다. 채권자 입장에선 조금이라도 더 채무를 받을 수 있고, 채무자는 파산이 아닌 개인회생을 통해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채무자의 개인회생 금액은 청산가치 그대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고 개인회생은 수입에 따라 그 액수가 유동적이며 법원 측에서 상당히 꼼꼼하게 확인한다. 서울회생법원은 투자 빚 때문에 파산하게 되면 채권자도 손해고 채무자도 나락에 빠질 수 있으니, 계산에서 제외해 개인회생의 길을 최대한 열어주려고 한 것이다.
언뜻 ‘왜 빚을 깎아주지?’, ‘투자로 날린 빚도 포함해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박광흠 변호사는 ‘현재 얘기 되는 사례나 상상과 달리 일반적인 파산, 개인회생 사례는 투자는 거리가 멀고, 갚다가 지쳐서 오래된 빚을 결국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파산, 개인회생까지 가게 된 채권은 사실상 받기 힘든 돈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파산관재인으로 일하면서 만난 수많은 파산 사례의 일반적인 모습은 나이가 많아서 일을 못하게 돼 신용카드를 쓰다가 결국 몸도 안 좋아져서 병원비까지 들어가는 다중채무자가 일반적이다. 계좌를 열어봐도 투자와 거리가 먼 경우가 100명 가운데 95명 이상이다. ‘빚내서 투자하다 실패하면 개인회생’이라고 하기에는 개인회생을 한 게 알려지면 회사에서 잘리는 등 페널티가 많다”고 설명했다.
또한 박 변호사는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건 만약 개인회생 가는 길을 막았을 때는 파산으로 가게 된다. 이는 채권자도 빚을 받을 액수가 줄어들고 채무자도 나락으로 빠트리게 되는 결과다. 공리적으로도 맞지 않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투자 빚도 갚아야 할 빚으로 계산하면 개인회생으로 갚기를 포기하고 파산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도산법 전문 변호사들은 ‘빚을 냈으면 갚는 게 사회적 약속’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일리가 있지만, 반대로 파산 제도는 미국 등 선진국이나 자본주의가 성숙한 나라에서 오히려 더 활발하게 이용된다고 입을 모은다.
서초동의 다른 B 변호사는 “파산 제도 취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채무자를 빚으로 짓눌렀을 때 결국 채무자는 모든 걸 포기하고 기초수급자로 살아가게 된다. 그럼 결국 그 비용을 국가가 지불해야 한다. 이번 준칙은 채무자를 악성 채무에서 건져줘서 사회로 복귀할 수 있게 할 때 채무자의 빚이 투자 빚인지, 사업 빚인지 차이를 두지 않겠다고 설명할 수 있다. 사업 빚은 청산가치에 포함되지 않는데 투자 빚은 청산가치에 포함되는 바람에 채무자들이 개인회생을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이 부분을 고치겠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개인회생 관련 법률에 도박 빚은 채무에 포함되도록 했는데 투자 빚이나 도박 빚이나 뭐가 다른가’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박 변호사는 “누가 봐도 말도 안되는 사업을 벌이다 망했다고 하더라도 거의 전부 개인회생, 파산이 된다. 반면 투자 빚은 지금까지는 청산가치에 포함돼 왔다. 사업과 투자를 굳이 구별하는 건 투자를 백안시하는 문화 때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면서 “애초에 서울회생법원 보도자료에도 채무자가 투자 실패를 가장해 재산을 은닉했다고 인정되면 은닉 재산은 청산가치에 반영한다고 했다. 또한 도박 빚은 채무 면책이 안되는 것처럼 실무에서는 도박에 가까운 투자, 인가 받지 않은 거래소에서 날린 돈 등은 면책 받지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회생법원은 “투자 실패를 가장하여 재산을 은닉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청산가치에 반영하고 의심이 될 만한 정황이 있을 때는 자료 요구를 하겠다”고 밝혔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