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군 vs 터줏대감 ‘운명의 한판’
▲ 혁신과 통합 측의 문성근 국민의 명령 상임대표와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당권 도전에 가장 의욕적이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정치권에서는 새롭게 출범할 통합정당의 ‘뉴 페이스’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번 신임 지도부는 내년 총선을 지휘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에다 차차기 대권 주자로 부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선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정동영-정세균-손학규로 이어지는 민주당 대표 라인이 ‘올드 보이’ 성격이 짙어 이번 통합정당에서 ‘영 보이’들이 세대교체를 주도하며 야권 체질개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거대 통합정당을 이끌 새로운 지도부 출범의 막전막후를 따라가 봤다.
“이번에도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처럼 시민단체 출신 인사가 경선에서 승리한다면 60년 역사의 정통파 민주당과 그 출신 인사들의 시대는 막을 내릴 수도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될 것이다.”
통합정당의 당권을 두고 민주당 주변에서는 우려 섞인 목소리들이 오간다. 지난 서울시장 후보 경선 때처럼 이번 통합정당 대표 경선에서도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뺄 경우 민주당의 전통이 완전히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비록 ‘때’가 묻긴 했지만 산전수전 겪으며 역사의 중심을 관통해온 정통 정치인들이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이번 통합정당 경선은 외곽에서 이미지 관리나 하면서 비판을 즐기던 시민단체 인사들이 아무런 검증과정 없이 정치판으로 쉽게 진입하게 되는 일종의 ‘보결’ 통로가 확실하게 정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정치적 의미가 있다. 민주당 출신의 당권 장악이 문제가 아니라 의회정치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는 중대한 시점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번 경선에서 어떤 정파의 당수가 탄생하느냐에 따라 야권의 물갈이는 물론 내년 총선과 대선 지형도에도 급격한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 만약 ‘시민군’이 거대한 통합정당의 대표가 될 경우 내년 총선의 현역 의원 공천 물갈이 폭이 상상을 초월할 뿐 아니라 외부 인사들이 정치인 출신들을 대거 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총선에서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대거 약진할 경우 대선후보도 당연히 그쪽 인사들을 선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손학규 대표 등 기존 정치권 인사들이 아니라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나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영입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민주당 출신이 당권을 잡는다면 공천의 물갈이 폭이 줄어들게 되고 이는 자연히 기존 대권주자들의 기득권 유지로 이어지는 구도로 흘러갈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통합정당 당권 경선은 야권에게 있어 중대한 정치적 변곡점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그 막중한 임무를 해낼 후보군은? 큰 틀에서 보면 민주당 대 지명도가 높은 혁신과 통합(혁통)의 2파전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에서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한명숙 전 총리의 2강 구도가 형성돼 있다. 여기에 세대교체를 들고 나온 이인영 최고위원이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고, 3선 김부겸 의원도 판 교체를 표방하며 당권에 도전하고 있다. 이밖에 이강래 이종걸 조배숙 우제창 의원과 정대철 상임고문, 김태랑 정균환 전 의원도 민주당 후보군에 들어 있다.
▲ 지난 9월 열린 야권 대통합 추진모임 ‘혁신과 통합’ 발족식. 왼쪽부터 한명숙 전 총리, 유시민 대표, 손학규 대표, 문재인 이사장, 이해찬 전 총리, 남윤인순 위원장, 김두관 지사.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조직력이 강한 박 전 원내대표에 맞설 수 있는 최대 라이벌로는 한명숙 전 총리가 첫 손가락에 꼽힌다. 그는 최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부활의 날개를 달았다. ‘노무현’이란 정치적 유산을 배경으로 당 내외, 시민계층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불법정치자금 재판 정국이 계속되고 있어 본의 아니게 ‘위법’의 이미지가 덧칠돼 있는 게 그의 강점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 당 일각에서는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한 전 총리가 이 과정에서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 그 후유증으로 당권 도전도 여의치 않을 것이고, 친노그룹도 예전과 달리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어 그에게는 더 부담이다.
정치권에서는 3선의 김부겸 의원과 세대교체 선두주자 이인영 최고위원의 행보에 더 주목하고 있다. 오랫동안 당 체질 개선을 위해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김 의원은 54세의 적지 않은 나이지만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민주당의 호남정당 탈피를 주창해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합리적인 성향에 통합에 가장 적당한 후보로서 기자들에게 더 인기가 있다.
이밖에 이인영 최고위원은 당내 386세대 의원 모임인 ‘진보행동’ 소속으로서 ‘40대 대표론’ 등 세대교체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통합정당이 국민에게 변했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40대 대표가 나와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이들과 함께 ‘혁신과 통합’ 쪽도 세대교체를 이끌고 있다. 문성근 국민의 명령 상임대표와 김기식 내가꿈꾸는나라 공동대표, 이학영 진보통합시민회의 상임의장, 이용선 혁신과통합 상임대표 등이 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시민군’ 출신 가운데는 지명도가 가장 높은 문성근 상임대표가 당권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평가다. 그가 통합정당 대표로 선출되면 야권의 변화를 견인하며 대중적인 주목도가 한층 높아질 것이란 평가가 많다. 민주당 일각에서 “그가 국민의 명령 깃발을 들고 지난해 말부터 전국을 돌며 풍찬노숙을 했던 것도 ‘큰 꿈’을 다지기 위한 일종의 대장정이었다”는 얘기도 나올 정도로 문 대표의 정치적 야심이 대단하다는 평가도 있다.
참여연대 출신 김기식 대표도 다크호스로 부상 중이다. 그는 혁통이 초반에 조직을 강화할 때 대 언론 관계를 이끌었는데 이 과정에서 기자들에게 후한 점수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책통으로 달변에 논리로 잘 무장된 준비된 리더라는 평가가 많이 나오더라. 차기 지도자 감으로 점찍고 야권 원로들이 밀고 있다는 얘기에 본인도 좀 고무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시민단체 양측은 경선방식 등을 두고 서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룰을 만들기 위해 무한경쟁을 벌일 전망이다. 사실 통합정당 당권은 경선룰 가운데 핵심인 선거인단의 비율을 어떻게 정하는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은 당 지도부를 뽑는 선거인 만큼 당원 중심의 선거인단을 주장한다. 180만 명의 당원조직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당원과 대의원의 의견이 대폭 반영되는 경선을 원하고 있다. 박 전 원내대표는 이를 “당원주권제가 관철돼야 한다”고 할 정도다. 그래서 시민이 참여하더라도 선거인단에 당원으로 등록할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혁통 등 비민주당 세력은 시민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며 완전 국민참여경선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일단 민주당은 대의원 20%, 당비납부당원 30%, 일반당원 50% 방식의 전대 룰을 제안했고, 혁통 측은 100% 국민참여경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 측은 “혁통이 완전 국민참여경선을 일부러 언론에 흘리며 과열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박원순-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경선 때 채택됐던 ‘4 대 6’ 룰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당시 3만 명의 선거인단 선출 과정에서 양측은 막판까지 진통을 겪다가 결국 ‘2030세대는 1만 2000명, 40대 이상은 1만 8000명’으로 타결되었다. 그 결과 민주당은 40대 이상을 관광버스까지 동원해 투표장에 몰고와 과열을 부추겼지만 당일 오후 지하철을 타고 온 2030세대에게 패한 바 있다. 따라서 혁통 측은 동일한 룰을 적용하기를 희망할 것으로 보이나 당시 패배했던 민주당의 반발이 예상된다. 하지만 명분상 ‘박원순 룰’을 적용하자는 혁통 측의 주장이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야권 통합은 민주당이 다음달 11일 단독 전대에서 통합을 결의한 뒤, 통합 참여세력이 지도부 선출 일정과 방식을 확정해 연내에 통합 전대를 치르는 것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투표 방식은 1인2표제를 적용하고 인터넷 모바일 현장투표 등 세 가지를 병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최고위원은 11명을 두되 6명은 경선에서 선출하고 원내대표와 청년대표 등 2명을 당연직 최고위원으로 하며 나머지 3명은 여성, 노동계, 지역 등을 감안한 당 대표의 지명직으로 돌리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