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못하면 등록금 돌려드려요’
일부 수험생들은 ‘IN 서울’을 위한 치열한 경쟁에서 한걸음 물러나 틈새시장을 노리기도 한다. 더 이상 대학 졸업장이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이 틈을 비집고 이색적인 대학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승강기대학이 문을 여는가 하면 ‘대안 대학’이라는 새 챕터를 쓰고 있는 녹색대학, 심지어 치킨대학까지 찾을 수 있다. 이름만 들어도 호기심을 자아내지만 정작 실속이 있을지는 아직은 확신할 수 없는 단계다. 전국에 골고루 분포돼 있는 이색대학·학과들을 소개한다.
▲ 한국승강기대학의 교육 모습. 2012년 대학 입시 전형은 알려진 것만 3600여 가지. 자신의 적성에 맞는 학교를 골라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
승강기관리원은 2000년 이후 꾸준히 유망 직종에 이름을 올리는 직업이다. 전문직이면서 수요가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경남 거창에 위치한 승강기대학은 2008년 개교해 지금은 어엿한 4년제 대학교와 같은 대우를 받는다. 물론 승강기 관련 기업에 한해서다.
공기업인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 역시 4년제 출신 기사가 아닌 산업기사자격만 갖춰도 입사할 수 있도록 채용규정을 완화시켰다. 취업정보센터 이경걸 처장은 “이제 기업에서도 사무·행정직은 4년제, 생산관련 직종은 2년제라는 구태의연한 사고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승강기대학을 철도대학만큼 양질의 특성화 대학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이 처장이 밝히는 이 학교의 포부다.
현재 승강기대학은 A/S를 비롯해 설계·제작·경영에 이르기까지 총망라한 분야를 가르치고 있으며 이미 졸업예정자 가운데 60%가량이 관련 기업체로 취업을 확정지었다. 성적이 좋은 데도 불구하고 취업을 하지 못할 경우 등록금을 돌려주기도 한다. 그만큼 자신있다는 소리다. 정시모집은 12월 28일부터이며 모집인원은 총 320명이다.
#녹색대학
이름만큼 싱그러운 ‘녹색대학’도 눈여겨 볼 만하다. ‘대안 학교’ 열풍을 타고 2003년 문을 연 국내 최초 ‘대안 대학’이다. 경상남도 함양의 수려한 산천에 자리잡은 이 학교는 졸업 후 취업을 생각하기보다 배움 자체에 목적을 둔다.
그래서인지 홈페이지 상담게시판에는 “현재 취업사관이 된 대학교에서 제 비전과 무관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라며 학기 중에 입학이 가능한지 물어오는 글을 종종 접할 수 있다. 기초과정을 담당하고 있는 유상균 교수는 녹색대학에 관해 “자본에 종속된 대학이 아닌 참된 학문을 가르치겠다는 일념으로 설립됐다”며 “많은 사람들이 귀농 학교로 생각하지만 실상 인문학·철학·건축·농업·살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연구가 진행된다”고 밝혔다.
대학 1학년에 해당하는 기초과정은 기숙사 생활이 필수이며 이를 수료한 뒤 원하는 사람에 한해 2년의 연구 과정을 더 배울 수 있다. 대안 학교를 나왔거나 관련 기관의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장학금 혜택이 주어진다. 모집은 12월 8일까지로 기초과정, 연구과정을 모두 포함 30~40명 이내로 꾸려진다.
▲ 제너시스그룹에서 만든 치킨대학. 현재 가맹점주를 위한 교육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
지난 7월에 종영한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는 한 주연 배우가 ‘닭 대학’에 들어간다며 집을 비우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드라마와 같은 대학이 정말 존재하는지 궁금하면 경기도 이천 마장리에 소재한 치킨대학으로 가면 된다.
국내 1위 치킨 브랜드를 보유한 제너시스그룹에서 만든 치킨대학은 ‘맥도날드 대학’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중국 맥도날드 대학의 경우 합격률이 채 1%가 안 될 만큼 인기가 높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대학이라기보다는 기업의 전문교육기관 내지 교육센터로 볼 수 있다.
제너시스 홍보팀은 “아직까지는 가맹점주를 위한 교육센터와 체험학습장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향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프로그램 확장을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앞으로는 치킨대학과 같이 기업에서 직접 만들고 교육하는 곳이 대학이 못 다한 기능을 많이 보완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 전문대학 속 이색학과들
▲ 영남이공대학의 ‘박승철헤어과’ 학생들의 실습 모습. |
영남이공대학의 경우 ‘국내 최초의 브랜드학과’라는 이름으로 올 3월 ‘박승철헤어과’를 만들기도 했다. 이미 포화 상태에 다다른 헤어 디자이너 육성에 ‘No.1’ 이라는 브랜드를 입힌 것이다. 박승철헤어학과 졸업생들은 2년간 교육을 마친 뒤 전국적으로 퍼져있는 박승철스튜디오에서 곧장 디자이너로 일하는 특전을 부여받는다. 또 학생 중 일부는 중국·일본 등 해외서 활약할 수 있는 인재로 키우겠다는 게 학교의 방침이다.
# 편견 깨야 틈새 보인다
이밖에도 세무전문학교, 관광전문학교, 탐정학과 등 시야를 조금만 바꾸면 특성화된 대학과 전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이색대학과 학과들은 완전한 대체제가 되지 못한 채 논외의 장으로 치부되어 버리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올해 수능을 치른 양 아무개 씨(여·19)는 “학급 친구들 모두가 4년제 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이색대학과 관련한 질문에는 “재미있긴 하지만 솔직히 지원하고 싶진 않다”고 고백했다. 보건계열 2년제 대학에서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한 박 아무개 씨(26) 역시 “스무 살 때부터 특정 분야에 자신을 고정시키는 것은 위험이 크다”고 밝혔다. 그는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나왔느냐 안 나왔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는 것 같다”며 “같은 꽃집이라도 서울대 출신이 차린 꽃집은 장사가 잘된다고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앞서 소개한 대학들이 단순 흥미로 끝나지 않고 성공적으로 연착륙하기까지 갈 길이 멀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