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그들은 내 클럽을 차지했다”
▲ 지난해 미국에서 자신의 이니셜을 딴 ‘DS 스피드스케이팅’ 클럽을 창단해 어린 제자들을 가르치는 김동성의 모습. 당시 김동성은 제자 폭행 논란에 휘말렸다가 법원에서 무죄선고를 받았지만, 미 빙상연맹은 그를 다시 청문회로 소환해 논란이 일고 있다. 작은 사진은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안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으로 금메달을 빼앗길 당시 모습. 연합뉴스 |
하지만 김 코치에게는 지난 5년간 미국생활에서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가 있다. 그는 2005년 미국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는 미국 버지니아에 자신의 클럽 ‘DS 스피드스케이팅 클럽’을 만들고 지도자생활을 꾀했다. 그런 그가 지난 2월께 제자폭행 논란에 휩싸였다. 이를 최초 보도한 <워싱턴포스트>는 그가 아이스링크에서 제자들을 상대로 하키스틱 등 도구를 이용해 폭행했으며 이에 학부모들이 반발해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 코치의 입장이 배제된 일방적인 보도였다.
김 코치는 당시 사건에 대해 “모두가 알다시피 아이스링크는 훤히 공개된 장소다. 훈련 때면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포함해 많게는 80명까지 관전을 한다. 그런 장소에서 내가 폭행을 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당시 사건은 내가 운영하던 클럽 관계자에 의해 미국빙상연맹(미 연맹)에 제소됐을 뿐 아무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이상하지 않나. 미국처럼 폭행에 대해 신고정신이 투철한 나라에서 폭행한 것을 보고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나 이상한 일이다”고 밝혔다.
김 코치는 지난 4월 현지 법정(미국 미성년 사법기관 몽고메리카운티 차일드센터)에 서며 기나긴 투쟁에 돌입했다. 4개월간의 오랜 투쟁 끝에 김 코치는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 코치의 폭행을 목격했다는 증인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김 코치는 자신을 미 연맹에 신고한 클럽 내부관계자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표했다. 그는 “나를 신고한 사람은 내가 만든 클럽 내부인사다. 내가 클럽을 만들 당시 회장으로 영입한 미국인이다. 영어가 부족했기 때문에 할 수 없었다. 그런 그가 내가 만든 클럽에서 나를 몰아내려고 시도한 것이다. 폭행 의혹을 최초 보도한 <워싱턴포스트>의 기자도 그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다. 당연히 회장은 미 연맹인사와도 친분이 있었다. 학부모들에게도 거짓을 말하고 다녔으며 나에게는 ‘명성에 금이 가게 해주겠다’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결국 나는 쫓겨났고 클럽은 그의 차지가 됐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밝혀지지 않은 놀라운 얘기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는 내부 이권 다툼의 희생양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찌됐건 무죄판결로 폭행사건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김 코치는 미 연맹으로부터 황당한 소식을 전달받았다. 미 연맹은 지난 9월 말, 3개월 안에 김 코치를 소환해 그에 관한 폭행사건에 대해 청문회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김 코치는 현재 청문회 참석을 앞두고 있다. 법정에서 무죄를 받고도 청문회를 연다는 것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에 대해 김 코치는 “무죄판결이 나왔는데도 미 연맹이 청문회를 연다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다. 내가 참석 안 해도 청문회는 열 것이라고 하더라. 정 안되면 전화통화로 증언하라고도 했다. 그게 무슨 청문회냐.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코치는 미 연맹의 청문회 개최와 관련해 미국 빙상계의 타국인에 대한 음해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실제 미국 빙상계는 백인우월주의 문화가 팽배한 것으로 유명하다. 많은 스포츠 현장에서 흑인 등 유색인종이 활동하고 있지만 미 빙상계는 유색인종 진입이 유독 어려운 곳이다. 미국 빙상계에서는 흑색탄환 샤니 데이비스(29)가 거의 유일할 정도다. 샤니 데이비스는 2010 밴쿠버올림픽 1000m 금메달리스트며 1000m와 1500m 종목 세계최강자로 불린다. 그동안 백인들이 지배해온 스케이팅 종목에서 흑일점을 찍은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김 코치는 “타국에서 온 이방인 하나를 죽이려는 미국 빙상계의 음해다. 미국 빙상계는 예전부터 ‘레드랙(미국 백인의 붉은 힘줄을 가리키는 현지어)’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백인우월주의 문화가 팽배한 곳이다. 무리하게 청문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분명 그런 의도가 깔려 있을 것이다. 미국 빙상계에서 같은 유색인종인 샤니 데이비스가 나를 정말 많이 지원해줬다. 데이비스도 백인 텃세가 심한 연맹에 반감이 많다. 나를 많이 이해해줬다”고 말했다.
아직 청문회의 정확한 날짜는 잡히지 않았지만 미 연맹의 최초 예고대로라면 청문회는 12월에서 내년 1월 사이 개최될 것으로 보인다. 김 코치는 법적구속력이 없는 미 연맹 청문회에 반드시 참석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내가 빠진다고 해도 청문회는 열린다고 했다. 안 나간다면 죄를 인정하는 꼴이 된다. 지금 비싼 돈 들여 변호사까지 선임한 상태다. 반드시 청문회에 참석하겠다. 피할 필요가 없다”라며 “아직 공개하지 않은 증거들이 수두룩하다. 나를 신고한 클럽 회장이 학부모들을 상대로 나를 음해하려던 내용의 메일을 비롯해 너무나 많다. 청문회 전후로 내년께 이러한 증거들을 공개하겠다. 당분간은 후진양성에 충실히 임하겠다”며 미 연맹과 클럽을 상대로 한 반격을 예고했다.
김 코치는 이미 지난 2002년 오노사건으로 미국 빙상계에 호되게 당한 바 있다. 그의 주장이 만약 진실로 밝혀진다면 이번 사건은 ‘제2의 오노사건’으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청문회를 전후해 김 코치와 미 연맹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